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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책/옛날이야기 공부방

착한 동생과 못된 형

by 오른발왼발 2021.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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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은 어떻게 올까?

'착한 동생과 못된 형’

 

 

 

1.
‘착한 동생과 못된 형’은 흔히 권선징악이 잘 드러난 이야기라고들 한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동생이 착한지는 확실하지 않지만(개암을 주워서 다른 가족들을 먼저 챙기는 정도), 형은 확실히 나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 유형이 채록된 자료의 제목엔 ‘착한 아우와 악한 형’이라는 제목도 보이지만 ‘횡재한 사람’, ‘악형’, ‘우형(愚兄)’ 같은 제목이 더 많다. 
그 가운데 ‘횡재한 사람’이란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형이 동생의 눈을 찌르고 내쫓지만, 동생은 도깨비 말을 엿듣고 눈도 뜨고, 문제가 있는 집이나 마을의 문제도 해결해 주고, 부잣집 딸의 병도 고쳐주고 부자가 된다. 이 이야기에는 형이 동생이 부자가 된 것을 알고 그대로 따라 하는 화소는 없다. 제목 말마따나 동생이 ‘횡재한 사람’으로 나오고 끝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면 좀 심심하다. 그래서 나오는 것인 ‘악형’의 유형이다. 누군가 횡재한 사람이 있으면 그걸 질투해 횡재한 사람을 따라 하려는 사람도 생기고, 또 스스로도 또다시 횡재를 바라다 실패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악형’에서도 형은 동생의 눈을 찔려 내쫓는다. 그리고 동생이 도깨비 덕분에 눈도 뜨고 잘살게 되자, 동생이 어떻게 횡재했는지를 물어 그대로 따라 한다. 눈을 스스로 찌르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왜일까? 동생은 착하고 형은 나쁘기 때문일까?

2.
‘악형’과 ‘착한 아우와 악한 형’, ‘惡兄善弟’ 이야기에서 대개는 형이 동생의 눈을 찔러 내쫓는다. 동생의 눈을 찌르는 이유는 조금씩 달라도 중요한 건 동생 눈을 찔러 멀게 한다는 것이다. 
갈 곳 없는 동생은 산으로 올라가 나무 위에서 잠을 청한다. 하지만 잠이 올 리가 없다.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불빛 한 점 없는 깜깜한 산속의 밤, 게다가 눈까지 멀었으니 동생으로서는 모든 것이 깜깜한 암흑 상태이다. 즉, 동생은 더 이상 뭔가를 어떻게 해 볼 도리 없이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여기서 동생이 눈이 멀어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됐다는 건 중요한 지점이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대신 주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되는 법이다. 그리고 도깨비들이 하는 이야기를 엿듣게 된다. 도깨비들은 아래 냇물에서 눈을 씻으면 눈을 뜰 수 있다는 것, 마을에 맑은 물이 솟게 하는 방법, 부잣집 딸이 병든 원인과 해결 방법 등을 이야기한다. 
날이 밝아 도깨비들이 떠나자 동생은 나무에서 내려와 냇물에 눈을 씻어 눈을 뜨고, 흙탕물밖에 없는 마을에 가서 맑은 물이 나오게 해 주고, 부잣집에 찾아가 딸의 병을 고쳐준다. 이렇게 동생은 부자가 되어 부잣집 딸과 혼인도 하고 잘 살게 된다.
동생이 형 때문에 눈이 먼 채 쫓겨나지 않았다면 이런 행운을 얻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즉, 형이 동생 눈을 찌르고 내쫓은 것이 별 볼 일 없던 동생의 삶에 큰 전화점이 된 것이다. 이른바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동생은 눈도 뜨고 뜻밖에 횡재를 한, 그야말로 최고의 행운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
산은 동생이 나무를 하러 자주 오던 곳이다. 하지만 그동안은 도깨비가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혹시 낮에만 산에 왔기 때문에 듣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만약 형이 동생 눈을 찔러 내쫓지 않았다면 동생이 밤에 산에 오를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내쫓겼다는 건 이전까지는 동생이 늘 형과 함께였다는 뜻이니, 어쩌면 동생이 오롯이 혼자가 된 것도 처음일지 모른다.
준비되지 않은 뜻밖의 독립, 상황은 최악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울한 상태다. 하지만 가장 어두운 상태는 곧 빛을 내포하고 있는 상태이다. 동지를 기점으로 점차 낮이 길어지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 빛을 발견하는 방법은 하나다. 바로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동생이 도깨비 말을 엿들었다고 하지만, 실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자신의 무의식 속에 갇혀 있던 내면의 말을 들은 것일 수도 있다. 형과 함께 살며 늘 생활하던 대로 생활하는 동안은 별로 가치를 두지 않고 넘겼던 것들 말이다. 그러나 극단의 어둠 속에서 내면과 마주하면 무의식에 갇혀 있던 것들은 하나둘 수면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아침이 되자 동생은 가장 먼저 눈을 씻는다. 아무리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해도 실천이 없다면 아무 소용 없다. 눈을 씻는 건 밤새 자기 내면과 나눈 이야기를 실천하는 첫 번째 행동이다. 
눈을 씻자 눈이 밝아진다. 눈이 밝아졌다는 건 사물을 볼 수 있게 됐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4.
형은 부자가 된 동생에게 그 사연을 묻는다. 동생이 횡재했다고 생각한 형은 자신도 그런 횡재를 얻고자 한다. 
형은 동생을 그대로 흉내 낸다.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찌르고 산으로 가 나무 위에 오른다. 하지만 상황은 형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도깨비들은 갑자기 사람 냄새가 난다며 주위를 살펴 형을 끌어내리기도 하고, 동생이 왔다 간 지 꽤 시간이 흘렀을 텐데 새삼스레 ‘엊그제 우리 이야기를 엿들은 사람이 또 왔을지도 모른다’며 주위를 뒤져 형을 찾아낸다. 형은 도깨비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혹은 도깨비들이 형의 성기를 길게 늘어나게 하는데, 이 경우도 대부분 죽음을 맞이한다. 
눈이 멀어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된다는 건 그전까지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세계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전엔 들리지 않던 소리도 더 잘 들을 수 있게 되는 것

이다. 
그런데 왜 형은 동생과 똑같이 눈이 먼 상태로 같은 장소에 갔지만 오히려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일까? 결론은 간단하다. 겉보기에는 똑같이 흉내를 냈지만 이미 잿밥에 눈이 멀어 있는 형은 내면에 귀를 기울일 수가 없었다. 아니, 누군가를 똑같이 흉내 내서 횡재를 하고자 하는 것은 처음부터 내면에 귀를 기울일 수 없는 것이었다. 흉내란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고 외면만을 복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형을 보고 어리석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형의 모습은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다. 누군가 잘 되면 무조건 그 사람이 한 대로 따라 하는 경우가 우리에겐 너무 흔하지 않은가. 

5.
동생은 행운을 얻었고, 형은 동생처럼 행운을 얻으려 흉내만 내다 망하고 만다. 
동생은 착해서 행운을 얻었고 형은 나빠서 행운을 얻지 못한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혹시라도 동생이 다시 한 번 행운을 얻고자 예전에 한 방식을 또다시 흉내를 내거나, 자신에겐 늘 행운이 온다고 자만한다면 동생 역시 형처럼 망하고 말 것이다. 


- 그림책으로 나와 있는 옛이야기 <착한 동생과 못된 형> 


김세실 글/이은천 그림/시공주니어

이미애 글/강우근 그림/전집 호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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