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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책/옛날이야기 공부방

나무도령 밤손이

by 오른발왼발 2021.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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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그림자와 만나기

- 나무도령 밤손이 -

 

 

 

 

1. 내겐 너무 불편했던 이야기

 

나무도령 밤손이이야기 기억나?”

어느새 23살이 된 딸에게 물었다.

몰라. 한번 해 봐.”

어렸을 때는 그렇게도 옛이야기를 좋아하던 딸이었는데, 크고 나서 물어보면 모른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지 않아서였을까?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나무도령이 밤나무에 올라타 물에 떠내려가는 장면이 나오자 아이는 갑자기 이야기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파리, 개미, 멧돼지가 떠내려오는 장면에서는 내가 구해준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 !”를 외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또래 아이가 떠내려오는 장면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가 이야기를 부분부분 기억하고 있었던 건지, 아님 이야기의 흐름상 자연스럽게 나온 반응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덕분에 흥겹게 이야기를 마칠 수 있었다.

이 이야기 어때?”

어렸을 때라면 묻지 않았겠지만, 이제 아이도 다 컸으니 상관없을 듯해서 넌지시 물어봤다.

 

엄마는? 엄마는 안 데려가?”

아버지 말을 잘 듣자.”

동물은 은혜를 갚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아.”

 

첫 번째 반응에는, 엄마를 데려가는 이야기도 있다고 말해줬다.

그럼, 됐고. 당연히 같이 가야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면 말했다.

하지만 뒤의 두 반응에는 내가 딱히 해 줄 말이 없었다. 나 역시도 처음 이 이야기를 알게 됐을 때 무척이나 불편하고 싫었기 때문이다.

 

2. 같은 듯 다른 이야기들

 

이 이야기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이야기들도 있다.

한국구전설화 2-평북2(평민사)에 실린 구해 준 개미 돼지 벌의 보은’, ‘구해 준 벌과 개미의 보은’, ‘구해 준 하루살이 돼지 사람은 나무도령이 태어나는 과정 없이 이야기가 전개된다. 한국구전설화 12-경북(평민사)에 실린 구해준 노루와 뱀과 사람’, 한국구전설화 7-전북1(평민사)에 실린 사람을 구해 주었더니는 뭍에 있던 사람이 홍수가 나서 떠내려가는 동물과 사람을 구해준 이야기다.

앞선 구해준...’ 이야기들은 나무도령의 탄생 과정의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일 테고, 뒤에 나온 구해준...’ 이야기들은 동물은 은혜를 갚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씁쓸한 현실에서 나왔을 것이다.

같은 듯 다른 이야기는 또 있다. 손진태가 채록한 것으로 알려진, ‘나무도령 밤손이의 신화 버전인 목도령과 대홍수. 한국민속대백과에 실린 목도령과 대홍수이야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옛날 천상선녀가 땅으로 내려와 나무(목신)의 정기에 감응하여 아들을 낳았다. 나무에게 얻었다 하여 ‘목도령’이라 불렀다. 선녀가 하늘로 돌아가고, 곧이어 큰 비가 내려 세상이 물에 잠기게 되었다. 아버지인 나무가 목도령을 싣고 물에 떠내려가고 있었다. 그때 물에 휩쓸린 개미떼와 모기떼를 만나자 목도령이 구해주었다. 조금 더 가자 한 소년이 살려 달라고 하는 것을 보고, 목도령이 구해주려 하자 나무가 반대하였다. 하지만 목도령은 소년을 불쌍히 여겨 결국 구해주었다. 이윽고 목도령을 태운 나무가 높은 산의 정상에 도착하였다. 그곳에는 한 노파가 딸과 수양딸(혹은 여종)을 데리고 있었다. 목도령과 소년은 모두 딸과 결혼하기를 바랐다. 소년이 딸과 결혼하기 위해 목도령을 모함하여, 목도령은 모래밭에서 곡식을 가려내는 시험을 보게 되었다. 그러자 물에서 건져 준 개미떼가 나타나 해결해 주었다. 이번엔 노파가 방에 여자들을 숨기고 딸을 찾는 과제를 냈다. 이번에는 모기떼가 나타나 딸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결국 목도령은 딸과 결혼하고, 소년은 남은 여자와 결혼하였다. 대홍수로 인류가 사라졌는데, 이 두 쌍이 인류의 새로운 시조가 되었다.

 

나무도령 밤손이와 목도령 신화의 결정적인 차이는 세 가지다.

첫째는 어머니의 신분이다. 목도령 신화에서는 선녀이고 나무도령 밤손이이야기에서는 과부다.

둘째는 홍수가 끝난 뒤 도착한 곳에서 만나는 사람이다. 목도령 신화에서는 노파였으나 나무도령 밤손이에서는 영감이다.

셋째는 결말이다. 목도령 신화에서는 이들이 새로운 인류의 시조가 됐다고 하지만 나무도령 밤손이에서는 딱히 이 부분이 전하지는 않는다.

목도령 신화와 비슷한 이야기가 한국구비문학대계에도 한 편 채록되어 있다. ‘선녀와 목신의 아들 목도령’(박명숙 구술. 경남 창원, 2014)이다. 그림책 나무도령(송아주 글/이강 그림/도토리숲/2017)목도령 신화를 바탕으로 했다.

이야기를 견줘보면 어쩐지 나무도령 밤손이는 목도령 신화가 민담화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의 신분은 낮아지고, 노파는 영감으로 바뀌면서 남성중심적 이야기로 바뀐 것이라 짐작된다.

하지만 나무도령 밤손이와 같은 듯 다른 이야기들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건 역시 홍수가 난 뒤 동물과 또래 아이를 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래 아이는 나무도령을 위기에 처하게 하지만 동물들은 이를 해결해 준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3. 나무 아버지의 등장과 사라진 어머니

 

나무 아버지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과연 나무도령 밤손이말고 또 있을까? 밤손이가 태어난 된 유래를 알려주는 대목은 어머니가 밤나무 밑에서 오줌을 누었다는 것뿐이다. 옛이야기에서 동물들과의 교접은 흔히 나오는 편이지만 나무와의 교접으로 아이가 태어나는 이야기는 나무도령 밤손이이야기 말고는 아직 보지 못했다.

나무는 한 종류로 한정되어 있지는 않다. 목도령 신화에서는 계수나무고 민담에서는 주로 밤나무가 등장하지만, 소나무나 배나무처럼 다양한 나무가 나온다. 여기서 나무는 우주목을 연상시킨다. 목도령 신화에서는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나무와 혼인해서 아이를 낳는다. 아이는 하늘과 땅의 정기를 모두 받은 존재인 셈이다. 하지만 민담에서는 나무가 우주목 같은 신성이 강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다만 나무가 홍수가 날 것을 예측하는 것으로 보아 나무가 갖고 있는 신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목도령 신화에서는 어머니가 다시 하늘로 올라가면서 나무도령이 자연스럽게 나무와 함께 살게 되지만 민담은 그렇지 않다. 아이는 아버지의 존재를 모르는 채 자라다 아이들의 놀림을 받으면서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인식하게 된다. 이른바 아버지 찾기화소가 등장한다. 아이는 어머니에게 물어 아버지 존재를 묻고, 나무가 자신의 아버지임을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아버지를 알려주지 않는 어머니를 협박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버지를 확인하는 순간, 어머니의 존재는 사라진다. 홍수가 났을 때도 어머니는 구하지 않는다. 어머니와 함께 나무에 오르는 이야기는 구해준 개미 돼지 파리 사람’(한국구전설화 2-평북 2, 27, 평민사)이 유일하다. ‘구해 준 벌과 개미의 보은’(한국구전설화 2-평북 2, 29, 평민사)에서는 어머니와 함께 가야겠다는 아들의 말에 소나무는 너 오마니꺼정 가문 너까지 죽넌다며 말리기도 한다. 이렇게 이야기에서 어머니는 그대로 사라진다. 마치 단군신화에서 웅녀가 단군을 낳고 난 뒤 그대로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목도령 신화와 달리 민담에서 어머니의 신분은 낮아지고, 노파가 영감으로 바뀐 것처럼 이 장면 역시도 남성중심적 관점이 담겨 있는 셈이다.

 

4. 이야기의 핵심 홍수, 새로운 시대, 그림자

 

홍수가 난 뒤의 상황은 신화든 민담이든 모두 같다.

나무도령은 아버지 나무 위에 올라타고 가다가 개미, 모기, 멧돼지 등의 동물을 구한다. 마지막으로 또래 아이가 떠내려오는 것을 보고 구하려 하자 아버지는 그 아이는 살려주면 악으로 갚을 테니 살려주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나무도령은 아버지 말을 거스르고 아이를 건져 올린다. 뭍에 닿자 아버지 나무는 그대로 떠내려가고 구해준 동물들은 각자 떠나고 나무도령과 구해준 아이는 함께 길을 가다 한 집에서 일을 하며 지낸다. 하지만 나무도령은 구해준 아이 때문에 위기에 처하고, 그때마다 구해준 동물들 덕에 위기를 모면한다. 그리고 결국은 주인집 딸과 결혼을 한다.

이는 신화가 민담화되면서 신성이 탈락하고 남성중심적 이야기로 변한 상황에서도 그대로 남아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이 부분은 이야기의 가장 핵심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은 홍수다. 홍수는 기존 질서의 와해와 함께 새로운 질서가 성립하는 계기가 된다. 이야기에서 기존 질서와 새로운 질서는 아버지 시대와 나무도령 시대의 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의 교체를 일으키게 된 홍수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어머니와 잘 살던 나무도령이 아버지를 찾게 되고, 아버지와 매달려 지내는 모습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분석 심리학에서 홍수는 우선 ‘무의식의 범람’으로 이해한다. ‘무의식의 범람’이란 자아와 의식이 스스로를 통제하는 기능을 상실한 채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 콤플렉스에 휘둘리는 상태를 말한다. 《융, 호랑이 탄 한국인과 놀다》(이나미 글, 민음인, 267쪽)

 

나무도령은 그동안 의식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의식하게 되면서 혼돈에 빠진다. 그래서 아버지를 만나자 그동안의 설움을 풀기라도 하듯 아버지 나무에게 매달린다. 게다가 나무도령의 나이는 어느덧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때다. 홍수가 나기 전에 이미 나무도령의 마음은 넘실대고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어쩌면 아버지 나무는 이런 아들의 모습을 보며 홍수를 예견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무의식이 범람하는 상황에서 나무도령은 아버지 나무를 타고 물에 휩쓸려 내려간다. 그리고 아버지 나무의 동의 하에 여러 동물들을 구한다. 하지만 또래 아이를 구해줄 때는 아버지 뜻을 거스른다. 아버지의 조언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아들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

이는 새로운 질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와 같다. 뭍에 닿자마자 아버지 나무는 아들을 내려주고 그대로 떠난다. 아버지의 질서는 이제 통하지 않는 새로운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구해준 아이는 아버지가 말했던 것처럼 은혜를 악으로 갚으려 한다. 다행히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해준 동물들이 나타나 도와줬고, 덕분에 주인집 딸과 결혼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만약 아버지 말대로 또래 아이를 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위기에 처할 일도 없었을 테고, 그럼 구해준 동물들이 나타나 도와줄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는 더 행복했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위기는 그때마다 무의식적 힘을 튀어나오게 해 문제를 해결하게 한다. 만일 위기가 없다면 내 안의 무의식적 힘은 그대로 잠긴 채 튀어나올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구해준 동물들은 나무도령의 무의식적 본능이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구해준 아이는 어떤 의미일까? 이 생각을 하다 보니 마지막에 주인이 두 아이 중 한 명과 자신의 딸을 결혼시키겠다며 자신의 딸과 종을 두고 고르라고 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특이한 건 딸과 종의 모습이 똑같아서 겉모습만으로는 알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나무도령은 이번에도 구해준 동물의 도움을 받아 주인집 딸을 찾아낸다. 나무도령이나 구해준 아이는 겉으로 보기엔 똑같은 사람과 결혼을 한 것이다. 하지만 나무도령은 주인으로서 살아가게 되고, 구해준 아이는 종의 신세가 되어 살아가게 된다.

이 지점에서 어쩌면 나무도령과 구해준 아이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의 두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가 나무도령이 성장하며 자신의 질서를 세워나가는 과정이라 할 때, 나무도령이 구해준 동물들은 무의식이 범람하는 상황에서 꼭 챙겨야 할 것들이고, 구해준 아이는 나무도령의 그림자일 수 있겠다 싶었다. 흔히 그림자는 부정적으로 인식되기 쉽다. 처음 의식할 때는 자신의 미숙하고 열등한 부분을 건드리기 때문에 받아들이기를 꺼리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을 딛고 그림자를 의식화하면, 창조적이며 긍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나무도령이 아버지의 만류에도 또래 아이를 물 속에서 꺼내는 것은 자신의 그림자를 의식화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무도령이 구하는 여러 동물들은 그림자가 의식화되기 이전에 마음에 꿈틀대는 동물적 본능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본래부터 같은 사람인 두 사람은 똑같은 모습을 한 색시와 혼인을 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나무도령과 구해준 아이의 삶은 결국 한 사람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의식에 가까이 있으면서 자아가 모르고 있는 무의식의 일부분을 차지한다. 그것은 우리가 무의식을 의식화하면서, 다시 말해 우리가 가지고 있었으나 모르고 있는 인격부분을 깨달아가면서 성숙해 가는 과정, 즉 자기실현의 과정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무의식의 요소이다. 그것은 성숙한 마음에 이른 첫 관문에 버티고 있는 수문장이다.

우리는 그 험악한, 비굴한, 또는 야비한 자신의 그림자의 모습을 보고 기겁하여 도망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자기 실현의 길로 들어설 수 없다.

《그림자-우리 마음속의 어두운 반려자》(이부영/한길사/52쪽)

 

하지만 언제나 주인 된 삶을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주인 된 삶이란 주인다운 삶을 사는 것이지만 이는 결코 편한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밤손이가 어려움을 겪었던 것처럼 인생의 여러 굽이마다 어려움과 맞서야 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럴 때 당장의 안락함을 위해 우리 마음에서는 틀린 길을 선택하도록 속삭이고, 우리는 그 속삭임에 넘어가곤 한다.

그러나 만약 내 그림자를 곁에 두고 볼 수 있다면 그 그림자가 반면교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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