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하고 안 놀아
현덕 글/원종찬 엮음/창비/186쪽
혹시 '고양이 놀이'라는 걸 아세요?
만일 모른다면 이 책 가운데 <고양이>를 읽으며 노마를 따라해 보세요.
아이들이 '고양이 놀이'를 하며 노는 모습을 너무나 잘 잡아내서 이 놀이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금새 따라할 수 있을 겁니다.
'고양이 놀이'뿐이 아니지요. 바람하고 노는 방법, 전차 놀이, 토끼 놀이, 아니면 고양이와 쥐놀이는 어떤가요?
요즘이야 장난감도 많고, 또 밖에 나와 놀 기회도 없고, 혹시 나와 논다고 해도 놀이터에서 그네나 미끄럼틀을 탈 거예요. 아니면 공이든 뭐든 놀 도구가 있어야만 놀 수 있는 아이들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예전엔(이 책에 실린 동화는 1938-1940년 사이에 발표된 거니까 아무래도 이때가 배경이겠죠?) 놀 도구가 없어도 잘 놀았답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다 놀이감이 되어 주었으니까요. 지금처럼 놀 줄 모르는 아이들은 없었죠.
이 책은 이처럼 아이들의 모습을 너무나 섬세하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노는 모습뿐이 아닙니다. 아이들의 심리까지도 너무 잘 드러나 있지요. 주인공 '노마'나 욕심쟁이 '기동'이나 아이의 심리을 갖고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기동이가 아무리 잘난 척을 해봐도 그 바탕엔 아이의 맑은 심성을 갖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놀면서 때때론 별 것 아닌 일에 잘난 척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덕은 그 한 사람을 잘난 상태에 놔 두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잘난 친구를 부러워 하고, 거기에 도전을 합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모두 같은 위치(평등)가 되지요. 이건 작가의 계산된(?) 배려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아이들의 기본 심리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아이들이 이 책을 좋아하는 건 아무래도 이 때문일 겁니다. 노마, 기동, 똘똘이, 영이의 모습에서 바로 자신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죠. 배경은 옛날이지만 노는 모습도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기에 낯설지 않고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고요. 또 일관된 캐릭터와 짧고 리듬감 있는 문장은 아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게 해 줍니다.
처음 읽었을 땐 너무 사실적인 묘사가 마치 제3자의 입장에서 사진을 찍어놓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읽고 또 읽을수록 아이들의 노는 모습으로 내가 빨려들어가는 걸 느낍니다. 읽을수록 아이들의 모습을 이처럼 온전히 그려낸 책도 드물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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