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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책/옛날이야기 공부방

돌 노적과 바꾼 쌀 노적

by 오른발왼발 2022.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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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의 무기력에 대한 도전

- 돌 노적과 바꾼 쌀 노적 -

 

 

 

1.

이 이야기는 아주 단순하다.

욕심 많은 부자가 가난한 집 돌더미 위에 있는 금덩이가 탐이 나 자신의 집 쌀노적과 바꾸려 한다. 돌더미 위에 금덩이가 있는 것을 모르는 가난한 집에서는 기꺼이 바꾸고자 한다. 그런데 가난한 집에서 쌀노적을 옮겨 가려 할 때 부자는 제일 위에 있는 것은 자기 집 지킴이라며 내려놓고 가져가게 한다. 그러자 가난한 집에서도 부자가 돌노적을 가져갈 때 제일 위에 있던 돌(금덩이)은 자기 집 지킴이니 내려놓고 가져가라고 한다. 결국 부자는 쌀노적을 아무것도 아닌 돌더미와 바꾸게 된다.

이미 충분히 잘 살고 있던 부자가 가난한 집의 하나뿐인 금덩이마저 차지하려 얕은 꾀를 쓰다 결국 큰 손해를 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흔히 생각하는, 전형적인 옛이야기의 주제다.

 

그런데 정말 이게 이야기의 다일까?

이야기에서 욕심 사나운 부자의 모습은 전혀 새롭지 않다. 새로움은 가난한 집에서 돌노적을 쌓은 데 있고, 가난한 집에서 돌노적을 쌓게 된 계기를 만들어낸 인물에 있다. 그 인물은 대개는 예닐곱살 정도의 어린아이다. 간혹 어린아이 대신 시집온 지 얼마 안 된 며느리가 등장하기도 한다. 어린아이건 혹은 며느리건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건 바로 집안에서 큰소리를 내거나 나서서 무언가를 하자고 나설 형편이 못되는, 집안의 약자라는 점이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가난한 집 어린아이가 당돌하게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내가 호주를 물려받어각고 집안을 잘 살게 해 볼 티니 호주를 물러주시요

                                                 돌노적과 벼노적과 바꾸다, <한국구전설화 6_충북>

 

당돌하기 그지없다. 아버지는 처음엔 이 당돌한 아이에게 화를 내기도 하지만 결국엔 호주를 물려준다. 가부장 질서가 엄격하던 시기에 이런 말을 하는 아이의 태도는 정말 대단하다 할 밖에 없다. 그런데 궁금하다. 어린아이한테 호주를 물려주고 마는 아버지의 마음은 무엇일까?

혹시 아무리 일을 해도 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무기력에 빠져있던 건 아닐까 싶다. 잘 살 수 있다는 아무런 희망이 없으니, 그 무게감을 덜기 위해서라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호주 자리를 내놓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디 가난할 때뿐이겠는가? 무슨 일이든 해결이 되지 않고 정체되어 있을 때 우리는 쉽게 무기력에 빠진다. 처음엔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기도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될수록 마음을 다잡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점점 늘어나고, 결국엔 깊은 무기력증에 빠지고 만다. 특히나 끊임없이 모든 상황이 내 노력과는 상관없이 흘러갈 때 무기력증은 더욱 커지고, 내가 노력을 해야 할 어떤 이유도 찾지 못하게 된다. 가난한 집 아버지처럼 말이다.

 

2.

무기력증에 빠지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만 마음이 따라주질 않는다. 그럼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어 보자.

아버지는 아이에게 호주를 물려준다. 아니, 물려줬다고는 하지만 실은 던져버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에게 호주란 가난한 식구들을 부양하지 못한다는 부담만 담긴 자리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버지는 호주 자리를 내려놓고서는 마음의 짐을 던다. 새로 호주가 된 아이의 말을 따르며, 한 발자국 물러서 상황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식구들에게 말한다.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앞산 뒷산으로 팥밭을 일구고 저녁때 집이 돌아올 때는 돌을 한 점식 지고 와서 노적 같이 싸올려 놓자고 했다. 

 

식구들은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일을 한다. 밭을 매는 일은 늘 하던 일이었을 거다. 하지만 이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집에 돌아올 때 반드시 돌을 가져와 돌노적을 쌓는 것이다.

돌노적을 쌓는 일은 처음에는 별 티도 안 났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돌노적이 제법 쌓였을 때는 식구들의 마음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돌노적을 보며 , 우리가 이만큼 나가서 일을 했구나!’하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나름의 뿌듯함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돌노적을 쌓는 것은 아무리 일해도 아무 성과도 없는 것 같은 무기력한 상황에서 가시적인 변화를 스스로 느낄 수 있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볼 때 아이의 역할은 무척 크다. 아이는 식구들이 부지런히 움직일 것과 함께 부지런히 움직인 것에 대한 효과를 눈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셈이다. 어쩌면 아이는 무기력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야기에서 이런 변화를 끌어내는 인물이 아이 혹은 며느리로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는 늘 새롭다. 어리면 어릴수록 더 새롭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발상을 전환하는 힘이 있다. 며느리도 비슷하다. 기존의 질서가 유지되던 집안에서 며느리는 새로운 인물이다. 기존 질서가 지배하는 세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는 사람은 기존의 질서 속에서는 결코 나오지 않는다. 옛사람들도 그걸 알았던 거다. 그래서 이야기에서 이 역할을 어린아이와 며느리에게 시켰을 것이다.

 

3.

산길을 가다 보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쌓아놓은 돌탑을 흔히 보게 된다. 그리고 지나다 돌탑을 본 사람들은 여기에 또 하나의 돌을 쌓아 올리며 소원을 빌곤 한다. 근처에 굴러다니던 쓸모없던 돌은 사람들의 소원이 깃든 돌탑으로 변한다. 쓸모없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이 되는 순간이다.

가난한 집에서 쌓은 돌노적은 돌탑을 닮아 있다. 돌을 쌓아올렸다는 것도 그렇고, 그 돌에 잘 살고 싶은 식구들의 소망이 담겨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런데 궁금하다. 돌노적 제일 꼭대기의 금덩이는 진짜 생금덩이였을까? 가난한 집에선 그 생금덩이를 보는 눈이 없었기 때문에 모르고 있었던 걸까? 그건 아닐 것이다. 그 금덩이는 잘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한 식구들의 소망의 결정체일 것이다. 마치 내 복에 산다에서 숯 굽는 가마의 이맛돌이 금덩이라고 나오지만 금은 가마에 쓰기에 적당치 않은 소재이기에, 열심히 일한 대가의 상징으로 보듯이 말이다. 그러니 그 돌은 그 집의 지킴이가 맞다.

그렇다면 부자가 지킴이라며 내려놓으라 했던 쌀섬은? 아마 그것 역시 부자의 지킴이가 맞을 것이다. 지주로서 남아돌아도 쌀을 쌓아놓는 부자의 욕심은 바로 그 쌀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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