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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책/옛날이야기 공부방

아기 장수

by 오른발왼발 2021.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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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아기 장수를 죽였을까?

- 아기 장수 이야기 -

 

 

 

 

1.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전해지던 옛이야기는 어떤 것이었을까? 정확히 통계를 내보지는 못했으나, 아마도 아기 장수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채록된 아기 장수관련 이야기만 해도 수백 편에 이른다. 그것도 어느 한 지역에 집중되어 전하는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더욱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 가운데 아기 장수이야기를 사실로 믿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우선 마을에 있는 말무덤이나, 바위 등이 그 증거로 남아 있는 경우가 정말 많다. 전국 어디에나 아기 장수가 태어났다는 증거가 부지기수로 등장한다. 이럴 경우 열에 아홉은 아기 장수가 태어났었다는 사실을 믿는 듯 싶다. 하지만 그 증거가 없는 이야기의 경우도 화자나 청자가 이야기를 사실로 여기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화자는 내 집안의 이야기’, ‘이웃의 이야기’, ‘실제 있었던 일임을 강조하곤 한다. 그래서 동네 어디에 가면 그 증거가 있다는 이야기도 빼먹지 않는다. 그리고 이야기는 그저 옛날에 있었던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일제시대 때 있었던 일이라 믿기도 하고, 평화로워지면 돌아올 거라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기 장수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2.

아기를 낳았는데, 엄마가 밖에 나갔다 돌아와 보니 아기가 안 보였다. 아기는 천장에 가서 붙어 있었다. 아기의 겨드랑이에는 날개가 있었다. 장수가 나면 삼족이 멸하게 되기에(역적이 되기에) 두려운 마음이 든 부모는 아기를 죽였다. 아기가 죽고 나니 용마가 나타나 울다 죽었다.

 

아기 장수이야기는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눠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가장 기본형은 이처럼 태어난 지 며칠 만에 부모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일반적으로 아기가 태어난다는 것은 축복이다. 특히나 농경사회에서 자식의 탄생은 노동력의 탄생과 같다. 아기는 요즘처럼 부모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는 대상이 아니었다. 부모는 아기를 방 안에 혹은 논이나 밭 한쪽에 두고 일을 하고 쉴 때면 젖을 물렸다. 그러다 보니 아기는 병이나 사고로 일찍 죽는 일이 많았다. 수없이 많던 아기 무덤터는 이렇게 생겼다.

하지만 축복받지 못하는 아기의 탄생도 있다. 원치 않았던 임신으로 태어난 아기들, 혹은 원했던 임신이었으나 도중에 상황이 바뀐 경우일 것이다. ‘아기 장수이야기 속 아기도 마찬가지다. 축복이었을 아기의 탄생은 부모가 아기의 날개를 발견하는 순간 상황이 돌변한다. 아기의 존재가 집안의 비극이 된 것이다.

날개가 과연 무엇이기에 이런 문제가 생긴 걸까?

날개란 날아오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만일 날개가 있다면 천상의 존재, 신적인 존재, 보통 사람과는 다른 능력 등을 가진 사람으로 볼 수 있다. 능력 있는 사람이 그 재능을 펼칠 수 없도록 막을 때 날개를 꺾는다는 말을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야기에서는 이 비범함이 문제가 된다. 가난한 집안에서 비범함을 갖고 태어난 아이는 세상과 불화할 수밖에 없다. 비범함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능력 있는 집안이면 조금 덜하겠지만, 그럴 능력이 없는 가난한 집안에서는 그야말로 문제아가 태어난 셈이다. 더구나 그 비범함이 장수의 기질이었다면 나라를 뒤흔들 난을 일으킬 수도 있다. , 역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역적의 운명은 뻔하다. 잡히면 본인은 물론 삼족이 죽음을 면치 못한다.

부모(집안 사람들)는 두려움에 빠진다. 아기가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갈 존재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자기 아기를 죽일 수가 있어? 이런 말은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부모자식 관계라 해도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목숨이다. 우선 자신이 살고 봐야 한다. 그런데 아기 한 명을 희생해서 나와 다른 가족들을 지킬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의 길이라 생각할 수 있다.

두려움에 빠진 부모는 아기를 맷돌(혹은 다듬이돌, 팥섬 등)로 눌러 죽인다. 또는 날개를 자르자 아기가 죽기도 한다. 이때 부모의 심정은 어땠을까? 문제가 생기기 전에 아기를 없앴으니 안도감을 느꼈을까? 아님 제 손으로 자식을 죽여야 하는 황당한 상황에 피눈물을 흘렸을까? 비범한 아이를 잘 키우지 못하고 죽여야만 하는 세상에 대해 원망을 했을까? 어쩌면 이 모든 감정이 다 휘몰아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선 후회의 감정도 있는 듯 하다. 만약 이 아이의 날개를 자르지 않고 잘 키웠다면 큰 사람이 됐을 거라 말하는 경우도 보이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아기를 죽이는 이들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들은 아기의 미래를 지레짐작하고 모든 걸 합리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행동을 낳은 걸까? 아마도 뿌리 깊은 패배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세상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야 있지만, 그런 시도는 성공한 적이 없고, 실패했을 때 어떤 대가가 찾아올지는 잘 알기에 그런 일은 나(우리 집안) 말고 다른 사람이 대신 해 주길 바라는 마음만 있고 말이다. 이는 일종의 자기 연민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자기 연민은 절대로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3.

또 다른 아기 장수이야기에서 아기는 뭔가 부족한 몸으로 태어난다. 몸이 온전하게 다 있는 게 아니라 반쪽만 있다. ‘반쪽이이야기의 반쪽이가 세로로 반쪽 모습이라면, ‘아기 장수의 아기는 가로로 반쪽 모습이다. , 몸의 아랫도리가 없이 윗도리뿐이다. 그래서 흔히 아기 장수 우투리(윗도리의 방언)’, ‘아기 장수 우뚜리로 불린다. 어린이 책의 대부분이 바로 이 유형의 이야기다.

약간의 변이형이 나오긴 하지만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이 있다. 억새풀로 탯줄을 잘랐다는 것, 반쪽이가 콩을 한 알도 빠뜨리지 말고 볶아달라고 했는데 엄마가 콩을 볶다 한 알이 튀어나오자 입에 넣어 버려서 콩 한 알이 부족했다는 것, 그리고 이 콩 한 알 때문에 우투리는 실패해 죽는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어린이 책에서 주로 채택되는 이유는 부모가 아기를 죽이는 장면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이 이야기는 전해지는 수없이 많은 아기 장수 이야기 가운데 대표작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전체 판본 가운데 다수를 차지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어린이 책을 통해 어린이와 부모는 손쉽게 이 이야기를 접하고, 유일한 아기 장수 이야기처럼 받아들이는 효과를 낳기도 했다.

이야기에서는 아기가 몸은 비록 반쪽이지만 아기 장수라는 증거가 있다. 바로 날개다. 그리고 부모는 아기 장수를 죽이지 않는다. 사람들 눈을 피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날개 있는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문은 퍼지고, 임금의 귀에도 들어갔다. 결국 우투리를 잡으란 명령이 내려진다. 우투리는 그 사실을 알고 몸을 피했지만, 대신 부모가 치도곤 당하고 말았다.

우투리는 어머니에게 콩 한 말을 볶아달라고 했다. 어머니가 콩을 볶는데 콩 한 알이 툭 튀어나오자 그 콩을 입에 집어넣었다. 콩 한 알은 엄청난 비극으로 이어진다. 아기 장수를 죽이러 온 장수가 화살을 쏘자 콩으로 막는데, 콩 한 알이 부족해 화살을 못 막아내고 죽음을 맞는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아이는 죽임을 당하기 전 자신의 시체를 콩 한 말과 함께 바위에 넣어달라며 일정 시기가 되기 전까지 절대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전에 협박에 못이겨(혹은 자의로) 이야기를 하게 되고, 바위가 열렸을 때 콩으로 지어진 갑옷에 콩 한 알만큼의 빈틈 때문에 죽거나 혹은 정해진 시기가 안 되었기 때문에 녹아 사라지고 만다.

이 유형의 경우는 아기 장수의 죽음의 원인을 어머니에게 돌린다. 콩 한 알을 먹은 무책임함, 참지 못하고 이야기를 한 책임이 모두 어머니에게로 돌아간다.

 

4.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아기 장수가 몸이 반쪽은 아니나 세 살이 되도록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한다. 다른 의미에서 반편인 셈이다. 때문에 쉽게 정체가 발각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비범함은 드러나게 되어 있다. 하루는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모를 심는데, 한 관장이 지나가며 네가 심은 모가 몇 포기냐?”고 묻는다. 어머니는 대답을 못하고 관장은 지나간다. 그런데 지금껏 말도 못하던 아이가 말한다. “관장이 타고 가는 말은 지금까지 몇 걸음이나 걸었느냐?”고 물어보라고. 어머니는 기뻐서 관장을 쫓아가 이를 전했고, 관장은 이 아이를 죽이려 한다.

이 뒤의 이야기는 비슷하다. 아기장수는 콩 한 말과 좁쌀 한 말을 구해달라 해서 바위 속으로 들어가며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말을 절대 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결국 사실을 말하고 만다. 바위 속에서 때를 기다리던 아기장수는 때가 채 오기도 전에 바위가 열리면서 모두 녹아 사라진다.

앞서 말한 우투리 이야기와 공통점이 많은 이야기다. 이 이야기 역시 아기장수가 사라지게 된 이유로 어머니를 지목한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지점은 따로 있다. ‘때가 되지 않았다는 것! 어찌 보면 때가 되지 않아 성공을 못 했다는 핑계를 댈 사람이 필요했고 그 대상이 엄마가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과연 그 때라는 것은 언제일까? 계속 기다리다 보면 라는 것이 오기는 하는 걸까?

 

5.

살다 보면 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때라는 것은 가만히 있는다고 저절로 오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때는 스스로 준비하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 스스로 준비하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이 나서야 할 적절한 때를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아기 장수이야기는 가난한 백성들의 패배주의와 자기연민에서 나온 가슴 아픈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그것은 불가능해 보이고, 그러면서 마음속 한가운데 가느다란 희망처럼 누군가 나서서 세상을 바꿔주길 바라는 마음. 하지만 지독한 패배감은 이마저도 불가능한 꿈이자 두려운 일이라 여길 수밖에 없다. 날개 달린 아기는 영웅이지만 막상 그 아이가 태어나면 두려운 마음에 바로 눌러 죽이는 상황은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지독하게 현실적이면서 슬픈 상황이다. 더구나 전국적으로 이토록 많은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것은 그 패배주의와 자기연민이 온나라에 가득했다는 뜻이다.

흔히 우리 민족은 ()’의 민족이라고 한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이란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여 원망과 한이 응어리진 마음을 뜻한다. 어쩌면 이토록 한이 많았기에 패배주의와 자기연민에 가득 찰 수밖에 없겠다 싶다.

하지만 믿는다. 이들은 자신의 희망이 절대 패배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 때면 언제고 달라질 거라고. 더 이상 우리 민족이 한의 민족이 되지 않기를!!

 

 

*

아기 장수 이야기 가운데는 아기의 날개를 꺾거나 잘라도 살아남는 경우가 있다. 대신 그 아이는 본래의 능력을 잃고 평범하게 살거나 오래 살지 못한다. 어쩌면 이렇게 날개가 꺾인 상태로라도 좀더 오래 살길 바라는 것이 부모의 현실적 바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

묫자리를 잘못 써서 아기장수가 태어나는 이야기도 있다. 이 경우는 부잣집에 아기장수가 태어난다. 이 아이도 죽임을 당하는데 그 이유로 아이가 자라면 부모를 해치기 때문이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한다.

아이가 부모를 해칠 것이라는 것은 역적이 될 것이라는 말과 동일한 말이다. 아기 장수 이야기가 집안의 문제로 축소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

날개 달린 아기 장수를 사람이 아니라며 남부끄러워 죽이는 경우도 있다.(대계_날개 달고 태어나 살해당한 아기장수_이정순)

날개 달린 아기를 짐승처럼 여기고 어려워했지만 결국 아이가 자라 장사가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대계_날개 달린 아기 장수_김갑숙)

반대로 날개 달린 아기를 자랑스러워 했으나 사또가 아이의 날개를 자른 이야기도 있다.(대계_날개가 난 아기장수_김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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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장수가 여자인 경우도 있다.

대계_부모에게 죽임을 당한 여자 아기장수_강효신

대계_장수바위_김삼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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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장수가 성공하는 이야기도 있다.

디지털 양주문화대전_성공한 아기장사_이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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