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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관련/우리창작

짜장면 불어요!

by 오른발왼발 2021.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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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짜장면

《짜장면 불어요!》(이현 글/윤정주 그림/창비/2006년)

 

입말은 아니지만 마치 독백이라도 하듯이 툭툭 내뱉는 듯한 문장. 처음 시작은 평범한 듯하지만 결말엔 앞에서와는 다른 반전이 있는데, 어쩐지 가슴 짜한 느낌이 오래도록 남는다.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10회째 수상작인 이 책의 첫 번째에 실린 단편 <우리들의 움직이는 성>을 읽고 난 첫 느낌이었다. 그리고 드는 생각은 ‘뭔가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뭐가 다른 건지 바로 알 수는 없지만 작품 속에서 작가는 힘을 빼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고 있는 듯 했다.
마침내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드는 생각은 ‘작가가 참 많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책에 실린 다섯 편의 작품 모두 느낌이 달랐다. 그렇다고 다섯 작품이 다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아니었다. 뭔가 서로 다른 분위기의 작품들을 하나로 연결해 주는 게 분명히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작가가 향하고 있는 시선이 아닐까 싶다. 그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늘 만나게 되는 사람이 있었다. 사춘기 아이들의 이성 문제에 대한 발칙한 이야기라고 할만한 <우리들의 움직이는 성>에서는 모든 여자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인 최고 인기 남학생의 자리에서 한순간 변태로 전락하고 마는 최상우를, <3일간>에서는 2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하는 바람에 작은아버지네 집에 얹혀살면서 사람들의 편견을 안고 살아가는 희주를, <짜장면 불어요>에서는 사람들의 무시를 사람들이 자신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라고 여기며 세상만사를 짜장면 철학으로 풀어내는 박기삼을, <봄날에도 흰곰은 춥다>에서는 판사가 되고 싶었지만 버스 기사가 됐고, 그 다음 개인택시 기사가 되고 싶었지만 그나마 술김에 친구 차를 몰고 밀린 월급을 사장에게 따지러 간다고 나서자마자 음주 운전에 걸려 면허까지 취소되고 결국 힘도 약하면서 이삿짐센터 짐꾼이 되고만 아빠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인 <지구는 잘 있지?>는 그 시선이 어느 개인에게만 쏠려 있지 않다. 굳이 말하자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그 자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구에 살면서도 지구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우리 인간들에 의해 버림받은 지구 말이다.
그러고 보면 그 시선이 참 무섭다. 작가의 시선 속에는 세상의 부조리함까지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하지만 그 무거움을 결코 무겁게만 이끌고 가지 않는 미덕이 있다. 동시에 작가가 연민이 있는 대상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게 하는 힘도 있다. 그 힘은 작가의 문체 덕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작가가 시선을 주는 그 대상을 직접 들이대기보다는 옆에서 누군가 지켜보게 하고 상대로 하여금 그 사람을 이해할 수밖에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 가볍게 출발해서 어느 순간 문제의 본질에 다가서게 하는 구성 덕분이기도 하다.
<우리들의 움직이는 성>은 사춘기 아이들의 이성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평범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나’ 한현경이 어느 하나 나무랄 것 없는 왕자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 최상우랑 사귀게 된다. 이 과정에서는 ‘나’의 심리를 중심으로 마치 순정소설처럼 진행이 된다. 하지만 상황은 곧 바뀌고 만다. 영화를 보다 뽀뽀를 하려고 다가서던 상우에 대한 의심이 채 가시기도 전에 상우는 학교에 야한 사진을 가지고 와서 돌려보다 걸려서 변태로 낙인찍히고 만다. 그리고 현경을 만난 상우의 고백이 이어진다. 상우는 좋아하는 상대랑 함께 있을 때 너무 좋아서 가슴이 터질 것 같고 기분이 이상해진다며, 야한 사진에 자꾸 관심이 가서 자기도 모르게 메일을 열어볼 수밖에 없었던 상황, 또 전학을 와서 남자애들 사이에 잘 끼지 못해서 야한 사진을 보여주면서 끼어보려고 했던 점 등을 고백하며 울먹인다. 순간 순정소설은 지금 아이들의 성문제로 바로 탈바꿈을 한다.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상우의 고백이 사춘기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기에 공감하게 되고, 아이들의 성 문제를 금기시하고 아이들로 하여금 죄책감을 갖게 하는 세상의 부조리함도 함께 공감하게 된다.
이 책의 표제작인 <짜장면 불어요>는 열네 살 용태가 열일곱이라 나이를 속이고 중국집에 취직을 하면서 시작한다. 용태가 첫 번째로 할 일은 옥상에 올라가서 선배랑 양파를 까는 것이었다. 처음엔 어린 나이에 무슨 사연이 있어서 돈을 벌러 나오게 되었을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용태가 옥상에서 박기삼과 만나는 순간, 용태는 바로 뒤로 밀려나 박기삼의 짜장면 철학을 더 완벽하게 받쳐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자장면이 표준말이라는 이유로 짜장이란 말 대신 자장이란 말을 고집하는 용태는 조심스러운 성격에 빨리 이곳을 벗어나 공부를 하겠다는 모범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반면 박기삼은 여러모로 반대되는 모습이다. 푸석푸석하고 엉켜 있는 노랑머리, 영어가 요란한 티셔츠에 여기저기 찢긴 청바지를 입고서 짜장면과 관련한 온갖 철학을 궤변처럼 늘어놓는 모습이 언뜻 문제아의 전형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기삼이 정신없이 늘어놓는 짜장면의 미학을 듣고 있다 보면 예사롭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저 철가방 생활을 하며 느낀 점을 툭툭 늘어놓을 뿐인 것 같지만 그 속에는 온몸으로 깨닫게 된 진실이 담겨 있다. 결국 기삼의 이야기에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다. 철가방은 청와대는 물론이고 국회, 법원, 검찰청, 방송국, 교도소 등 안 가는 곳이 없을 정도로 중요한 일을 하고, 짜장면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오랜 세월 동안 전 국민의 한결같은 사랑을 받는 음식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 보면 짜장면 100주년을 기념해야 한다거나 짜장면의 날을 국경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기삼의 주장까지도 그대로 수긍하게 될 정도다.
하지만 이런 짜장면 찬가와 함께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기삼이를 통해서 폭주족이라며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철가방들을 보호해주는 것이었으리라 여겨진다. 빠라바라바라밤 소리를 내며 오토바이를 모는 건 사람들이 짜장면을 시키고는 빨리빨리 하며 재촉하고, 기계도, 차도, 시간도, 학교에서도 모두 다 빨리빨리 정신없이 돌아가기 때문이란다. 덕분에 천천히 달리는 법을 잊어버렸다는 말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아쉬움이라면 글에서 중국집은 2층에 옥상이 있는 건물이고 이름이 황금반점인데 그림에서는 3층 이상의 건물에 이름도 중화반점이라는 점이다. 그림이 없어도 상관없는 장면이지만 글과 그림이 안 맞으니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간으로 펴내는 《기획회의》 통권 180호(2006년 7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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