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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책/옛날이야기 공부방

사람으로 변신한 쥐 이야기

by 오른발왼발 2022.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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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똑같이 생긴 너, 대체 누구냐?

- 쥐의 변신담 이야기 -

 

 

 

밤에 손톱을 깎으면 안 되는 이유는

 

밤에 손톱을 깎으면 안 돼!”

손톱을 깎아서 함부로 버리면 쥐가 먹고 그 사람으로 변해!”

 

어릴 적 흔히 들었던 말이었다. 손톱을 함부로 버리면 쥐가 먹고 나랑 똑같은 사람으로 변한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 그것처럼 무서운 말은 없었다. 나는 손톱을 깎을 때면 늘 휴지에 꼭꼭 싸서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리곤 했다. 쥐가 내 손톱을 절대 먹지 못하도록!

밤에 손톱을 깎으면 안 되는 이유도 같은 뜻으로 이해했다. 누가 설명해주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당연히 쥐는 밤에 많이 돌아다니니까 밤에 깎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옛날에는 전기가 없어 어두웠고, 손톱깎이가 없어서 가위나 낫으로 잘랐다고 한다. 그러니 밤에 손톱을 자르다간 다치기도 쉬웠을 테고, 어쩌면 그래서 밤에 손톱을 깎지 못하게 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잘린 손발톱에 사람의 혼이 담겨있다는 믿음이 전 세계적으로 있다고 한다. 그래서 손발톱을 주술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예전엔 쥐가 손톱을 먹는다고 왜 사람으로 변할까 궁금했는데, 이제야 궁금증이 풀린 느낌이다. 또 밤에 손톱을 깎으면 위험하기도 했지만, 혹시라도 어딘가 튀어 날아간 손톱을 찾지 못해 쥐가 먹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 또한 있었을 테고 말이다.

 

쥐가 둔갑한 까닭은?

 

옛이야기에는 동물이 사람으로 둔갑하는 경우가 많다. 쥐도 그 가운데 하나다. 쥐는 사람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둔갑해서 진짜를 몰아내고 주인 행세를 한다. 쫓겨난 진짜는 한참을 헤매고 다니며 해결 방법을 찾는다. 그 해결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쥐의 천적인 고양이를 이용한다. 하지만 고양이를 얻기까지 과정은 그리 쉽지 않다 고양이가 보통 고양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천년 묵은 고양이 혹은 세 발 달린 고양이처럼 특별한 고양이가 필요하다. 사람으로 둔갑한 쥐가 보통 쥐가 아니니 고양이도 보통 고양이는 아닐 수밖에 없다.

 

그런데 쥐는 어떨 때 사람으로 둔갑할까? 흔히 아는 이야기에서는 쥐가 손톱을 먹고 둔갑을 한다. 하지만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구전설화(임석재/평민사)를 보면 쥐가 둔갑하는 경우는 다양했다. 옷이나 갓을 벗어둔 사이에 이를 쥐가 입고 둔갑하기도 하고, 여자가 밥을 쥐에게 밥을 계속 주었는데 그 쥐가 둔갑하기도 하고, 부자의 곳간에서 오래 살던 쥐가 둔갑하기도 한다. 물론 그 이유가 딱히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쥐가 오래되면 사람이 된다(쥐좆도 몰랐나, 구비문학대계, 유복동, 강원 홍천군 내촌면, 2010.)는 말이 있는 걸 보면 이유가 나오지 않는 경우 역시 오래 묵은 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쥐가 어떤 상황에서 둔갑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흐름 또한 달라진다. 의외로 쥐가 손톱을 먹는 경우는 편수도 많지 않고 이야기가 단순한 편이다.

손톱을 먹는 이야기 가운데 조금 특별한 경우는 <괴서>(임석재 전집4, 강원)인데, 여기서는 딸이 손발톱을 깎아서 쥐굴에 넣는다. 딸이 결혼해 첫날 밤 자고 일어나 보니 신랑이 둘이 되어 있었다. , 손발톱의 주인과 둔갑한 대상이 차이가 있다. 이는 여자가 쥐에게 밥을 주자 그 쥐가 남편으로 변하는 이야기들과 같은 맥락이라 여겨진다.

또 옷이나 의관 마패를 쥐가 가져가서 둔갑하는 이야기들도 있다. <콩쥐팥쥐>에서 팥쥐가 콩쥐 옷을 입고 콩쥐 행세를 하거나,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호랑이가 엄마 옷을 입고 엄마 행세를 하는 것처럼 누군가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그 사람으로 둔갑한다는 의미다. 쥐가 옷이나 의관. 마패를 가져가서 그 사람으로 둔갑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듯 쥐가 사람으로 둔갑하는 경우는 무척 다양하다. 당사자가 뭔가 원인을 제공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 다른 사람의 행동으로 생긴 일일 수도 있다. 혹은 별다른 원인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자신 혹은 가족의 누군가가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다고 해서 원인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쥐가 오랜 기간 그렇게 크게 자라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문제의 원인이 자라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가 가족에게 가짜 취급을 받은 까닭

 

하나부터 열까지 나랑 똑같은 모습의 내가 또 나타난다는 사실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는 이제부터 내가 진짜 나임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일이란 쉽지 않다. 갑자기 나타난 가짜 역시 나와 똑같기 때문이다.

나와 똑같이 생긴 누군가 나타났다는 점에서 도플갱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만약 도플갱어를 만나게 되면 그 사람은 죽는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는 진짜가 집에서 쫓겨난다. 내가 둘일 수는 없기에, 집에서 거부당한 나 역시 죽은 사람이 된 셈이다.

그렇다면 진짜와 가짜의 차이는 전혀 없는 것일까?

이야기에서는 흔히 진짜 가짜를 가리기 위해서 세간살이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묻는다. 진짜는 제대로 답을 못하지만, 가짜는 정확하게 대답한다. 결국 가짜가 가족으로부터 받아들여지고 진짜는 쫓겨난다.

진짜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까닭은 오랫동안 공부를 하기 위해 집을 떠나 있었거나, 세간살이의 세세한 부분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 수 있다. 반면 쥐가 둔갑한 가짜는 세간살이의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알고 있다. 아마도 집안 곳곳을 뒤지고 다니는 쥐의 습성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진짜와 가짜를 가리는 기준으로 세간살이를 질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간살이를 안다는 건 가족의 현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공부 등을 이유로 집을 떠나 있던 진짜는 현실을 제대로 알 리가 없다. 아니, 어쩌면 공부를 핑계로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옷이나 의관을 벗어놓은 사이에 쥐가 그것을 가져가 가짜로 둔갑하는 경우는 대부분 세간살이에 대한 질문이 없다. 옷이나 의관은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역할을 상징한다. 따라서 옷이나 의관을 벗고 측간에 갔다는 설정은 자신이 맡은 위치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절에 갔던 진짜가 세간살이를 맞추지 못하는 것이나, 옷이나 의관을 벗고 측간에 간 것이나 같은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무언가 현실을 회피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가족들은 가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진짜가 회피하고 있던 문제를 가짜는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 가족이 원하는 모습을 가짜는 갖추고 있었다.

다시 도플갱어가 연상된다. 정신의학에서 도플갱어는 정신적 형평성이 부족할 경우 보이는 현상이라고 한다. 모습은 똑같지만 다른 점이 있는데, 흔히 성격이 반대로 나타나거나, 그 사람이 바라던 이상형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이야기에서 가짜는 진짜가 갖지 못한 면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야기 속의 가짜(도플갱어)는 나의 또 다른 측면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길

 

진짜는 집에서 쫓겨난다. 쫓겨난다는 것은 옛이야기에 흔히 등장하는 화소다. 이는 진짜 세상에 나왔다는 뜻이고, 기존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로 태어나는 과정이다. 쫓겨남은 위기이자 성장의 기회이다.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평생 세상을 떠돌아야겠지만, 그 속에서 성장하고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냈다면 집으로 돌아가 가짜와 마주할 수 있다.

몇몇 이야기에서는 별다른 고생 없이 문제 해결 방법을 알아내기도 하지만(막내딸이 원인을 알고 있거나, 점쟁이에게 물어) 대부분의 이야기는 오랜 시간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절에 가서 지내기도 하고, 가 나타나 집안 식구들이 모두 죽고 처녀만 혼자 남아있는 집에 가서 문제를 해결해주기도 한다. 그 결과 쥐가 둔갑한 가짜를 물리칠 수 있는 특별한 고양이를 얻는 방법을 알게 된다. 물론 방법만 안다고 바로 고양이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 고양이가 있는 절에 가서 100명의 여승과 관계를 맺고 고양이를 받아와야 하는 등의 난관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나 진짜는 결국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고양이를 얻어서 집으로 간다.

고양이를 가지고 쥐에게 갔으니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된다. 가짜는 쥐의 모습으로 죽음을 맞고, 진짜는 가족들에게 자신을 증명한다.

진짜는 자신을 몰아냈던 가족들이 서운해 한바탕 난리라도 쳤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한두 이야기를 빼면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마치 별다른 일이 없었던 듯 마무리된다. 아내가 임신한 이야기에서도 쥐새끼를 빼내는 것으로 흔적을 지우면 끝이다. 애초에 이 사달이 난 원인은 가족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진짜는 자신과 똑같은 가짜를 퇴치하고 다시 자기 자리를 찾았다. 가짜란 다름 아닌 내가 미처 모르고 있던 내면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마치 쥐가 우리와 한집에 살면서도 늘 숨어야 하고 도망 다녀야 하는 존재였듯이, 내 안의 나는 드러나지 않는 존재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면의 나는 언제든 갑자기 불쑥 겉으로 드러날 수 있다. 이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나는 또 다른 내 모습에 잠식되고 말 것이다. 이야기 속의 진짜는 그걸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달았다. 고양이는 쥐의 천적이기도 하지만, 내가 내면의 나를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다.

이야기 속 진짜는 내 안의 나와 마주하고 이를 다루는 법을 알게 됐다. 그러니 이제 진짜는 달라진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변신 쥐'를 모티브로 한 동화책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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