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말을 알아듣는 남자, 쥐의 말을 알아듣는 여자
- 짐승 말을 알아듣는 사람 -
1. 짐승의 말을 알아듣고 싶어!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강아지 말 번역기’라는 것을 봤다. 개가 짖는 소리를 사람의 말로 번역해 보여 주는 물건이었다. 정말 기발했다. 궁금한 마음에 ‘강아지 말 번역기’에 번역된 말들을 찾아봤다.
열 받네!
해보자는 거야?
싸울 거야? 너 세냐?
싫어. 옆에 오지 마.
덤벼봐! 덤벼봐!
천국이 따로 없네.
싫다고 하잖아.
같이 놀자!
음~ 왠지 마음에 안 들어.
재밌었다. 번역이 맞는지 안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개의 표정과 개가 짖을 때의 높낮이 등과 연결해 보면 대충 맞을 것도 같았다. 어쩌면 진짜 개의 말을 번역한다기보다는 개가 짖는 소리 몇 가지를 유형화해서 보여 주는 것 같기도 했다.
옛이야기 ‘짐승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생각났다. 강아지 말 번역기가 제대로 번역하고 있는지 짐승 말을 알아듣는 사람에게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처음 이 이야기를 알게 됐을 때 나는 짐승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무척 부러웠다. 짐승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 재능은 노력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내 신경은 온통 ‘짐승 말을 알아듣는’ 것에만 맞춰졌다. 덕분에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이 이야기를 떠올렸을 때, 기억나는 것은 오로지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이번에 다시 ‘짐승 말을 알아듣는 사람’을 봤다. 이상하게도 이번엔 짐승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그렇게 부럽지 않았다. 강아지 말 번역기가 신기해 보이긴 했지만 그게 꼭 필요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남자가 주인공이 경우와 여자가 주인공인 경우의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짐승의 말을 알아듣지만, 이야기의 흐름은 완전히 다르다.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가 달라진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2.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 - 남자의 경우
형제가 길을 가고 있었다. 형은 짐승의 말을 알아들었다. 까마귀가 “나무 밑에 고기가 있다”고 하는 말을 듣고 가보니 시체가 있었다. 돌아 나오다 죽은 사람의 가족에게 붙잡혀 관가에 갔다. 남자는 자신은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데 까마귀의 말을 듣고 가본 것이라고 했다.
사또는 제비 새끼 한 마리를 감추고 어미가 왜 우는지 물었다.
“털도, 고기도, 뼈도 못 쓰는 내 자식을 내놓아라.”
형이 답하자 사또는 형제를 풀어주고, 이방에게 형제의 뒤를 밟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오라 했다.
형제는 주막에서 술과 소고기를 시켜 먹었는데, 형은 먹지 않았다. 주막을 떠난 뒤 동생이 형에게 왜 먹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형이 말했다.
“술은 인(人)술이고, 고기도 인(人)고기라 더러워 안 먹었다.”
이방은 돌아와 사또에게 고했다. 사또는 술을 담근 사람과 고기를 잡은 사람을 불러 확인했다. 술은 묘를 파낸 자리에 밀을 갈아 그 밀로 누룩을 빚어 만든 것이고, 소는 사람의 젖을 먹여 키운 소였다.
사또는 다른 것은 들은 게 없는지 물었다. 이방이 대답했다.
“사또께서는 원래 성이 권 가인데 신 가로 잘못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또는 깜짝 놀라 칼을 들고 엄마한테 가서 바른대로 말하라고 했다.
“집을 지을 때, 집을 짓던 권 목수하고 눈이 맞아 너를 낳았다.”
엄마가 말했다.
《대계》,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 사직이>, 최경태, 경북 군위군 산성면, 1982, 요약.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렇다. 판본에 따라 조금씩 다른 부분은 ‘사람시체’가 아니라 ‘죽은 소’이거나 사또의 아버지가 ‘중’, ‘관상쟁이’ 등으로 바뀌는 정도다.
그런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조금 이상한 점이 보인다.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중간에서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야기 후반부는 사또가 중심이 된다. 왜일까?
남자는 짐승의 말만 알아듣는 게 아니다. 술과 고기의 내력도 알고 있고, 사또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그 내력도 알고 있다. 즉, 이 사람은 삶과 죽음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짐승이 까마귀와 제비와 같은 ‘새’였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한다. 하늘을 나는 새는 종종 하늘의 뜻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뛰어난 능력이 있는 사람이 “고기가 있다”는 까마귀 말만 듣고 고기를 찾으러 갔다가 누명을 쓰고 만다. 이 사람은 왜 그곳을 찾아갔을까? 까마귀 말은 알아 들었지만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님 세상 일을 꿰뚫어 보는 재주는 있지만 자신의 일은 꿰뚫어 보지 못하기 때문일까? 그래도 짐승 말을 알아듣는 일은 역시 유용하다. 덕분에 누명을 벗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사또는 짐승의 말을 알아듣거나 세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이 사람이 범상치 않은 존재임을 눈치챈다. 그래서 이방을 시켜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오게 한다. 인고기와 인술의 내력을 확인한 순간 사또는 그 사람에 대한 신뢰가 더욱 커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신뢰가 커졌을 때 마침내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듣는다. 말하지 않아도 사또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지 짐작이 간다. 사또는 엄마를 협박해 사실을 확인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위 이야기에서는 비밀을 알고 있는 이방을 죽인다는 내용이 있지만, 대부분의 이야기에서는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엄마 역시 잘못을 저질렀다는 느낌 없이 자연스럽게 사실을 인정한다.
사또는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과 여러모로 비교되는 인물이다. 짐승 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내다보지 못했지만, 사또는 그 사람을 통해 자신의 비밀을 알아챈다. 짐승 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인고기와 인술이 더럽다며 먹지 않는다. 이는 자신의 고결함과 특별함을 증명하는 방법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이 깨닫지 못한 것이 있었다. 바로 생명의 소중함이다. 묘를 파낸 자리는 시체가 썩어 땅이 된 것이다. 죽음은 다시 생명을 키워내는 땅이 되었고, 덕분에 땅이 없어 묘를 파내야 했던 사람은 먹고살 수 있게 됐다. 소가 사람 젖을 먹고 자라게 된 데에도 이유가 있었다. 소는 새끼를 낳고 죽었고, 사람은 낳은 아기가 죽었다. 사람은 아기를 낳고 나오는 젖을 어미를 잃어 젖을 못 먹는 송아지에게 먹인 것이다. 이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었다. 남자는 삶과 죽음의 비밀은 알았지만,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서는 몰랐던 셈이다. 또한 비밀을 당사자와 나누지 않는다.
그래서 이야기를 곰곰 읽으면 읽을수록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보다는 사또에게 마음이 기운다. 혼자만 고귀한 척하며 남을 얕보는(사또의 출생의 비밀을 이야기하며) 태도 보다는 비록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 재주 같은 건 없어도 사또가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 또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듣고도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더 훌륭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3.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 - 여자의 경우
여자도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다. 하지만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 남자 이야기와는 달라도 아주 다르다. 남자는 이야기 중간에서 사라져버렸지만, 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다. 여자가 남자와 달리 끝까지 이야기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여자가 나오는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며느리다. 그것도 갓 혼례를 마친 며느리다. 전통 시대에 며느리는 시집에서 가장 약자다. ‘짐승 말을 알아듣는 남자’와는 처지부터가 다르다. 그래서 남편의 오해를 사 어려움이 처하지만, 짐승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여자가 시집와서 3년 만에 저녁에 쉬게 되었다. 한구석에 앉아 있는데, 쥐들이 솥에 있는 밤 삶은 것을 먹으려 했다. 하지만 암만해도 그걸 꺼내지 못하고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대장 쥐가 와서 물었다.
"너는 가더니 뭐하니? 왜 아직 안 오니?"
쥐가 대답했다.
"밤을 솥 밖으로 내갈 재주가 없어서 그럽니다."
대장 쥐가 말했다.
“그럼 부뚜막 한쪽을 자꾸 파서 솥이 찌부러져 솥뚜껑이 넘어가면 밤을 물고 올 수 있지 않니?”
며느리는 그 말이 우스워 계속 웃었다.
신랑은 그 모습을 보고 여자가 과거에 무슨 한 짓이 있어 그런다 생각하고 각시방에 가서 자지 않았다. 그렇게 3년이 넘어갔다.
시삼촌 환갑 전날이었다. 큰집 개가 와서 "나는 내일이면 죽는다"고 했다.
알고 보니 큰집에서 먹였던 그 개를 잡으려 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에게 그 개를 잡으면 큰 해가 날 테니 다른 개를 사서 잡으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큰집에서는 개를 잡은 뒤였다. 며느리는 ‘그 개를 잡수셨으니 큰집이 시끄러울 것’이라 했다. 과연 시삼촌은 개장국을 먹고 갑자기 아파 죽는다고 난리가 났다.
시아버지는 며느리에게 어째 그 개를 잡지 말라고 했냐고 물었다.
며느리는 그제야 자신이 짐승 말을 알아듣는다는 사실을 말했다. 그리고 쥐가 밤을 물어가려 하며 했던 말을 듣고 웃었던 것, 남편이 자신에게 오지 않았던 것, 개가 와서 자신이 죽는다는 말을 했던 것을 다 말했다.
그 뒤론 신랑이 각시에게 다시 와 백년해로했다.
- 《대계》,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 며느리>, 정복순, 경북 월성군 감포읍, 1979, 요약.
이야기의 대강은 위와 같다. 며느리는 쥐의 말을 듣고 웃었다가 신랑의 오해를 사서 독수공방 신세가 됐다. 그렇다고 자신이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큰집에서 기르던 개가 하는 말을 듣고는 환갑잔치에 다른 개를 잡지 않으면 안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시아버지에게 말한다. 이ᄂᆖᆫ 며느리가 개가 하는 말 이면의 서러움을 읽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 남자와는 확실히 다른 태도다. 며느리는 자기가 오해를 샀을 때는 굳이 자기가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지만, 다른 사람이 해를 당하게 되자 사실을 밝힌다.
김수영(경남 의령군 칠곡면, 1982)이 전하는 이야기는 위 이야기와 조금 다르다.
며느리가 짐승 말을 알아듣는 것을 시어머니도 알고 있었다. 쥐가 뭐라 하는지 시어머니가 묻고 며느리가 대답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하루는 며느리가 빨래를 하러 갔다가 빨래는 안 하고 그냥 돌아와서는 말했다.
“벼를 모두 베야겠습니다. 태풍이 와서 때려 엎을 겁니다. 나중에는 종자가 없을 겁니다.”
며느리 말을 들은 시아버지는 서둘러 나락을 벴다. 그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이 와서 왜 그러냐 물어서 대답을 해줬으나 마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이 집에 와서 종자를 빌려야 했다.
- 《대계》, <짐승 말을 알아듣는 며느리>, 요약.
여기서 며느리가 태풍이 올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짐승들은 지진 등 천재지변이 일어나는 것을 미리 안다고들 하니 어쩌면 빨래를 하러 나갔다가 짐승들의 말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앞의 이야기에서 며느리가 “나는 내일 죽는다”는 개의 말 한마디만으로 상황을 예측한 것처럼 이 이야기 속의 며느리 역시 빨래를 나갔다가 주변 분위기를 살펴 큰 태풍이 올 것임을 예측한 것인지도 모른다. 며느리는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 것뿐 아니라 앞날을 예측하는 예지력을 가진 것이 틀림없다. 그것도 사람들을 살리는 쪽으로 말이다.
물론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 남자의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도 전한다.
첫날밤 각시가 웃자 신랑은 고약하다며 집으로 가버렸다.
처가집에서 신랑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신랑이 말했다.
“나를 보고 내가 못났다고 웃는 게 아닌가 싶었다.”
각시는 "내가 짐승의 말을 잘 듣기 때문에 웃었다"고 했다.
솥 안에 소고기 볶아놓은 것이 있었는데, 쥐가 '너는 들시라, 니는 솥뚜껑 열어라, 나는 꺼내겠다'하며 말하는 것이 우스워 웃었다고 했다.
신랑은 제비 새끼 세 마리를 내려 숨기고 어미가 울며 야단이 나자 각시에게 물었다.
“제비가 뭐라고 하느냐?”.
각시가 말했다.
"남산 밑의 중의 자식아, 내 새끼 세 마리 내놔라 하고 말한다.“
그러자 신랑은 칼을 들고 어머니에게 가서 아버지를 찾아내라 했다.
어머니는 '절에 가서 공을 들였는데 중이 덮치는 바람에 네가 생겼다'고 말했다.
《대계》,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 신부>, 이용선, 경남 울주군 상북면, 1984, 요약.
이 유형에서는 며느리가 신랑의 오해를 풀기 위해 자신이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사실을 말하고, 신랑은 제비 새끼를 감춰 이를 확인하려 한다. 하지만 확인한 건 자신이 중의 자식이라는 것뿐이다. 오해를 풀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바로 말하는 각시의 모습은 짐승 말을 알아듣는 남자의 모습과 같고, 제비 새끼를 감춰 확인하는 신랑은 사또의 모습을 닮아 있다. 제비 새끼로 시험을 하는 이야기가 모두 신랑이 중의 자식임을 말하고 있진 않지만, 신랑이 중의 자식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이야기는 모두 제비 새끼로 시험을 하는 화소가 들어가 있다.
어쨌든 이 유형의 이야기를 제외한다면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 며느리’ 이야기는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 남자’ 이야기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짐승의 말을 알아듣기만 할 뿐 다른 사람과 나누고 소통하지 않는 남자와 달리 며느리는 소통을 통해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4. 알아듣는 것과 소통한다는 것
처음 이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때는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단지 알아듣기만 하는 건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짐승 말을 알아듣는 남자는 알아듣기는 하되 소통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반면 짐승 말을 알아듣는 며느리는 주위 사람과 소통을 할 줄 알았다. 소통하지 못한 남자는 이야기를 사또에게 내주어야 했지만, 며느리는 끝까지 이야기의 중심이 되었다.
이런 차이를 가져온 건 두 사람이 들었던 짐승의 말과도 상관이 있을 듯싶다. 남자는 새의 말을 들었고, 여자는 쥐의 말을 들었다. 새는 하늘의 뜻, 신과 통하는 존재다. 남자는 새의 말을 알아듣기는 했으나 땅의 사람들과 소통을 하지는 않는, 비현실적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사또는 이를 보완해주는 구실을 하는 듯하다. 반면 쥐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즉 쥐는 삶과 가까운 존재다. 여자가 쥐의 말을 알아들은 건 삶의 문제에 보다 진심이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래서 여자는 우리의 삶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적극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건 머리로 이해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무리 상대의 말을 알아들었다 해도 이에 대해 공감하고 소통을 하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짐승의 말을 알아들었던 두 사람의 이야기를 보면 볼수록 우리에게는 공감과 소통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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