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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한겨레신문-아이랑 책읽기

선인장 호텔

by 오른발왼발 2021.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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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06. 2. 6.

 

 

《선인장 호텔》

브렌다 기버슨 글/미간 로이드 그림/마루벌

 

올해 학교에 들어가는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책만 골라서 보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눈에 띄지 못한 책들은 못 본 채 넘어가는 경우도 많지요. 그래서 제가 가끔씩 '엄마가 추천해 주는 책'이라며 한 권씩 건네주곤 하지요.

< 선인장 호텔 > 을 처음 본 날은 텔레비전에서 사막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함께 본 날이었습니다. 아마 다큐멘터리의 배경과 이 책의 배경이 같은 곳이었던 것 같아요. 미국 애리조나 주 남부 소노란 사막과 멕시코 북부에서만 볼 수 있다는 사구아로 선인장이 보였으니까요. 텔레비전을 보고 난 뒤, 전 아이에게 아까 나왔던 선인장 책을 보여주겠다고 했죠. 방금 다큐멘터리를 봤기 때문인지 아이는 반가워하며 이 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선인장도 열매가 있어?" 아이는 빨간 열매가 떨어져 씨가 쏟아지는 첫 장면부터 놀라워 합니다. 새로 싹을 틔운 선인장이 10년이 지난 뒤 엄마 손 한 뼘 크기가 되고, 25년이 지나자 다섯 살 어린이 키만해지고, 50년이 지나자 엄마 키 두 배만큼 자라고, 60년이 지나자 아빠 키 세 배만큼 되었다고 하자 그때마다 아이는 입을 다물줄 모릅니다. 처음엔 '애개' 했지만, 다음엔 엄청난 크기에 놀랍니다. 엄마 손 한 뼘, 다섯 살 아이 키, 엄마 키 두 배, 아빠 키 세 배, 이런 표현이 선인장 크기를 현실감 나게 표현하기 때문이지요.

아직 엄마 손 한뼘 크기밖에 안 되는 선인장이 물을 빨아올리기 위해 사방으로 길게 뻗고 있는 뿌리를 보고도 깜짝 놀랍니다. 그리고 200년이 지난 뒤 쓰러진 선인장의 뿌리는 머리카락 같아서(아이의 표현) 또 한번 놀랍니다.

아이는 책을 보는 내내 흥분이 가라앉질 않습니다. 50년이 지나서야 핀 꽃이 딱 하룻밤만에 져 버린다고 했을 땐 너무 안타까워했지만, 곧이어 온갖 새와 벌, 박쥐 들이 꿀을 먹으러 모여드는 장면에선 또 다시 탄성을 지르고 말았지요.

이어서 딱따구리가 선인장에 처음으로 집을 짓고, 다른 동물들도 하나 둘 이 선인장에 와서 살게 되면서 호텔처럼 변해가는 모습을 봅니다. 아이는 150년이 지나 크고 작은 구멍들이 수없이 생기고, 아빠 키 열 배나 되는 키에 일곱 개나 되는 가지를 뻗고 있는 모습이 신나나 봅니다. 선인장이 기분 좋아서 웃긴 모습으로 춤을 추고 있다나요?

이제 아이는 모래랑 선인장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사막에 수많은 생명들이 모여서 살고 있다는 걸 압니다. 모래 속에 구멍을 뚫고, 또 선인장에 구멍을 뚫고 많은 동물들이 보이지 않게 숨어 있다는 걸 아는 거죠. 또 선인장은 죽어서까지 다른 동물들의 호텔이 되고 있다는 것도요.

마지막 장면엔 구멍이 뚫리고, 재밌는 모습으로 가지를 뻗고 있는 선인장 숲이 보입니다. 또 쓰러진 선인장도요. 아이는 그림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습니다. 아마 사막이 아이에게 수많은 생명의 신비로움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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