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것저것/초등 독서평설 - 책읽어주는선생님

[2011년 7월] 빨강 연필

by 오른발왼발 2021. 6. 23.
728x90

글쓰기는 어려워

 

 

 

제가 여러분만 하던 때, 세상에서 제일 하기 싫은 일 가운데 하나가 뭐였는지 아세요? 바로 글쓰기예요. 
방학 숙제로 일기 쓰기를 할 때면 개학을 며칠 앞두고 엉터리로 몰아서 쓰곤 했어요. 날씨가 문제가 되긴 했지만 별 상관없었어요. 저는 방학이 되면, 군인인 아빠가 계신 곳으로 내려가곤 했거든요. 선생님이 계신 곳과 날씨가 다른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날씨도 제 마음대로 적었어요.
단체로 백일장에 나가면 늘 동시만 썼어요. 동시가 좋아서가 아니에요. 동시는 짧으니까, 그래도 좀 만만해 보였기 때문이죠.
사실 글쓰기가 괴로운 가장 큰 이유는 특별히 쓸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쓸 것도 없는데 도대체 뭘, 어떻게 쓰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지요.
다행히 저만 그런 건 아니었어요. 몇몇 아이들을 빼고는 저랑 거의 비슷했으니까요.

책장넘기기

 


『빨강 연필』(신수현 글/김성희 그림/비룡소)의 주인공 ‘민호’도 비슷해요. 일기 쓰는 걸 아주 싫어하지요. 음~. 다시 생각해 보니 저보다는 덜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해요. 일기장도 학교에 제출하는 것과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보여 주지 않는 것 두 가지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엄격하게 말하자면, 민호는 보여주고 검사받는 일기 쓰기를 싫어했던 거지요.
민호의 일기장이 처음부터 두 가지였던 건 아니에요. 3년 전, 민호는 엄마 아빠가 다투는 걸 보고 그걸 일기에 썼어요. 일기를 읽은 담임 선생님이 엄마에게 전화를 하셨고, 민호는 엄마에게 크게 혼이 났지요. 그때부터였어요. 민호는 학교에 제출하는 일기장에는 다른 사람이 봐도 괜찮을 내용만 썼어요. 일기를 쓰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자신이 없어졌지요.
그런 민호에게 굉장한 사건이 벌어졌어요. 사실 그게 엄청난 일의 시작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지요. 그저 주인 없는 빨강 연필 하나를 발견한 것뿐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글짓기 시간에 정말 이상한 일이 생긴 거예요. 민호가 빨강 연필을 종이로 가져가자, 글쎄 그 연필이 저절로 글을 쓰지 뭐예요.
글짓기 주제는 ‘도둑질은 왜 나쁜가?’ 였어요. 전날 ‘수아’의 유리 천사가 사라져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누가 훔쳐 간 게 아니었어요. 민호가 수아 책상 서랍에 있던 유리 천사를 실수로 깨트렸다가 당황한 나머지 깨진 조각들을 숨겨 버렸거든요. 민호는 글짓기 주제를 보고는 막막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전달할 글을 쓰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지요. 그런데 뭐라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빨강 연필을 종이에 대는 순간, 그 신기한 일이 벌어진 거예요.
민호는 빨강 연필이 쓴 글로 선생님께 칭찬도 받고 아이들 앞에서 발표도 하게 됐어요. 빨강 연필은 단순한 연필이 아니라 램프의 요정 ‘지니’와 다름없는 엄청난 보물이었지요. 다른 과목 시간에는 평범한 연필일 뿐이었지만, 글짓기만 하면 달라지는 신기한 연필이었어요. 그것도 아무리 써도 닳지 않는!
이제 민호는 글짓기가 두렵지 않게 됐어요. 손에 쥐기만 하면 기가 막힌 솜씨로 글을 써내는 빨강 연필 덕분에 민호의 글이 교실 뒤 게시판에 붙었고요,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도 금상을 받게 됐으니까요. 민호가 쓴(?)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이란 글은 유명한 동화 작가 ‘송지아’ 선생님께도 칭찬을 받았답니다.
하지만 좋은 일만 생긴 건 아니에요. 글짓기 대표를 도맡아 하던 ‘재규’가 민호를 의심하고 관찰하기 시작했지요. 재규는 민호가 빨강 연필을 손에 쥐기만 하면 놀라울 정도로 눈 깜짝할 사이에 글을 써낸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게다가 ‘우리 집’을 주제로 쓴 글을 보고는 다른 아이들까지 민호를 의심하기 시작했지요.
“네가 아빠랑 야구를 했어?”
“주말농장이 있다고?”
민호네 사정을 대충 아는 아이들에게 민호의 글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어요. 민호는 아빠랑 같이 살지도 않고, 주말농장 따위는 없는 게 뻔하니까요.
민호의 갈등은 점점 커져 가요. 두려운 마음에 빨강 연필을 부러뜨리려 했지만 부러지지도 않았지요. 빨강 연필을 몽땅 깎아서 검은 심만 남게 만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필통 속에 넣어 둔 심이 어느 틈에 완벽한 빨강 연필로 변해 버리기까지 했답니다.
이제 민호는 백일장에 나가 재규와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됐어요. 또다시 빨강 연필의 힘을 빌려야 할까요? 아니면 빨강 연필의 유혹에서 벗어나 민호 자신의 글을 써야 할까요? 친구들도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들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 버리면 좋겠어요. 분명 친구들도 ‘어? 글을 쓰는 게 생각보다 재밌잖아?’ 하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보세요. 어지간히 글쓰기를 싫어했던 저도 어느 순간 글 쓰는 일을 하고 있잖아요.

함께 읽으면 좋아요!

『잃어버린 일기장』(진성현 글/조성흠 그림/창비)
심장병을 앓는 준호가 아파할 때 힘이 되어 주던 일기장. 우연히 준호의 일기장을 보게 된 네 아이들은 준호의 일기 밑에 자신의 글을 덧붙여요. 이렇게 준호를 위로하는 것은 물론 각자의 상처를 치료하며 성장해 나가지요. 

글쓰기의 힘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랍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