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06. 3. 28..
《지각대장 존》
존 버닝햄 글, 그림/비룡소
아이는 이번에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간다는 건 아무래도 걱정거리가 많이 생기는 일인 것 같습니다. 글씨를 못 쓰는 것도 그렇지만 학교까지 거리도 멀고, 주위에는 같이 갈 아이도 없습니다. 예비소집일, 학교에 갔다 온 뒤 우연히 아이랑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책꽂이에서 이 책을 뽑자마자 말합니다.
"옛날에는 많이 봤는데, 요즘엔 못 봤어. 엄마, 이 선생님 무지 무섭지? 이 책 읽어줘!"
저는 은근슬쩍 아이를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예전에 아이가 여섯 살 때인가, 너무 말을 안 듣는 바람에 화가 나서 저도 이 책에 나오는 선생님처럼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너 저쪽에 가서 손들고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하고 300번 외쳐. 알았지?"
사실 전 아이가 300번이나 외치길 바란 건 아닙니다. 그저 한번만 잘못했다고 말을 하면 용서해 주려고 했지요. 그런데 아이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알았어요. 대신 내가 외치는 동안 엄마가 300번 세 주세요."
저는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아이에게 벌을 주려다 제가 벌을 받는 꼴이 되고 말았으니까요.
저는 존이 선생님한테 야단맞는 장면을 유난히 강조하면서 읽어줍니다. 예전에 일도 일이지만, 학교가 먼 만큼 이젠 아이도 일찍 일어나서 학교에 가야지 지각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니까요. 또 학교가 유치원이랑 좀 다르다는 것도 스스로 느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고요.
책을 다 읽고 난 뒤 은근히 아이에게 물어봅니다.
"너, 학교에 가는 거 무섭지 않아? 학교 선생님이 이렇게 무서우면 어떡하냐?"
그러자 아이는 너무도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합니다.
"아냐. 우리 집에서 학교에 가는 길에는 악어도 없고, 사자도 없고, 산더미 같은 파도가 덮치는 다리도 없잖아. 그러니까 선생님한테 혼날 일도 없어."
이번에도 지난 번처럼 또다시 아이에게 진 것 같습니다. 전 지금껏 이 책이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와 아이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권위적인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라고만 생각해 왔습니다. 아이도 예전엔 이 책의 마지막에서 선생님이 고릴라한테 붙잡혀 있는 장면을 가장 통쾌해했던 걸 보면 분명 틀린 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엔 아이의 반응이 좀 의아스럽기도 했지만 곧 풀렸습니다. 저희 집에서 학교까지는 어른 걸음으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입니다. 요 며칠간 아이는 왜 이렇게 학교가 먼 거냐며 투덜거렸습니다. 지각을 하면 안 된다는데, 학교가 먼 건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자기가 가야 할 학교는 가는 길에 존처럼 위기를 만날 일이 전혀 없다는 걸 알고 자신감을 갖게 된 거지요.
'책은 아이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번에 아이의 반응을 보고서야 새삼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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