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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한겨레신문-아이랑 책읽기

숲 속에서 / 또 다시 숲 속으로

by 오른발왼발 2021.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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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05. 12. 5.

 


매리 홀 엣츠 글, 그림/시공주니어

매리 홀 엣츠 글, 그림/한림출판사/절판

 

"또, 또 다시 숲 속으로가 나왔으면 좋겠어!"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아이가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지릅니다. 깜짝 놀라 뒤돌아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아이는 "또, 또 다시 숲 속으로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 < 또 다시 숲 속으로 > 있잖아. 왜 그래?"
"아니, 그거 말고. 이 책이 또, 또, 또 나왔으면 좋겠다고!"
아이는 조금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을 하곤 낮은 한숨과 함께 책을 책꽂이에 꽂습니다.
아 이가 < 숲 속에서 > 를 처음 본 건 올해 초, 7살이 되고 나서였지요. 오랫동안 책꽂이에 꽂혀 있었지만 제가 아이에게 특별히 책을 골라 주지 않는 탓에 아이 눈에 띄지 않고 숨어 있었던 거죠.
이 책은 흑백으로 그려졌죠.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숲 속 이야기지만 숲 전체가 보이진 않습니다. 굵은 나무 기둥만 보일 뿐이지요. 그 숲 속을 아이가 나팔을 들고 산책을 갑니다. 가다가 동물들을 차례로 만나죠. 동물들은 모두 아이를 따라 나섭니다. 아이의 나팔 소리에 맞춰 사자는 어흥 하고, 코끼리는 뿌우 하고, 곰은 으르렁거리고, 캥거루는 북을 치고, 황새는 부리로 딱딱 소리를 내고, 원숭이는 환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며 따라오며 행진을 합니다. 토끼만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아이 뒤를 따라갑니다. 참, 그러고 보니 다른 동물들은 다 스스로 아이를 따라나섰는데, 토끼는 그렇지 않았지요. 아이가 먼저 토끼를 발견하고는 겁내지 말고 함께 가자고 이끌었거든요. 생각해 보니 토끼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보통 때에는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토끼는 음식을 먹을 때도 놀이를 할 때 아이 곁에 얌전히 있지요. 아마 토끼는 다른 동물들보다 좀 소심한가 봅니다. 아이도 그런 토끼의 마음을 알기에 기꺼이 손을 내밀어줬겠지요.

놀이는 숨바꼭질에서 아이가 술래가 되면서 끝이 납니다. 아이가 눈을 떠보니 동물 친구들은 보이지 않고 대신 아빠가 와 있었죠. 동물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요? 아빠 때문에 모두 숨어버린 게 아니라 모두 아이 마음 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건 아닐까요? 사자, 코끼리, 곰, 캥거루, 황새, 원숭이, 토끼의 모습은 모두 아이 내면의 모습이고 말이예요. 아이는 나팔을 불며 자기 마음 속에 숨어 있던 친구들의 모습을 모두 불러냈던 거고요.

저희 아이는 이 책을 보며 정말로 동물 친구들을 불러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길을 걸어가면서도 혼자 온갖 동물들 흉내를 내고, 혼자 온갖 역할을 도맡아하면서 놀이를 즐기는 아이니까요. 아마 이 책을 보면서 자기가 상상으로 즐기던 놀이가 현실로 드러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 뒤, 아이는 이 책의 후속 작품인 < 또 다시 숲 속으로 > 를 봤습니다. 지난 번 봤던 이야기가 또 다시 이어진다는 점에서 굉장히 흥분을 했죠. 아이가 "또, 또 다시 숲 속으로가 나왔으면 좋겠어!" 하고 외쳤던 건 이런 감동을 더욱 더 느끼고 싶었기 때문일 겁니다.

이 책은 이 세상에 나온지 60년이나 된 흑백 그림책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그 흑백의 숲 속은 늘 온갖 빛깔로 가득찬 새로운 세상처럼 느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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