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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책/옛날이야기 공부방

차복이 - 복을 빌려 살다

by 오른발왼발 2022.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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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법을 알려주는 이야기

- ‘차복이’, ‘복을 빌린 사람이야기 -

 

 

 

 

1.

 

사람은 누구나 타고난 복1)이 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부모 밑에서 태어나느냐 하는 것부터가 그 사람의 타고난 복이다. 신체적인 조건, 외모, 두뇌 역시 타고나는 것이니 이 역시 타고난 복이다.

이렇게 보자면 우리가 누리는 복의 70% 이상은 태어나면서 이미 정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적게 잡아서 말이다.

 

그렇다면 주어진 복을 바꿀 방법은 없는 것일까? 복이 많은 사람은 마음껏 그 복을 누리고, 복이 없는 사람은 평생을 복을 누리지 못한 채 지내야만 하는 걸까?

자연스레 이런 의문이 떠오른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

이런 말에는 타고난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좋은 운명을 타고 나지 못한 사람들의 자조 어린 한탄이 서려 있다.

 

하지만 아무리 복은 타고나는 것이라 해도 고정불변한 것은 아니다. 우리에겐 타고난 70%의 복 외에 30%가 있다. 이 나머지는 자신의 운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의지다. 재밌는 건 아무리 기가 막힌 복을 가지고 태어났다 해도 자신의 의지가 없다면 그 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반면 자신의 노력으로 부족한 복을 채워나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무리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도 머리만 믿고 공부를 안 한다면 시험을 잘 볼 수가 없다. 그러나 머리가 좋지 않아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은 원하는 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수준 이상은 시험을 잘 볼 수 있다.

 

결국 살아간다는 건 자신이 타고난 운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에 안주하지 않고 노력해 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

 

나무를 해서 먹고사는 가난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하루에 한 짐2)씩 나무를 하는데, 그럼 먹고살 수는 있다. 문제는 비가 오거나 해서 나무를 하지 못하면 밥을 굶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무 한 짐은 딱 그날 먹고살 수 있는 정도이기에 다음날을 기약할 수 없다.

나무꾼은 나뭇짐을 두 짐씩 하기로 마음먹는다. 한 짐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는 저축인 셈이다.

나무꾼은 나무 두 짐을 해서 집에 가져다 놓는다. 그런데 다음 날 눈을 떠 보니 나뭇단 한 짐이 사라지고 한 짐만 남아 있었다. 다음날,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나무꾼은 누가 나뭇짐을 가져가는지 알아보려 나뭇짐 속에 숨는다. 잠시 후 회오리바람이 불더니 나무꾼이 들어가 있던 나뭇짐을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나무꾼이 나와 보니 그곳은 하늘나라였고, 그곳에는 그동안 사라진 나뭇짐들이 있었다.

옥황상제는 나무꾼에게 말한다.

너의 복은 나뭇짐 한 짐밖에 없는데 어찌 네가 나무 두 짐을 하느냐?”

하지만 나무꾼은 기죽지 않고 옥황상제에게 요구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큰 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복을 빌려주시오.”

그러자 옥황상제가 말한다.

네 정신이 고마우니 그 복의 반을 빌려주겠다. 대신 그 주인이 나타나면 돌려주어야 한다.”

다시 땅으로 내려온 나무꾼은 예전처럼 열심히 나무를 하며 살았다. 그리고 조금씩 살림이 늘기 시작해 어느새 큰 부자가 되었다.

 

나무꾼은 지지리 복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안 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무꾼은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다. 나뭇짐에 들어가 원인을 알아보려 한다. 그리고 가진 복이 나뭇짐 한 짐뿐이라는 옥황상제의 말에도 기죽지 않고 당당히 복을 요구한다. 그 기운을 높이 산 옥황상제는 네 정신이 고맙다며 그에게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아이의 복을 빌려준다.

 

만일 나무꾼이 늘 하던 대로 한 짐의 나무만 하던지, 두 짐을 해봐야 늘 한 짐만 남는다고 포기했다면 나무꾼의 운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무꾼은 그 원인을 찾으려 문제의 원인인 나뭇짐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나라에 올라가 옥황상제를 만날 수 있었다. 회오리바람이란 땅에서부터 깔대기 모양으로 들려 올라가는 바람이다. , 나무꾼은 열심히 일하고 원인을 찾으려 노력한 덕에 바닥에서 벗어날 기회를 잡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타고난 운을 바꾸기 위해서는 과연 얼마만큼이나 노력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약간의 노력? 아마 옛사람들은 그 정도로는 힘들다고 믿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나무꾼처럼 그 운이 바뀔 수 있는 변곡점에 이를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여긴 것이 아닐까 싶다.

 

3.

 

나무꾼은 부자가 되었지만 그래도 불안한 마음은 여전하다.

복의 주인이 나타나면 그 복을 돌려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나무꾼은 불안해진다. 복이 사라지면 다시 가난해질 것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이야기에 따라 나무꾼이 다른 일을 배워두거나, 집을 떠나기도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나무꾼이 어떤 행보를 보이건 상관없이 나타날 사람은 나타나게 되는 법이니 말이다.

재미있는 건 큰 복을 갖고 태어나는 아기가 실은 갈 곳 없는 거지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것이다. 거지는 아기를 낳고 아기 이름을 지어주는데, 그 이름은 바로 차복3)이었다.

아기의 이름을 들은 나무꾼은 그 거지를 방으로 들어오게 해 첫국밥도 끓여주고 잘 보살펴준다. 나무꾼은 차복이 가족에게 함께 살자 하고, 갈 곳 없는 그들도 이를 받아들인다. 덕분에 나무꾼은 계속 잘 살 수 있었다. 이야기에 따라 나중에 자신이 복을 빌린 사실을 밝히기도 하지만 다시 가난해지지는 않았다.

 

운명은 거스를 수 없는 법이다. 나무꾼은 자신이 복을 빌렸던 사람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에 따라 차복이에게 사실을 말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사실 이건 중요하지 않다. 차복이가 태어나는 순간 그 복은 원래 주인을 찾아가게 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만약 나무꾼이 차복이를 만나지 못했다 해도 그 복은 차복이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나무꾼 역시 이 사실을 잘 알 것이다. 하지만 나무꾼은 거지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자신이 복을 빌린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잘 돌봐준다. ‘태어나지 않았으면……하고 원망스런 마음이라도 가졌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잘 살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혹시라도 앞으로 함께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 뭐 이런 것들이 복잡하게 얽힌 마음으로 행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궁금하다. 그렇게 큰 복을 갖고 있다는 차복이는 어째서 거지 부모에게서 태어난 걸까?

차복이는 거지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태어나자마자 나무꾼 덕에 거지 신세를 벗어났다. 차복이가 거지 부모에게서 태어날 운명이었음에도 복이 많았던 건 어쩌면 태어나자마자 돌봐줄 사람을 만나게 될 운명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운명은 자신의 복을 빌려간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결국 나무꾼은 차복이의 복을 빌려 잘 살 수 있었고, 차복이는 빌려준 복 덕분에 태어남과 동시에 잘 살 수 있었다. 어느 한쪽이 빠졌더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 공동체였던 셈이다.

 


1) 복은 타고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복과 운은 같은 의미로 쓴다.

 

2) 이야기에 따라 두 짐 혹은 그 이상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몇 짐을 했느냐가 아니라 한 짐씩 더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3) 이야기마다 이름은 다르다. ‘借福은 아이의 이름이자 복을 빌리다라는 이야기의 의미와도 맞는다. 또한 가장 널리 알려진 이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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