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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책/옛날이야기 공부방

길에서 사람의 뼈를 만난다는 것은....

by 오른발왼발 2022.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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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사람의 뼈를 만난다는 것은……

괴상한 뼈 VS 해골의 보은

 

 

 

 

객사

객사란 자신이 살던 곳이 아니라 객지에서 죽는 것이다. 자신이 태어나 자란 곳을 떠날 일이 거의 없던 시절, 객사를 한다는 건 큰 비극으로 여겨졌다. 객사를 한다는 건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뤄줄 사람도 없이 쓸쓸하게 죽어갔음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괴상한 뼈해골의 보은은 길에서 사람의 뼈다귀를 만나는 이야기다. 길에 나뒹구는 사람의 뼈는 객사한 사람의 흔적일 터이다. 하지만 두 이야기는 이 뼈를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다르다.

 

괴상한 뼈

소금 장수는 길에서 뼈다귀를 만난다. 길에서 똥을 누고 그 뼈다귀로 밑을 닦기도 하고, 그 뼈다귀 위에 똥을 누기도 한다. 괜히 그 뼈다귀를 집어 들고 자기 정강이에 대 보기도 한다. 그리고 뼈를 그대로 둔 채 길을 간다.

뼈다귀는 소금 장수를 따라온다.

닦아내라!” “씻어내라!”

아이 구려, 아이 구려!”

뼈다귀는 소금 장수가 빨리 가면 자기도 빨리 가고, 소금 장수가 천천히 가면 자기도 천천히 가며 소금 장수를 따라간다. 때로는 자신을 새끼줄로 매서 데리고 가달라고 한다.

소금 장수 입장에선 공포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결국 소금 장수는 한 마을에서 밥을 얻어 온다는 핑계로 뼈다귀를 두고 도망쳐 버린다.

 

해골의 보은

제주도 신화 사만이 본풀이혹은 멩감 본풀이의 내용이다. 가난한 소사만이 길을 가는데 발에 자꾸 뭔가가 걸렸다. 살펴보니 해골바가지였다. 소사만은 해골바가지를 집으로 가져와 작은 단지에 넣고, 명절이면 제사를 지냈다.

 

뼈와의 접촉, 그 인연을 대하는 태도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두 이야기에서 소금 장수와 소사만이 뼈와 만나는 과정은 옷깃만 스치는 정도가 아니다. 똥을 누거나, 그 뼈를 주워들고 자기 정강이에 대보기도 하고, 발에 몇 번이고 걸리면서 마주하게 된다. 더구나 괴상한 뼈에서 뼈다귀는 이 일을 계기로 주인공을 따라가거나 자신을 데리고 가라고 강력하게 요구한다. 좋든 싫든 강력한 인연이 존재하는 것이다.

인연이란 관계 맺음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없이 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그 관계를 어떻게 이어나가느냐에 따라 나 자신의 삶도 달라지곤 한다. 물론 이런 관계 맺음이 늘 기분 좋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피하고 싶은 관계도 있다. 그리고 이때 피해서 좋은 인연도 있지만, 단지 불편함이 싫어서 피한 것이 화()가 되기도 된다.

괴상한 뼈에서 소금 장수는 뼈다귀에 똥을 누거나 닦는다. 이는 뼈다귀 입장에선 자신을 우롱한 것이다. 뼈다귀를 집어 들고 자기 정강이에 대보는 것 역시 비슷하다. 소금 장수는 객사한 사람의 흔적인 뼈다귀를 자기 마음대로 이리저리 재단하고 내던져버린 것이다.

반면 해골의 보은에서 소사만은 그 해골을 안타깝게 여겨 집에 가져와 제사를 지내준다.

 

서로 다른 결말

소금 장수와 사만이, 두 사람이 길가의 뼈를 대하는 태도가 다른 만큼 결말도 다르다.

소금 장수는 몇 년이 지난 뒤 궁금한 마음에 뼈를 두고 왔던 곳을 찾아간다. 하지만 뼈는 보이지 않고 오두막이 있어 그곳에 들어갔다 할머니(혹은 처자, 여자)의 권유로 자신이 그 장소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하게 된다. 할머니는 그래서?” “그래서?” 하며 이야기를 마저 하기를 부추긴다. 그리고 소금 장수가 그 뼈다귀가 어찌 됐는지 궁금하네요.” 하고 말하는 순간 내가 그 뼈다귀다!”하며 와락 달려들어 잡아먹는다.

반면 가난했던 사만이는 이후 잘살게 된다. 또 꿈에 해골의 주인인 백발노인이 나타나 사만이가 곧 죽을 날이 됐음을 알려주고 수명을 늘릴 방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사만이는 그 말대로 해서 수명을 늘리고 잘 살게 된다.

소금 장수와 사만이가 뼈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짐작할 수 있었던 바로 그런 결말이다.

 

결이 전혀 다른 두 이야기

사실 두 이야기는 처음부터 전혀 다른 유형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괴상한 뼈는 일종의 공포담이다. 소금 장수의 잘못과 상관없이 뼈다귀가 계속 따라오는 것 자체가 공포감과 긴장감을 조성한다. 그러다 소금 장수가 오두막집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과정은 긴장감과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고, 마지막에 할머니가 내가 그 뼈다귀다하고 소리 지르며 와락 달려들어 잡아먹는 장면은 듣는 사람을 소스라치게 만든다.

반면 해골의 보은은 기본적으로 액막이에 관한 이야기다. 즉 해골을 잘 거두어줌으로써 액을 막아 수명을 늘리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 밑에 깔린 생각은

이처럼 두 이야기는 결이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그 밑에 깔린 생각은 같다. 길가에 뒹구는 사람의 뼈는 결코 함부로 해서는 안 되고 잘 모셔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길가에 뒹굴던 뼈는 객사한 사람의 흔적이다. 그 사람이 객사하게 된 이유는 명확히 알 수 없어도 비극적인 죽음이라는 건 틀림없다.

요즘도 간혹 객사한 사람의 뼈가 발견된다. 범죄로 살해당한 사람의 뼈일 수도 있고, 비극적인 사건에 휘말려 죽은 경우도 있다. 지난 9월엔 옛 광주교도소에서 5.18 민주화 항쟁 당시 행방불명된 사람의 뼈가 발견됐다. 제주도에서는 4.3 항쟁 때 죽은 사람들의 뼈가 나오고, 전국 각지에서 보도연행 사건으로 죽은 사람들의 뼈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들 뼈의 주인이 나와 일면식도 없으니 나와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뼈를 발견하는 순간 구체적인 인연은 생겼다. 그러니 당연히 그 뼈를 수습하고 죽은 이의 명복을 빌어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이는 영혼이 진짜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뼈의 주인이었던 사람을 존중하는 의미다.

 

또 다른 해석

옛이야기 공부 모임의 한 분이 '괴상한 뼈'를 조금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셨는데, 참고할 만한 의미있는 분석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다시 보니 '괴상한 뼈' 이야기가 또 새롭게 보였다. 물론 옛이야기는 듣는 사람이 무의식의 어떤 부분과 만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 어떤 것이 맞고 그르고는 없다. 그분의 의견을 바탕으로 볼 때 '괴상한 뼈'이야기는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괴상한 뼈에서는 뼈다귀에 똥을 누고 밑을 닦고 한다. 이는 배설을 소금 장수의 성적 상징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소금 장수는 여성을 하얀 뼈다귀처럼 수동적인 대상으로 바라보고 떠나려 했으나, 여성은 "닦아내라! 씻어내라!"하며 따라오거나, 자신을 데리고 갈 것을 요구한다. 소금 장수 입장에서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소금 장수는 꾀를 낸다. 잔치집에서 밥을 얻어올 테니 기다리라 하고 뺑소니를 친 것이다. 그런데 이 장면이 혼인을 하자고 안심시킨 뒤 도망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이른바 혼인빙자 간음?

소금 장수는 몇 년 뒤 그 뼈다귀를 두고 갔던 곳에 가본다. '범인은 사건 현장에 나타난다'는 말처럼, 뭔가 깨름칙한 마음에 그곳을 방문했을 수도 있다.

그곳엔 오두막이 있었고, 그 뒤의 내용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하지만 이 경우 "내가 그 뼈다귀다"하며 여자가 소금장수를 잡아먹는다는 것은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옛이야기 공부 모임에서 이 장면을 해석하신 분은 '잡아먹는다'는 것을 여자가 남자를 덮치는 모습으로 받아들이셨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는 자신을 일방적으로 유린했던 소금 장수에 대한 복수극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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