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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책/옛날이야기 공부방

재주 있는 처녀

by 오른발왼발 2021.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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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운명을 직조하다

- 재주 있는 처녀 - 

 

 

 

옛날에 하루에 모시베 세 필을 짜는 재주 있는 처녀가 살았다. 처녀는 자기처럼 큰 재주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시집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사방으로 큰 재주 가진 신랑감을 구했는데 그런 사람이 나서지 않았다. 이렇게 한 해 두 해 지나다 보니 처녀는 나이가 들어 노처녀가 됐다.

부모는 처녀가 이러이러한 큰 재주를 지녔으니 그에 못지않은 큰 재주를 가진 신랑감을 구한다고 방을 써 붙였다.

하루는 한 총각이 찾아와 자신은 하루에 집 한 채를 짓는 큰 재주가 있다고 했다. 지어보라 하니 과연 하루아침에 삼간 기와집을 포도동 날아가게 지어났다. 하지만 처녀가 보니 방 문설주가 거꾸로 맞추어져 있어 퇴짜를 놨다.

1년 후 총각 하나가 또 찾아왔다. 자신은 하루에 벼룩 석 섬을 잡아 코에 코뚜레를 매서 말뚝에 매는 재주가 있다고 했다. 그게 무슨 재주냐니까 '남이 못하는 재주니, 재주는 재주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다음날 재주를 확인해 보니 끝에서 두 번째 벼룩은 코에 코뚜레를 매지 못하고 모가지에 매어놨다. 처녀는 이 총각을 놓치면 시집을 못 갈 것 같아 신랑으로 삼을까 했으나 결국 퇴짜를 놨다.

그 뒤 몇 해가 지나도록 찾아오는 총각이 없자 처녀는 죽을 수밖에 없다 생각하고 산에 올라가 큰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런데 퍽 소리가 나고 더 떨어지지 않았다. 눈을 떠 보니 중처럼 생긴 사람이 처녀를 소쿠리에 받고 있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사람이요, 귀신이요?"

처녀가 물으니

"아 사람이니 사람을 살리지. 아니면 사람을 살릴 수 있소?"

하고 답했다.

"어떻게 해서 죽는 사람을 살리오?"

하고 물으니

"시주하러 갔다가 절로 돌아오는 길에 바위 위에서 사람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얼른 절에 가서 잣을 갖다가 대나무밭에서 대를 베어 소쿠리를 짜서 받았소."

했다.

처녀가 가만 생각하니 하루에 모시베 세 필 짜는 재주도 좋고, 하루에 기와집 짓는 재주도 좋고, 하루에 벼룩 석 섬을 잡아 코에 코뚜레를 매는 재주도 좋지만 죽는 사람 살리는 재주가 제일 용한 것 같았다.

처녀는 자신의 사연을 다 말하고 같이 살자고 했다.

중도 좋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처녀는 중하고 같이 살게 됐다.

                                                            - <재주 있는 여자>, 《임석재 전집 8-전북 2》, 204쪽 요약 정리

 

 

1. 나만큼 큰 재주를 가진 신랑감을 원합니다.

 

재주 있는 처녀는 당당하게 자기만큼 재주가 있는 신랑감을 구하려 한다. 하지만 하루에 모시베 세 필이라니! 여기에 걸맞은 재주를 가진 신랑감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그럴듯한 재주를 가진 사람도 처녀의 눈에는 허점이 보이니 퇴짜를 놓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신랑감 구하기가 정말 힘들다. 비록 잠시지만, 상대의 허점을 눈감고 신랑감으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마음을 품을 정도로 말이다.

세월이 흐르고 처녀는 흔한 말로 노처녀가 된다. 이젠 퇴짜를 놓을 신랑감이 아예 나타나지도 않는다.

처녀는 죽으려 산을 오른다. 요즘에야 그만한 재주가 있으면 혼자 살아도 될 텐데 왜 죽으려 할까 싶겠지만, 이야기의 배경은 시집도 안 간 여자가 혼자 살아가기란 불가능했던 전통 시대다. 처녀의 선택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 마음은 이해가 가기도 한다.

처녀는 큰 바위에 올라가 뛰어내린다. 그러나 처녀는 중이 들고 있는 소쿠리 안으로 떨어져 목숨을 구한다. 중이 처녀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절에 가서 낫을 가져다 대나무를 베어 소쿠리를 만들어 받은 것이다. 처녀는 목숨을 구해준 중과 같이 살기로 한다. 그 어떤 재주보다도 죽는 사람 살리는 재주가 제일 용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굉장한 반전이다! 큰 재주를 가진 신랑감을 구하던 처녀는 결국엔 중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중이 자신이 떨어지는 짧은 시간 동안 낫을 가져와 대나무를 베어 소쿠리를 만들어내는, 겉으로 드러난 재주에 있는 것이 아니다. 죽는 사람 살리는 재주를 높이 샀기 때문이다. 그러니 앞서 다른 신랑감들의 재주를 확인하듯 소쿠리를 얼마나 잘 짰는지, 잘못된 곳은 없는지 확인할 필요조차 없다.

얼핏 보면 재주 있는 처녀가 도도한 척하다 비렁뱅이 같은 중을 선택하는 모습이 우스워 보일 수도 있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판본이 몇 편 되지는 않지만, 구술된 판본을 읽다 보면 재주 있는 척하면 뭘해. 결국 별 볼 일 없는 중이나 신랑으로 얻게 되는 주제에…….’하며 재주 있는 처녀를 비웃는(?)듯한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구술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옛이야기는 그 고갱이가 남아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 고갱이는 어쩌면 처녀가 진정한 재주란 무엇인가에 대해 깨닫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처녀는 죽음의 위기에서 중의 소쿠리 덕분에 살아난다. 이는 처녀가 다시 태어난 것이라 볼 수 있다. 처녀가 떨어진 소쿠리는 자궁의 모습과 닮아있다. 즉 이 장면은 죽음의 문턱을 넘은 처녀가 자궁을 통해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태어난 처녀는 예전과는 달라졌다. 눈에 보이는 재주보다 귀한 것이 있음을 알게 됐다.

 

2. 처녀의 재주, 신랑감의 재주

 

재주 있는 여자는 자신의 삶에 적극적이다. 신랑감을 구할 때도 부모가 정해준 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기가 정해놓은 것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내가 이만큼 잘났으니 상대도 나만큼 잘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처녀의 재주가 워낙 뛰어나다 보니 거기에 걸맞은 신랑감 구하기가 어렵기만 하다. 기준에 도달하는 사람이 없으니 처녀도 시집을 못 간다. 자기가 정한 기준의 덫에 자신이 걸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처녀는 자기 마음에 쏙 드는 신랑감을 구한다. 이는 처녀가 예전에 바라보던 재주의 기준이 아니라 새로운 재주의 기준을 발견한 덕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자꾸 고개를 든다. 처녀는 남들과 다른 재주가 있기에 자기만큼 큰 재주를 가진 신랑감이 아니면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남다른 재주를 가진 사람은 찾기 힘들다. 그렇다면 남다른 재주가 없거나, 아예 별다른 재주가 없는 여자들은 재주 있는 처녀처럼 당당하게 신랑감을 고를 수는 없는 걸까?

누구나 재주는 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맞다. 누구나 재주는 있다. 하지만 처녀와 같은 큰 재주는 아무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죽하면 처녀가 저와 같이 큰 재주 있는 신랑감을 구하려 해도 구하지 못하겠는가.

만약 이 이야기가 진짜로 처녀처럼 큰 재주가 있는 사람의 이야기라면 이야기를 듣는 평범한 사람들은 재주 있는 처녀와 동일시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냥 보통의 재주가 아니라 남다른 큰 재주여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야기에 나오는 재주는 남들은 해내지 못하는 나만의 재주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상징한다고 할 수도 있다.

더구나 이야기에 나오는 재주는 모두 비현실적이다. 하루에 모시 베 세 필을 짜거나, 하루에 세 칸 기와집을 짓거나, 하루에 벼룩 석 섬을 잡아 코에 코뚜레를 매서 말뚝에 매거나, 바위에서 떨어지는 사람을 보고 낫을 가지고 와 대나무를 베어 소쿠리를 짜는 일은 애초에 현실에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과장된 표현이라 하기엔 너무나 허무맹랑한 과장이다.

사실 베 짜기, 집 짓기, (벼룩의) 코뚜레 매기, 소쿠리 짜기는 우리의 생활 그 자체와 다름없다. 베 짜기는 의생활이라면, 집 짓기는 주생활이요, 벼룩의 코뚜레를 매는 것은 소의 코뚜레를 떠오르게 한다는 점에서 농사일, 즉 식생활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경제력을 갖고 있던 처녀는 신랑감으로도 경제력이 확실한 사람을 얻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랑감 후보자들에게는 부족한 점이 보였고, 만족스럽지 않았던 처녀는 퇴짜를 놓는다. 어쩌면 처녀가 원했던 신랑감은 단순히 경제력 있는 사람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싶은 대목이다. 그러니 꼼꼼히 이리저리 살펴볼 수밖에 없었고 허점을 발견하자 퇴짜를 놓았을 게다.

반면 소쿠리는 의. . 주 가운데 어느 것의 중심에도 있지 않다. 하지만 결국에 소쿠리를 짜서 처녀를 받아낸 중이 처녀의 신랑감이 된다.

여기서는 중이 소쿠리를 짰지만, 일반적으로 소쿠리를 짜는 것은 신분 낮은 고리백정이 하는 일이다. 조선 시대 중 역시 천민이었다. 이처럼 처녀가 하찮은 신분의 신랑감을 선택했다는 것은 처녀가 신랑감의 조건으로 신분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쿠리는 무엇이든 담는 것이다. 곡식이나 열매나 쓸모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담는다. 애초에 쓸모없는 것은 담지도 않지만, 물에 씻은 곡식이나 열매의 물기가 있다면 소쿠리 틈새로 빠져나가게 한다. 신랑감을 구하지 못해 죽으려 몸을 던진 처녀도 소쿠리에 담겼다. 즉 쓸모 있는 처녀는 소쿠리에 담겼고, 자신의 목숨을 구한 중이 실은 사람 살리는 재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신랑으로 삼은 것이다. 그렇다면 처녀의 진짜 재주는 베 짜기가 아니라 진정한 재주를 알아보는 것이 아니었을까? 또 중의 재주는 소쿠리 짜는 게 아니고 사람 살리는 재주이고 말이다.

 

3. 동반자를 알아본다는 것

 

<1>

저처럼 큰 재주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시집가지 않겠어요!”

처녀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사방으로 구해봐도 그런 신랑감은 나서지 않았다.

 

<2>

부모는 처녀가 이러이러한 큰 재주를 지녔으니 그에 못지 않은 큰 재주를 가진 신랑감을 구한다고 방을 써 붙였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의 신랑감이 찾아온다.

 

<3>

노처녀가 된 처녀는 죽기로 마음을 먹고 높은 바위에서 뛰어 내린다. 그러나 처녀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소쿠리를 짜서 받아낸 중 덕분에 살아난다. 처녀는 중이 사람 살리는 재주가 있음을 알고 그 사람과 결혼한다.

 

처녀의 신랑감 구하는 과정은 크게 3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조건은 까다로우나 신랑감을 구하는 과정은 소극적이다. 자기만큼 큰 재주를 가진 신랑감이 알아서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다. 마치 머릿속으로만 멋진 신랑감을 꿈꾸는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방을 써 붙이며 적극적으로 신랑감을 구한다. 그러자 신랑감이 찾아온다. 처녀로서는 이제야 비로소 신랑감을 만나보는 셈이다. 하루에 기와집을 짓는 신랑감이나, 하루에 벼룩 석 섬을 잡아 코뚜레를 꿰어 말뚝에 매는 신랑감이나 그 재주가 출중하기만 하다. 처녀는 처음 만난 신랑감이 반가울 만도 할 텐데 꼼꼼하게 살피는 일을 빼먹지 않는다. 허점 하나 없이 완벽한 재주가 어디 있을까? 결국 처녀는 허점을 발견하고, 퇴짜를 놓는다.

세 번째 단계에서 처녀는 죽기로 마음먹고 바위에서 뛰어 내린다. 이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이다. , ‘나만큼 큰 재주를 가진 신랑감’, ‘티끌만큼의 허점도 없는 재주 있는 신랑감을 구한다는 것을 포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 걸 내려놓았을 때 진짜 재주 있는 사람을 발견한다. 그제야 처녀는 알게 된다. 자신이 원했던 재주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말이다.

 

처녀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배우자를 구하는 우리의 모습과 겹쳐진다. 처음에는 막연한 자신의 이상형을 좇지만 그 이상형이 나에게 나타나기란 쉽지 않다. 그래 자신의 조건을 내세워 만난다. 하지만 조건을 내건 만남은 겉으로 보기엔 그럴듯하게 조건이 맞는 것 같지만 만나서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처음엔 미련 없이 거절하지만 이런 일이 잦아지면 그냥 딱 조건만 보고 그냥 결혼 할까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처녀가 두 번째 나타난 신랑감의 허점을 보고도 잠시 마음이 흔들리듯이 말이다. 그러다 결혼에 대한 갈망을 포기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간절히 원했던 것을 포기했을 때 새로운 것이 보이기도 한다는 점이다. 처녀가 그랬듯이 모든 걸 포기한 뒤에 자신이 원했던 이상형과는 전혀 다르지만, 자신에게 딱 맞는 배우자를 얻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이야기는 자신에게 맞는 배우자를 찾는 이야기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확실한 건 자신에게 딱 맞는 배우자를 고르는 일은 겉으로 보이는 것 외에 그 사람의 이면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4. 베 짜는 처녀와 소쿠리 짜는 중

 

인생은 마치 베를 짜듯 실을 가로 세로로 엮어 내 만들어나가는 것과 같다. 선천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과 자신의 노력으로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가로 세로로 삼아서 말이다.

공교롭게도 처녀가 선택한 중 역시도 소쿠리를 짠다. 소쿠리는 베와 짜는 방식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가로 세로로 엮어 내 만들어나간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다른 듯 서로 닮아있는 삶이다. 처녀가 베를 짜며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나가듯, 중은 소쿠리를 짜며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나간 셈이다. 그러니 조금 늦었지만 둘은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볼 수밖에 없다. 인생을 만들어나가는 삶의 방법이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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