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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초등 독서평설 - 책읽어주는선생님

[2011년 9월] 속 좁은 아빠

by 오른발왼발 2021.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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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아빠가 창피할 수 있다!

 

 

어렸을 때, 아빠는 저의 우상이었어요. 세상에서 아빠보다 똑똑하고 멋지고 훌륭한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했지요. 아빠는 우리랑 잘 놀아 줬어요. 술을 마시지도, 담배를 피우지도 않았지요. 가끔 아빠랑 다투긴 했어도 심각한 적은 없었어요. 엄마의 옷 속에 얼음을 넣거나 하는 아빠의 장난으로 자연스럽게 끝이 나곤 했으니까요.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요? 자랑스럽기만 했던 아빠가 갑자기 창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그렇다고 아빠가 변한 건 절대 아니었어요. 변한 건 저였지요. 예전엔 아빠가 멋지게만 보였는데, 언제부턴가 아빠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한 거예요. 한번 눈에 띄기 시작한 아빠의 단점은 갈수록 커져 갔어요. 아빠와의 사이는 점점 멀어졌지요. 아빠와 다시 가까워지기까지는 한참이 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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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좁은 아빠』(김남중 글/김무연 그림/푸른숲주니어)의 ‘현주’는 아빠 때문에 무척 창피했을 것 같아요. 현주네 아빠는 술만 마시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서 ‘고래 아저씨’라는 별명까지 붙었거든요.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했지요.
현주는 변신 로봇도 아니면서 못난 모습으로 변신하는 아빠가 너무 싫었어요. 평소에는 얌전하고 말이 없다가도, 술만 마시면 막무가내 술고래가 됐지요.
처음엔 술 취한 아빠가 싫었는데, 언제부턴가는 술을 안 마신 아빠도 싫어졌어요. 깰 만하면 다시 술을 마시니, 엄밀하게 말해 술을 안 마신 게 아니라 술에서 깨고 있는 상태나 다름없었지요.
아빠 때문에 괴로운 걸로 따지자면 엄마가 더 심할 거예요. 고민하던 엄마는 드디어 큰 결단을 내렸죠. 아빠의 금주 프로그램을 위해 거금 2,000만원을 투자하기로 한 거예요. 그것도 생전 처음 보는 사람 말만 믿고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을 했지요.
그 사람은 아빠가 한 달이면 술과 담배를 끊고, 석 달 안에 체중을 10kg 정도 뺄 것이며, 여섯 달 안에 아기처럼 깨끗한 몸을 가지게 될 거라고 했어요. 현주 생각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엄마는 그 말에 기뻐하며 울기만 했지요.
어쩔 수 없이 현주도 엄마의 계획을 돕기로 했어요. 그 사람이 알려준 금주 방법은 어떻게 생각하면 아주 단순했지요. 우선 아빠를 병원으로 데려가서 건강 검진을 받는 척해요. 그리고 암이 발견됐다고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계획대로라면 아빠는 당장 술과 담배를 끊을 테지요. 수술을 하겠다며 입원시킨 뒤에는 여러 가지 검사도 하고 지방 흡입 수술도 할 거래요. 당연히 아빠는 그걸 암 수술로 아는 거고요. 퇴원을 해서도 음식을 가려서 도시락을 싸 다니고, 회사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오게 될 거래요.
드디어 아빠는 엄마 손에 이끌려 병원에 갔어요. 그리고 위암 판정을 받았지요. 병원에서는 빨리 수술을 받으라고 했어요. 모든 것이 계획대로 척척 진행됐지요.
아빠는 완전히 달라졌어요. 술도 안 마시고, 퇴근하자마자 돌아와 저녁밥을 먹었지요. 공원에도 자주 가고, 저녁밥도 맡아서 하며, 동해 바다로 여행을 떠나자고도 했어요. 현주는 확 달라진 아빠를 보며 뛸 듯이 기뻤지만, 한편으론 미안하기도 했어요. 아빠의 눈빛이 너무 슬퍼졌거든요.
그런데 뭔가 이상해요. 병원에서 진짜 위암 수술을 한다는 거예요. 의사 선생님은 금주 클리닉 같은 건 모른다고, 상관없는 일이라고 했어요. 그래요, 현주 아빠는 진짜로 위암에 걸렸던 거예요. 엄마와 현주는 자기들이 아빠를 속인 것처럼, 아빠가 엄마와 현주를 속이고 있는 거라 믿고 싶었죠.
수술하는 날, 아빠는 병원에 온 현주에게 ‘보고 싶었다’고 했어요. 아빠에게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죠. 아빠는 현주한테 전화를 할까 말까 고민하던 참이었대요. 그냥 목소리나 들을까 하고요. 수술받는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했대요. 수술이 끝나고 퇴원하면 말하려고 했다면서요. 이제야 현주도 아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속마음을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아빠는 기분이 좋을 땐 웃고 기분이 나쁘면 술을 마셨던 거예요.
위를 잘라 내서 ‘속 좁은’ 사람이 된 아빠는 마치 아기가 된 것 같았어요. 아기처럼 묽은 미음만 먹고, 엄마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요. 매일 ‘~해줘’라는 말을 달고 살았어요. 혹시 아빠가 수술을 받고는 진짜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걸까요?
1차 항암 치료를 마친 아빠는 6차까지 있는 항암 치료도 이겨낼 자신이 있대요. 엄마랑 현주가 든든한 뿌리로 아빠를 잡아 주고 있다면서요.
이제 현주는 아빠를 절대 창피해핮 않아요 비록 속이 조금 좁아지긴 했어도, 아빠는 그 어느 때보다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우니까요.


함께 읽으면 좋아요!

 

 

『우리 아빠는 백수건달』(장여우위 글/심봉희 옮김/최정인 그림/대교출판)

‘천다러’는 난폭한 아빠 안에 감춰진 착한 마음을 알고 있대요. 그래서 아빠 몰래 이사를 가면서도 신에게 간절히 빌어요. 아빠가 진심으로 가족을 그리워하게 될 때, 자신이 이사 가는 곳을 알려 주라고 말이에요. 천다러와 아빠가 다시 만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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