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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한겨레신문-아이랑 책읽기

우리 집에는 괴물이 우글우글

by 오른발왼발 2021.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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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06. 4. 10.

 

《우리 집에는 괴물이 우글우글》

홍인순 글/이혜리 그림/보림

 

 

 

"뭐든지 네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마!"

전 아이에게 늘 이렇게 말하곤 했죠. 아이가 뭔가 하기 싫다고 하면 "그래, 그럼 하지 마!" 하고 자신있게 말했고요. 제가 이렇게 말하면 아이는 "싫어, 할 거야!"하고 오히려 열심히 하곤 했으니까요. 저는 스스로 늘 좋은 엄마라고 여기며 지내왔죠.

그런데 위기가 닥쳤습니다. 전날까지만 해도 자기도 '체르니 100번'을 들어간다며 좋아하던 아이가 갑자기 학원에 안 가겠다는 거예요. 이번에도 자신있게 "그래? 그럼 가지마." 하고 말했죠. 하지만 아이의 대답은 제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돼? 그럼 안 갈래."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저도 모르게 아이를 은근히 협박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볼 수 있었죠. 정신을 차리고 타이른다고 한 말이 "엄마는 네가 피아노늘 꾸준히 했으면 좋겠어." 하는 거였죠. 아이는 진지한 얼굴로 말합니다. "엄마, 아무리 가족이라도 서로 마음이 다를 수 있는 거야."

저는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죠. 아니, 한대가 아니라 두 대였죠. 하나는 제가 아이에게 괴물 같은 존재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또 하나는 아이는 엄마와는 다른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 책이 떠올랐습니다. 아이가 볼 때마다 재밌다던 책, 특별히 꺼내보지 않고 그냥 책꽂이에 꽂혀 있는 것만 보고서도 "이 책 참 재밌어." 하고 말하던 책이었죠.

이야기는 주인공 강이가 '입을 딱 벌리고 반기는 커다란 껍데기(사실은 이불을 번데기 모양으로 둘둘 말아놓은 것이죠)'를 발견하면서 시작합니다. 강이는 커다란 애벌레가 되어서 모험을 시작하는 거죠. 강이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놀기 위해서 괴물이 우굴거리는 불빛 도시를 지나 작은 숲을 향해 길을 떠납니다.

강이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괴물을 셋이나 만나죠. 첫 번째 괴물은 신문을 우적우적 삼키며 애벌레만 보면 방귀불을 내뿜는 아주 지독한 괴물이고, 두 번째 괴물은 설거지를 하면서도 한쪽 눈은 늘 애벌레를 살피다가 껍질을 벗기려 들곤 하는 아주 무서운 괴물이고, 세 번째 괴물은 애벌레만 보면 무조건 달라붙어 놀다 지쳐 잠들기 전에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아주 끔찍한 찐드기 괴물이죠.

이쯤 되면 괴물의 정체가 짐작됩니다. 집안에 우글우글하는 괴물은 다름 아닌 가족들이지요. 그렇다고 가족들이 늘 괴물 같은 존재는 아닐 거예요. 하지만 만약 강이가 작은 숲을 향해 가듯이 아이가 자신만의 세계로 가고 싶어할 때면 아무리 가족이라도 어느 순간 괴물로 변하곤 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죠. 서로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상대에게 기대하고 있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아마 피아노 학원에 가라며 은근히 협박하는 제 모습도 아이에겐 괴물처럼 느껴졌겠죠?

'가족이라도 마음이 다를 수 있다'는 아이의 말이 귀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괴물이 안 될 수는 없지만 덜 괴물스러워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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