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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관련/기타

보이는 세상 보이지 않는 세상

by 오른발왼발 2021.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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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귀신 이야기

《보이는 세상 보이지 않는 세상》(이강옥 글/이부록 그림/보림)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 그 경계는 어디일까? 보이는 세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세상은 귀신들의 세상이다. 이렇듯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은 전혀 다른 세상이지만 그 경계는 분명하지 않다. 서로 다른 세상인 게 분명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보이는 세상 속에는 또 다른 세상인 보이지 않는 세상이 함께 공존한다. 다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말이다.
보이지 않는 세상, 그 세상은 바로 귀신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다. 귀신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이다. 하지만 늘 우리와 함께 한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는 눈이 아니라 귀로 확인할 수 있다.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대신 이야기로는 늘 우리와 함께 한다. 귀신 이야기가 이렇게 많다는 건 무얼 뜻하는 걸까? 혹시 귀신들이 사는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게 바로 이 세상 사람들이기 때문은 아닐까?

이야기 문화가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이야기를 좋아한다. 듣는 것도 좋아하지만 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 가운데 가장 인기가 좋은 이야기가 귀신 이야기다. 아이들한테 실컷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 "나와서 이야기 해 볼 사람?" 하면 너도나도 손을 들고 나와서 하는 이야기가 바로 귀신 이야기다.
하긴 어려서 귀신 이야기 한 두번쯤 들으며 자라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귀신 이야기는 세대를 초월해 꾸준히 전해 내려온다. 동네마다 귀신이 나오는 집이 한 두채쯤은 다 있었고, 아이들은 그런 집을 귀신이 있다는 증거로 믿었다. 또 어느 학교고 빠지지 않고 귀신이 있었다. 학교 자리가 원래 공동묘지였다거나 학교 우물에 빠져죽은 사람이 있었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이상하게도 무서워하면 무서워할수록 그런 이야기는 더욱 귀에 쏙쏙 와서 박혔다. 귀신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은 무서워하는 아이가 있으면 있을수록 더 신이 나서 무섭게 이야기를 부풀려가며 이야기를 했고, 겁이 많은 아이들은 무서워하면서도 한편으론 호기심을 못 이기고 귀를 막는 척하면서 귀를 곤두세우며 이야기를 듣곤 했다. 아마도 귀신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맞서 나가는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여겨졌던 건 아닐까 싶다. 학년이 차차 높아지면 귀신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귀신 이야기에 열광하는 아이들도 사라지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이들의 귀신 이야기는 내가 듣던 이야기와는 좀 달라지고 말았다. 공통점이 남아있다면 그건 '학교'가 무대라는 점이다. 똑같이 학교에서 나오는 귀신 이야기인데 귀신의 성격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귀신 이야기가 무서운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예전의 귀신은 가슴에 맺힌 한 때문에 어느 교실에서 흑흑 거리며 운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요즘 귀신은 다른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고 사람들을 괴롭힌다.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이런 모습은 우리 전래의 귀신 이야기가 사라지고, 공포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책이나 영화를 아이들이 쉽게 접하게 되면서 더욱 심해졌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에게 귀신 이야기는 마치 공포특급류의 이야기와 같이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 마음속에서 귀신 이야기가 단순히 무섭기만 한 이야기로 여겨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건 아이가 들려주는 귀신 이야기를 봐도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들려주는 귀신 이야기가 실려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이렇다.
2등만 하는 아이가 1등만 하는 아이를 미워해 4층 교실에서 밀어 떨어뜨렸고 그 뒤로 2등만 하는 아이가 1등을 하게 되었는데, 그  아이가 죽은 뒤 몇 달 뒤 2등만 하던 아이가 교실에서 혼자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죽은 아이가 귀신이 되어 나타나는 바람에 2등만 하던 아이는 놀라서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어 나오는 또 하나의 이야기는 공부를 잘 못하는 아이들 반인 특수반 아이의 이야기다. 한 아이가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다가 자살을 했는데, 그 아이는 죽어서 공부에 대한 한을 풀기 위해서 밤 12시만 되면 교실에 들어가 불을 켜고 공부를 한단다. 그래서 밤 12시만 되면 특수반 교실은 불이 환하게 켜진단다.
 '성적'이나 '무자비한 학교 교육'이 아이들 마음에 한을 맺히게 한다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아이들의 고민을 공감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에서 대결구도는 늘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귀신은 살아생전 맺힌 한을 풀지 못해서 생긴다. 그래서 대개 억울한 사연이 많은, 힘없는 사람이 귀신이 된다. 아이의 이야기처럼 2등만 하는 아이가 1등만 하는 아이를 죽게 하거나, 아이들이 한 아이를 일방으로 놀려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은 없다. 우리 귀신은 무턱대고 사람을 죽이거나 괴롭히지도 않는다. 맺힌 한을 풀고자 하는 소망이 해결만 된다면 귀신은 사라진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 가운데 장화홍련 이야기가 있다. 장화홍련이 죽고 난 뒤, 홍련은 귀신이 되어 새로 부임하는 부사에게 나타난다. 새로 부임하는 부사들은 모두 귀신이 된 홍련을 보고 놀라서 첫날밤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 그러다 지혜로운 부사를 만나 억울하고 원통한 사연을 고하고 그 한을 풀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한이 맺힌 귀신은 사람에게 하소연하여 자기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귀신을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닌 귀신이 살아야 할 저 세상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귀신의 이야기를 듣고 맺힌 한을 풀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귀신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요, 귀신의 한을 풀어주는 것도 사람인 셈이다. 그렇다면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며 대화가 꼭 필요하듯이 귀신하고도 대화가 필요한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아버지가 5학년 아들에게 들려주는 우리 귀신 이야기다. 작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시작해 자연스럽게 우리 귀신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귀신의 모습인 머리 헝클어진 여자 귀신의 모습에서부터 시작한 귀신 이야기는 어느새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귀신 이야기를 그저 오싹한 납량물 정도로 여겼던 아이들이라면  귀신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 이 글은 2004년 10월 20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펴내는 격주간지《기획회의》 7호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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