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와 영환이의 우정 이야기
《이웃집 영환이》(남상순 글/이상권 그림/사계절/2005년/절판)
제목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처럼 이 책은 영환이와 영환이네 식구들에게 초점이 맞춰져있다. 때문에 사건의 대부분은 현수가 이끌어 나가고 있고 있지만 현수의 상황에는 별 관심이 가지 않는다. 현수는 그저 영환이를 독자에게 소개하려고 등장한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현수의 역할을 이 정도로 한정 짓기는 아쉽다. 너무 어릴 때 돌아가셔서 기억조차 없는 아버지, 살림을 살아주는 할머니와 일을 나가는 어머니 사이의 갈등 등 현수에게도 사연은 너무도 많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가 영환이에게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면 그렇게 따라가 주는 편도 좋은 일이다. 영환이가 왜 현수의 마음을 그렇게 끌게 되었는지도 현수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사실 현수가 먼저 관심을 갖게 된 건 영환이가 아니라 영환이가 이사온 살구나무 집이었다. 살구나무는 현수에게 봄의 시작을 알려주는 존재이자 초여름이면 바람 불 때마다 떨어지는 살구를 주워 먹는 재미를 주는 존재이기도 했다. 하지만 살구나무집은 현수네와 서로 담이 맞닿아 있지만 ‘대문의 방향과 위치는 정반대여서 대문을 나가 담벼락을 한참 지나고 교회와 슈퍼가 있는 모퉁이 건물을 한 바퀴 빙 돌아야’만 했다. 담이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는 옆집이라 할 수 있지만, 거리감은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살구나무 집이었다.
그 살구나무 집에 영환이가 이사를 온다. 둘이 상대에 대해 갖는 첫인상은 당당함이었던 것 같다. 현수는 영어 회화 시간에 해드폰이 잘 들리지 않는 뒷자리를 피하려고 하는 아이들과는 달리 뒤쪽 자리에서 당당하게 손을 들고 일어나 해드폰이 들리지 않는다고 바꿔달라고 야무지게 이야기하는 영환의 모습에 기가 죽고 만다. 또 영환이는 중학생 형들에게 돈을 빼앗기는 상황에서도 토끼를 사야한다며 돈을 거슬러달라고 말해 기어코 오천원을 거슬러 받았다는 현수의 모습에 놀라움을 표시한다. 그리고 현수와 영환이는 단짝 친구가 된다. 아니, 단짝 친구이긴 하지만 현수 엄마의 말마따나 현수는 영환이에게 중독이 되어 버렸다. 영환이가 현수를 어떻게 여기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현수에겐 영환이의 목소리가 자기 집에 울려 퍼지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행복한 것이었다.
이처럼 가까워진 현수와 영환이지만 들여다 보면 서로 대비되는 것이 무척이나 많음을 알 수 있다. 잘 가꿔진 아기자기한 정원이 있는 살구나무 집에 이사온 영환이에게는 투박하고 인상 강한 아버지가 있었다. 반면 현수네는 비슷한 크기의 마당이지만 특징없는 정원수가 본때 없이 우거져 지저분한 느낌을 주는데다, 현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조차 없었다. 그러고 보면 둘이 서로 갖고 있던 첫인상도 비슷한 듯하지만 큰 차이가 있었다. 상대의 행동이 당당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조금 달랐다. 현수는 영환이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 바보 같이 여겨지고 화가 나서 엉엉 울고 싶어졌지만, 영환이는 무서운 형들에 관련된 일들 자체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러고 보면 현수와 영환이는 담이 맞닿아 있으면서도 한참을 돌아야 하는 대문처럼, 서로 대비되는 것이 강한 만큼 거리감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현수가 영환이에게 중독되었다고 하는 말은 정말 실감이 난다. 현수가 영환이에게 느끼는 감정은 그대로 공감이 간다. 그만큼 영환에게 다가서는 현수의 심리는 잘 살아있다. 마치 삼인칭이 아닌 일인칭 시점의 글을 읽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현수’의 이름 대신에 ‘나’를 대입해 다시 읽어봐도 아주 자연스럽다. 이쯤 되면 삼인칭 서술 방식이 좀 쑥스러워지고 마는 셈이다. 이는 이야기가 현수의 눈으로 바라보고, 현수의 입장에서만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이 책의 주제를 ‘친구’로 한정지어 볼 때는 현수 입장에서 이야기에 빠져드는 데 도움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누구나 자신이 마음에 드는 아이랑 친해지고 싶고, 이렇게 친해졌을 때 느끼는 감정을 현수를 통해 충분히 공감을 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점이야 말로 이 책이 갖고 있는 힘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영환이와 영환이 아빠와 형, 또 현수네 할머니와 엄마까지, 많지 않은 등장 인물을 모두 현수의 눈으로 보고 들은 만큼만 보여주다 보니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든다. 게다가 현수의 감정조차도 영환이와 관련된 부분 외에는 없다. 그러다 보니 인물들이 지나치게 평면적이 되고 만다.
더구나 이 책은 살구나무 집과 관련한 비밀스러움을 전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아쉬움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귀하고 소중한 살구나무를 두고 다급하게 집을 떠난 전 주인의 사정과 맞물려 있는 영환이 아버지에 대한 부분은 특히 그렇다. 언뜻 언뜻 어른들의 말 속에서, 그리고 이야기 끝에서 영환이 아버지가 감옥에 갔다는 사실을 통해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걸 짐작하게 하지만 평상시 영환이 집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그런 일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영환이를 보고 “아버지는 뭐 하시냐?”는 말을 여러 번 묻곤 하는 것 역시 현수에게 새삼스럽게 아버지의 부재를 깨닫게 하는 것 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영환이가 자랑스러워하는 형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공부만 잘 할 뿐 집에서는 자기 손으로 아무 것도 하는 일도 없고, 자기만 아는 영환이 형과 아버지 모습을 보다 보면 영환이가 두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짐작할 방법은 없다. 결국 영환이네에 관심을 갖게 해 놓고, 그냥 끝내버리고 만 것은 아닌지 아쉽기만 하다.
책을 보면서 아쉬움이 많았지만 그래도 이 작품에 끌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현수가 살구나무 집에 갖는 관심, 영환이 아버지가 마구 짖어대는 개 장군이에게 대하는 모습, 현수의 토끼는 다 죽었는데, 같이 사온 토끼를 잘만 키우고 있는 영환이에게 느끼는 복잡한 심리와 행동 등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장면들의 묘사가 사실적이면서 강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에 나올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된다. 이 책의 아쉬움을 날려버릴 수 있는 힘이 보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간으로 펴내는 《기획회의》통권 170호(2006년 2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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