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화수분 찾기
- ‘이상한 그릇’, ‘신기한 화로’ 이야기 -
1. 화수분
화수분이란 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를 뜻한다. 보물이 계속 나온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진다. 이런 화수분이 있다면 피곤한 세상살이의 고민을 충분히 덜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옛이야기에는 화수분 이야기가 참 많다. 이상한 그릇, 도깨비방망이, ‘개와 고양이’나 ‘꿩덕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구슬, 쌀 나오는 구멍, 소금 나오는 맷돌…….
그런데 그 화수분의 모양이나 기능은 조금씩 다르다. 도깨비방망이나 구슬처럼 무언가를 주문하면 원하는 대로 나오기도 하지만, 쌀이나 소금처럼 특정한 물품만 나오기도 한다. 또, 그릇에 자신이 무언가를 담으면 부풀려 주기도 한다.
끝없이 나온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은 화수분이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여기서는 화수분 중에서 ‘이상한 그릇’처럼 누군가 그 안에 담는 것을 부풀려 주는 이야기만 보도록 하자.
2. 이상한 그릇
‘이상한 그릇’이라……. 제목만으로는 좀 낯설게 느껴진다. 널리 알려진 제목으로 말하자면 ‘신기한 항아리’ 혹은 ‘이상한 항아리’, ‘요술 항아리’로 불리는 이야기다.
‘신기한 항아리’는 사또가 어떤 사람이 얻은 화수분 항아리를 빼앗지만, 그 속에 아버지가 빠지고, 항아리 속에서 아버지가 계속해서 나오는 바람에 패가망신하는 이야기다. 이야기가 강렬해서 한번 보고 잊히질 않는 건지, 아님 다른 까닭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는 화수분 이야기의 대표격처럼 여겨졌다. 어린이 책으로도 많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구전설화 1-12》(평민사)나 《한국구비문학대계》를 아무리 뒤져봐도 이런 이야기는 없었다. 도대체 왜 이 이야기가 이렇게 퍼졌는지 궁금증이 일지만, 일단 여기서는 접어두기로 했다. 이 이야기와 비슷한 듯 다른 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상한 그릇’ 이야기라 했지만 여기서 그릇은 무언가를 담을 수 있다는 기능적인 면을 고려해서 편의상 붙인 이름이다. 이야기에서는 ‘화로’, ‘절구’, ‘그릇 조각’, ‘뚝배기’, ‘접시’, ‘표주박’, ‘단지’ 등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 기능은 모두 같다. 무언가를 담을 수 있는 것이라는.
3. 주인공은 평범하다
주인공은 대개는 우연히 이 그릇을 얻는다. 어떤 집에 머물렀는데 그 집 (빈)화로에 담뱃재를 털자 하나 가득 되는 것을 보고 화수분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그것을 얻어오는 식이다. 또 어떤 경우는 무언가 선행을 하고 그 보답으로 받는다. 개구리를 구해준 사람이 개구리로부터 받거나, 머물던 집에 필요한 무언가를 주고 그 집에서 보답의 의미로 받는 식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인공이 무조건 착한 사람은 아니다. 돈을 마구 쓰다 집에서 쫓겨난 사람일 때도 있고, 먹고 살기 힘든 탓에 남의 밭에 이삭을 주우러 간 – 쉽게 말해 도둑질을 간 사람일 때도 있다. 우연히 善을 행하긴 해도 그 사람이 복을 받을 만큼 착한 사람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진 않는다.
어쩌면 주인공은 너무나 평범한 사람인 듯도 싶다. 이 정도라면 누구나 운이 좋으면 화수분 하나쯤은 얻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마치 누구나 매주 로또 대박을 꿈꾸며 로또를 사듯이, 화수분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는 게 자연스럽기만 하다.
4. 화수분은 무조건 좋을까?
‘화수분을 얻은 사람들은 당연히 부자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예도 있다. 《한국구비문학대계》에는 실존 인물인 송시열이 등장하는 화수분 이야기가 두 편 전한다. 그런데 화수분을 얻게 된 송시열은 그릇의 정체를 알아채자 “얘들이 이를 알면 안 된다.”, “큰일 나겠다”라며 도로 갖다 버리고 온다.
남들이 그토록 소망하는 화수분을 내다 버리는 송시열의 마음을 평범한 사람으로서 쉽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송시열쯤 되니까 그리했을 거라 짐작할 뿐이다.
그러나 ‘짚신 장수와 요술 표주박’(신의하 구술, 경기 강화군 화도면)을 보면 역시 송시열의 판단이 맞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부자가 된 짚신 장수가 세 아들에게 세간을 나눠주려 하자 세 아들은 모두 표주박만 달라고 한다. 결국 짚신 장수는 자신이 안에서 표주박을 던질 테니 담 밖에 있다가 잡는 사람이 가지라 한다. 하지만 짚신 장수의 뜻대로도, 표주박을 갖고 싶은 아들들 마음대로도 되지 않는다. 날아가던 기러기가 물고 가버렸기 때문이다.
5. 화수분은 발견한 사람의 몫
화수분은 우연히 누군가에게 발견된다. 그 전에 이 화수분을 갖고 있던 사람은 그 그릇이 화수분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이쯤 되면 화수분은 그 그릇의 쓰임을 발견한 사람만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상한 그릇’ 이야기에 나오는 화수분은 ‘개와 고양이’ 이야기의 구슬처럼 이를 훔쳐 간 사람이 잘살게 되는 일은 없다.
화로를 빌려 간 과부는 화로에 무언가를 넣기도 전에 좆이 하나 가득 나와 파묻히고….
- ‘무엇이든 나오는 화로’(한국구전설화 1)
동생이 몰래 와서 돈을 넣고 내고를 계속하자 호조 전고의 돈이 사라져 조사를 받게 되고...
- ‘이상한 그릇 조각’(한국구전설화 6)
딸이 가져가자 뚝배기의 기운이 사라지고...
- ‘선비와 화수분 단지’(한국구비문학대계, 한준혁), ‘화수분 전설’(한국구비문학대계, 박영국)
이런 의미에서 앞서 ‘신기한 항아리’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도 있다. 남의 화수분을 억지로 빼앗았지만 결국엔 화를 부르고 만다.
다양한 종류의 화수분 이야기가 있지만, ‘이상한 그릇’류의 화수분 이야기가 다른 화수분 이야기와 다른 건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만의 그릇에 무언가를 넣어야 얻을 수 있고, 그건 다른 사람이 가져갈 수 없는, 오로지 자신만의 것이라는 점 말이다.
6. 내 그릇을 찾아서
“난 그릇이 아주 크거든. 그래서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아.”
우리 딸은 외동이라 부모의 사랑을 형제들과 나눠 갖은 적도 없는데 끊임없이 부모의 사랑을 갈구한다. 그래 넌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물었을 때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한 그릇’ 이야기를 보며 이 말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껏 내 안의 무언가를 그릇에 비유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릇이라는 말을 이렇게 쓸 수도 있겠구나 싶어졌다.
부처님의 제자 사리불과 목련 이야기도 떠올랐다. 당시 부처님의 제자 250명은 부처님의 설법 한 번으로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렀는데, 두 사람은 그릇이 커서 각각 7일과 15일째 되는 날에야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말은 누구나 각자의 그릇이 있다는 뜻일 게다. 그리고 사람마다 그릇이 크기가 다를 수도 있다. 이야기에서 그릇 조각일 때도 있고, 화로일 때도 있고, 접시일 때도 있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 그릇에 무엇을 채우느냐는 온전히 각자의 몫이다. 이야기에서처럼 재물로 채울 수도 있고, 부처님과 제자들처럼 깨달음을 얻기 위한 것으로 채울 수도 있고, 우리 딸처럼 사랑으로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부처님과 제자들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그 그릇은 살면서 끊임없이 비워내고 채워지고 할 것이다. 그릇이란 한없이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가득 차면 비워내는 게 당연하다. 아니, 비워야 또 다른 것으로 채워지니 가득 차면 반드시 비어내야만 한다. 이후 같은 것을 담을지, 아니면 다른 것을 담을지를 판단하는 건 그 사람 몫이다.
그러니 남의 그릇을 탐내서 가져가 봐야 아무 소용 없다. 그 그릇은 본래 그 사람 안에서만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내 해석에 따른다면 그릇을 내다 버린 송시열은 성리학이란 틀에 자신을 가둔 듯 싶다)
이야기를 보며 새삼스레 내 그릇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이제부터 내 그릇을 찾아봐야겠다. 그 그릇이 어떤 모양일지 어떤 크기일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모양이면 어떻고 어떤 크기면 또 어떻겠나 싶다. 모양이란 내가 그 그릇에 의미를 갖게 되면 마음에 들 수밖에 없을 테고, 크기야 크면 가끔씩 비워내고 작으면 자주 비워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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