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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책/옛날이야기 공부방

호랑이 잡는 이야기

by 오른발왼발 2021.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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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한번 호랑이를 잡아볼까?

- 호랑이 잡는 이야기 - 

 

 

 

1. 호랑이 잡는 이야기들

‘줄줄이 꿴 호랑이’를 봤다. 《한국구전설화 1-12》(평민사)와 《한국구비문학대계》에는 호랑이를 줄줄이 꿰어 잡는  이야기가 여럿 있다. 그림책 《줄줄이 꿴 호랑이》(권문희 글, 그림/사계절)으로도 나와 있다. 이야기는 이렇다. 

 

 

게으른 한 아이가 어머니의 성화에 커다란 참깨 나무를 키워 기름을 짜서 강아지에게 먹이고 바르고 해서 매끈매끈 반질반질하게 만든 뒤 강아지를 밧줄에 묶어 산에 매어두고 온다. 다음 날 아이가 산에 가 보니, 수없이 많은 호랑이가 밧줄에 줄줄이 꿰어 있었다. 어떻게 해서? 호랑이는 강아지를 꿀꺽 삼키지만 미끈미끈한 강아지는 호랑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자마자 바로 똥구멍으로 빠져나오고, 또 다른 호랑이가 강아지를 삼켰다가 똑같이 되고, 되고……,  해서 말이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무시무시한 호랑이를 그런 황당한 방법으로 잡는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된다 싶지만, 속이 시원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기름먹인 강아지로 호랑이를 줄줄이 꿴 이야기도 많지만 다른 기발한 방법으로 호랑이를 잡는 이야기들이 아주 많다. 몇 가지를 소개해 보자. 

첫째, 호랑이 콧잔등에 살짝 칼집을 내고는 호랑이 꼬리를 밟고 호랑이가 깜짝 놀라게 소리를 지른다. 그럼 호랑이가 달아나려 하면서 칼집 난 곳이 찢어지며 호랑이는 알몸만 빠져나가고 가죽은 그대로 남는다. 일 년쯤 지나면 호랑이는 가죽이 다시 생기는데, 다시 생긴 가죽은 '재벌 가죽'이라 값이 많이 나가지 않는다.

둘째, 다른 방법으로 호랑이 통가죽을 얻은 경우도 있다. 호랑이는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잡아먹지 않는다. 그래서 술에 취해 고개에서 잠이 든 사람이 있으면 꼬리에 물을 묻혀 얼굴에 뿌린다. 이때 재빨리 호랑이의 꼬리를 잡고 등에 올라타 양쪽 귀를 붙잡으면 호랑이는 놀라서 밤새 뛰어다닌다. 만일 호랑이가 자기 굴로 들어가려 하면, 양 발로 굴의 양쪽 언덕을 꽉 딛고 호랑이의 양쪽 귀를 붙잡고 세게 잡아당기면 된다. 그럼 호랑이는 가죽은 남겨두고 알몸만 굴에 들어간다.

셋째, 사람을 망태기에 담아 호랑이가 많은 산에 가서 높은 나뭇가지에 달아놓는다. 밑에는 바위나 연못이 있어야 한다. 뾰족한 말뚝을 박아놓는 방법도 있다. 사람이 무서워 앙앙 울면 호랑이들이 몰려들어 펄쩍 뛰어오르지만, 망태기까지 오르지 못하고 떨어지며 바위에 머리를 박아 죽거나 연못에 빠져 죽는다.

넷째, 나무 위에 사람을 보고 호랑이들이 서로 등에 올라타 높이 오르는 수도 있다. 그런데 호랑이는 흥이 많은 듯 싶다. 사람이 피리를 불거나 방귀를 뿡뿡 뀌면 그 소리에 맞춰 들썩들썩 춤을 추다 다 떨어져 죽는다. 드물긴 하지만 나무 위에 매달려 있던 사람이 놀라서 똥을 싸는 바람에 엄청난 똥을 맞고 죽는 호랑이도 있다.

다섯째, 호랑이한테 꿀꺽 삼킬 때를 대비해 칼을 가지고 다닌다. 호랑이 배 속에 들어가면 칼로 내장을 도려낸다. 그러면 호랑이는 아파서 날뛰다 죽는다. 그럼 칼로 배를 가르고 나오면 된다. 간혹 호랑이가 화가 나서 주위에 있던 다른 호랑이들을 물어 죽이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한꺼번에 여러 마리를 잡을 수 있다.

여섯째, 만일 밧줄로 올가미를 만들어 호랑이 목에 걸 수 있다면, 호랑이를 뒤집어 잡을 수도 있다. 호랑이는 목에 올가미가 걸리며 화가 나서 올가미를 던진 사람을 꿀꺽 삼킨다. 이때 손에 밧줄 끝을 꼭 쥐고 있다가 빛이 보이는 구멍 쪽으로 나가면 범의 똥구멍으로 나온다. 그럼 밧줄을 큰 나무에 잡아매면 된다. 호랑이는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모가지가 입으로 들어가고 결국엔 똥구멍으로 나와 뒤집히고 만다. 

일곱째, 집을 보던 아이들이 호랑이를 잡은 경우도 있다. 아이들을 잡아먹으려 호랑이가 지붕을 뚫고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발이 바닥에 닿지 않자 발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아이들은 오르락내리락하는 호랑이 발에 절굿공이를 매달아 좁쌀도 찧었다. 호랑이는 나가지도 못하고 내려오지도 못한 채 그대로 지쳐 쓰러져 있다가 잡히고 말았다.

이것 말고도 다른 방법이 더 있으나 일단 여기까지만 보자. ‘줄줄이 꿴 호랑이’만큼이나 호랑이를 잡는 방법이 아주 기발하다. 무시무시한 호랑이를 잡으려면 긴장감과 두려움이 넘칠 법도 한데 모두 위트가 넘친다. 힘이 센 사람이 호랑이와 맞서 싸워 잡는 것도 아니다. 호랑이를 잡는 사람은 모두 힘이 없는 사람이다.

2. 호랑이 잡는 이야기들이 많은 까닭?

그건 그렇고 왜 이리 호랑이를 잡는 이야기들이 많을까? 《조선왕조실록》에 인왕산 호랑이가 궁궐 안으로도 내려왔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니, 호랑이가 무척이나 많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호랑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해쳤는지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호식(虎食)’이니 ‘호환(虎患)’이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닐 것이다. 이는 옛이야기에서도 흔히 보는 내용이다. 기발한 방법으로 호랑이를 잡는 이야기 중에서도 이런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아버지 원수 갚었다구 자기 가주 다니던 총두 가지시오.”
포수가 총두 내놓구 가구, 밑에서 소문을 듣더니 아 이 사람들이 자기 가진 대로 다 내놓더란 얘기지
                 -   ‘호랑이 잡는 도리깨’, 《구비문학대계》,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이수길 구연
  
호랑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던 사람이 우연히 도리깨로 호랑이를 잡고 강원도로 호랑이를 잡으러 간다. 그곳에는 포수가 되어 아버지 원수를 갚으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 사람이 호랑이를 잡게 된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아버지 원수를 갚게 되어 고맙다며 총을 주며 사례한다.
이 이야기에서는 아버지 원수를 갚으러 온 포수들이 주요 인물은 아니지만, 옛이야기 가운데는 호랑이한테 잡아먹힌 아버지 원수를 갚기 위해 포수가 되는 이야기가 전한다. 바로 ‘아버지 잡아먹은 호랑이 잡은 아들’이다. 워낙 유명한 이야기다. 동화작가 임정자는 이 이야기를 모티프로 《흰 산 도로랑》이란 작품을 쓰기도 했다. ‘호랑이 잡는 도리깨’에 등장한 포수들은 바로 ‘아버지 잡아먹은 호랑이 잡은 아들’의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아무튼 ‘아버지 잡아먹은 호랑이 잡은 아들’은 앞서 봤던 호랑이 잡는 이야기들과는 다르다. 그야말로 살벌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똑같이 호랑이 잡는 이야기지만 결이 확연히 다르다. 물론 ‘아버지 잡아먹은 호랑이 잡은 아들’은 아버지의 원수를 잡는다는 무거운 소재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 나오는 호랑이가 어머니와 셋째를 잔인하게 잡아먹고 벌을 받아 수수밭에 떨어져 수수밭을 시뻘겋게 만들며 죽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이때 호랑이는 가난한 민중들의 삶을 산산이 짓밟는 존재이다. 호랑이를 잡는 과정에서 유쾌함이나 위트는 찾아볼 수 없는 이유다.

3. 호랑이를 대하는 태도

반면 ‘줄줄이 꿴 호랑이’를 비롯한 호랑이 잡는 이야기들은 확실히 결이 다르다. 호랑이가 어떤 해코지를 했기에 잡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호랑이를 잡게 되는 ‘방아 찧는 호랑이’ 류에서는 호랑이가 아이들을 잡아먹으려 하고, ‘호랑이 잡는 도리깨’에서는 호랑이가 많은 사람들을 잡아먹었음을 알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사람을 해치는 장면이 나오지는 않는다.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에서의 호랑이와 비슷한 모습이라고나 할까? 
호랑이 잡는 이야기에서 호랑이를 잡는 건 대부분 돈을 벌기 위해서다. '줄줄이 꿴 호랑이'나 사람을 망태기에 담아 호랑이가 많은 산의 나뭇가지에 달아놓는 '사람을 미끼로 호랑이를 잡다'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다른 이야기들도 결론은 같다. 호랑이 가죽 덕분에 잘 살게 되는 것이다.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의 경우는 호랑이를 잡지만 덕분에 잘 살게 되는 장면은 없다. 호랑이를 강물에 내다 던져 완전히 사라지게 만든다. 유쾌한 방법으로 호랑이를 잡는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호랑이를 대하는 태도는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호랑이 잡는 이야기는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와도 조금 결이 다른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호랑이 잡는 이야기를 구연하며 ‘우스운 이야기’라 말하는 걸 볼 수 있다. 우스운 이야기. 이 말은 호랑이 잡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말마따나 이야기에서 호랑이를 잡는 방법은 정말 우습다. 
왜 이렇게 우습게 호랑이를 잡는 이야기들이 나왔을까? 만일 호랑이를 잡는 것이 만만하다면 결코 이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호랑이를 잡는 이야기가 우스운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호랑이를 잡는 사람은 절대 호랑이를 못 잡을 만큼 약한 존재여야 하고, 호랑이를 잡는 방법 또한 일반적인 방법이 아니라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방법이어야 한다. 그리고 호랑이 잡는 이야기들은 정확하게 이런 요소들을 충족하고 있다.
옛이야기 속 호랑이는 무서운 이미지와 우스운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다. 이는 호랑이가 때로는 산신령과 같은 신적 존재로, 또 약한 자를 괴롭히는 폭군으로서의 이중성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호랑이 잡는 이야기에서의 호랑이는 신적인 존재도 아니고, 폭군의 모습도 아니다. 만약 호랑이가 폭군과 같은 존재였다면 주인공은 탈춤에서 자기가 모시고 다니는 양반들을 풍자하는 역할을 하는 말뚝이와 같은 존재여야 할 텐데 그것과도 거리가 멀다. 

4.. 호랑이 꼬리를 밟다

옛이야기 공부 모임 ‘팥죽 할머니’에서 한 친구가 주역의 한 대목을 이야기해줬다. 

천택리(天澤履). 
물 위에 떠 있는 하늘. 하늘인지 물인지 구분이 되지 않으니 호랑이 꼬리를 밟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우리의 삶이 딱 이렇지 않을까 싶다. 때로는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해 나도 모르게 호랑이 꼬리를 밟을 때가 숱하게 많으니 말이다. 

 

내가 지금 호랑이 꼬리를 밟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아찔해진다. 발을 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그대로 밟고 있을 수만도 없다. 호랑이와 맞붙어 싸운다는 건 가당치도 않다. 호랑이 꼬리를 밟고 있는 건 ‘나’이니, 누군가와 힘을 합해 호랑이를 물리칠 수도 없다.(호랑이 잡는 이야기는 혼자서 호랑이를 잡는다. 사람을 미끼로 쓰는 경우도 서로 동의가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힘을 합했다고 볼 수 없다.) 상황을 헤쳐나가는 건 오롯이 내 몫이다. 

 

이럴 땐 정공법은 불가능하다. 호랑이가 미처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허를 찌르는 것이 최선이다. 호랑이에게 다른 미끼를 던져주기도 하고(기름 먹인 강아지, 사람), 호랑이한테 꿀꺽 삼켜지고 말았다면 그 속을 공격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걸 하게 해 주기도 하면서(춤을 추게 해 주고) 말이다. 하지만 호랑이 꼬리를 밟아 위기를 맞았을 때 두려움 때문에 그 속에 매몰되고 만다면 이런 방법은 생각해 내기가 어렵다. 기껏 생각해 냈다고 해도 실행에 옮기기가 어렵다. 모든 것은 상황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여유를 갖고 바라봐야 한다. 아마 옛사람들은 그걸 알았기에 위트 넘치는 호랑이 잡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싶다.
문제는 우리가 살면서 호랑이 꼬리를 밟는 일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많다는 사실이다. 호랑이 잡는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한꺼번에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를 잡는 경우가 많은 건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걱정할 건 없다. 한번 호랑이 가죽을 벗겨내면 그 다음 생긴 가죽은 재벌가죽이라 좀 만만해질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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