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06. 1. 9.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조대인 글/최숙희 그림/보림
"옛날 이야기 해 줘!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근데, 처음부터 말고 할머니가 팥죽을 쑤면서 울고 있는 것부터. 난 다람쥐야. 내가 알밤한테 이야기해서 알밤을 데리고 가는 거야. 그 다음에 다른 얘들도 다 내가 데리고 오는 거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면 아이는 늘 옛날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릅니다. 처음엔 제가 아는 이야기를 하나씩 해 주었죠. 그런데 조금 지나고 나자 아이는 그동안 들은 이야기 가운데 자기 마음에 드는 이야기 몇 가지만 끝없이 해 달라고 하곤 했지요. 또 조금 지나고 나니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달라는 게 아니라 자기가 관심을 갖는 부분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라고 해요. 그러더니 요즘엔 한술 더 뜹니다. 자기가 이야기에 참여를 하는 거지요.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이야기도 마찬가지였지요. 아이가 가장 관심 있는 부분은 알밤, 자라, 개똥, 송곳, 절구, 멍석, 지게가 힘을 모아서 호랑이를 물리치는 장면이었지요. 하지만 호랑이와 맞서 대결하는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기는 좀 어려웠던 것 같아요. 모두에게 마음은 가도 '이게 나야!'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요. 자기도 할머니를 위해서 뭔가 하고 싶은데 그냥 이야기 밖에서 듣고만 있자니 답답하기는 하고, 결국 자기가 다람쥐가 되어 끼어드는 거죠.
저는 아이 소원대로 다람쥐를 이야기에 불러들입니다. "다람쥐가 알밤을 데리고 왔어. 알밤이 '팥죽 한 그릇 주면 못 잡아먹게 하~지' 하니까 할머니는 팥죽 한 그릇을 줬어. 그랬더니 알밤이 그 팥죽을 먹고 아궁이에 들어가 숨었지."
아이가 다시 말합니다. "아니 아니. 그럼 안 돼. '팥죽 한 그릇 주면 못 잡아먹게 하지'가 아니고 '호랑이가 못 잡아먹게 할테니 팥죽 한 그릇만 주세요' 이렇게 해야지."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팥죽 한 그릇 주면'이라는 게 괜히 조건을 내거는 것 같아요. 전 아이 말대로 '못 잡아먹게 할 테니 팥죽 한 그릇만 주세요' 하며 이야기를 마저 다 하지요.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잠이 들고요.
낮이 되자 아이는 이번엔 책을 들고 옵니다. 밤에 들었던 이야기를 이번엔 그림책으로 확인하고 싶은 거죠. 이상한 건 그림책으로 볼 때는 자기가 다람쥐가 되어 이야기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전 그 이유를 책의 제일 마지막에 가서야 알게 됐죠.
책의 마지막엔 할머니가 커다란 가마솥에서 팥죽을 푸고, 아이들은 올망졸망한 손으로 그릇을 내밀고 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아이는 그 가운데 한 아이를 가리키며 '이게 나야!' 합니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손을 내밀고 있는 아이들이 자기랑 함께 힘을 모아 호랑이를 물리쳤던 아이들이라네요. 그러고 보니 알밤, 자라, 개똥, 송곳, 절구, 멍석, 지게 이렇게 일곱에 다람쥐까지 여덟. 할머니한테 손을 내밀고 있는 아이도 모두 여덟입니다. 아이는 그림 속에서 다람쥐 몫이 자기 자리라는 것을 벌써 발견했던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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