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다(ON THE MOVE)
로마나 로맨셔, 안드리 레시브 지음/길벗어린이/2022
이 책은 움직이는 모든 것에 대한 책이다.
움직인다는 것은 무엇일까?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어떤 식으로든 움직임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움직임은 그런 움직임이 아닌, 물리적 공간에서 움직이는 것, 즉 이동을 뜻한다.
사람들이 걸어가며 길이 만들어지고, 그 길을 따라 사람들이 움직이고, 여러 가지 탈것들이 개발되면서 움직임은 더욱 많아진다. 그리고 사람들은 가장 높은 산과 가장 깊은 바다를 향해 가고, 하늘을 날고, 미지의 우주를 향해 간다.
표지를 넘겨 면지를 보자.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일어나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이 연속 그림으로 보인다. 선으로 형태만 그려진 사람의 앞머리는 마치 안테나처럼 느껴진다. 이 사람은 어디로 가는 걸까?
다시 한 장을 넘기니 왼쪽 아래쪽에 “길은 걸으면서 완성된다”는 옛 속담이 써 있고, 오른쪽 면에는 집을 떠나 어디론가 바삐 가는 사람이 보인다. 그 사람의 여행길을 따라가는 것이 이 책의 여정일 것이다.
하지만 책은 조금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사를 끌고 가는 짤막한 글이 있고, 여기에 화려한 원색을 이용한 그래픽 디자인 그림과 함께 정보로 가득 차 있는 글이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서사를 끌고 가는 글과 그림과 연결된 정보는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지만, 봐야 할 게 많은 만큼 조금은 복잡하고 정신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따라서 한꺼번에 보는 게 좀 부담스럽다면 두 가지를 따로따로 봐도 좋다.
서사를 이루는 짤막한 글을 먼저 보고, 두 가지를 함께 보는 것이다. 서사를 이루는 짤막한 글은 정보 없이 독립적으로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게다가 마음을 울리는 감동도 있다. 많은 정보를 얻고자 하는 미련만 버린다면 이 글만 반복해서 봐도 좋을 듯 싶다.
또 다른 방법은 어느 한 면만 펼쳐서 꼼꼼히 보는 것이다. 짤막한 글, 그림, 정보글까지 서로 연결해서 말이다.
이렇게 본 뒤 두 가지를 함께 보면 혼란스러움을 사라지고, 이 책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책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들을 보여주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움직인다는 것의 의미를 깨우쳐준다. 동시에 움직이는 가운데도 때로는 속도를 늦추고 잠시 멈출 필요성도 알려준다. 속도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그 속도에 빠져 자신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있어서 움직이기도 하지만, 움직임으로써 살아있음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우리는 움직일 때마다 많은 것들을 마주하게 되고, 이를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어떤 장소의 의미에 대해서, 또 살아가면서 길을 잃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할지를 고민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사연을 갖고 살아가기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움직이다 보면 아무리 서로 다른 사이라도 서로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기도 한다. 그리고 잠깐 움직임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기도 하지만 결국엔 우리는 다시 움직인다. 살아있다는 것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니까 말이다.
책은 동물들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보여준다. 동물들은 사람들과 달리 지도나 나침반이 없이 수천 킬로미터를 여행하기도 한다. 제왕나비는 이동하는 거리가 너무 먼 데 반해 수명은 너무 짧아서 처음 이동을 시작한 나비의 3-4세대 자손에 이르러서야 이동이 마무리된다고 한다. 자연의 신비로움이 느껴진다.
어쩌면 세상이 이렇게 신비롭기에, 우리는 자꾸자꾸 새로운 것을 찾아서 움직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작가인 로마나 로맨션과 안드리 제시브는 ‘스튜디오 아그라프카’에서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한다. 이 책은 전체 내용을 잡고, 각 면의 글과 그림의 배치에 대해 꼼꼼하게 미리 정해놓고 작업에 들어가지 않으면 딱 맞아떨어지기 어려운 구성이다. 글과 그림을 따로따로 작업을 해나갔다면 완성도를 높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처음부터 함께 상의하며 꼼꼼하게 작업을 해나가기에 마치 한 사람의 작업인 듯 매끈한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책을 보면 작가 이름을 글과 그림으로 나눠 표기하지 않고 함께 ‘지은이’로 표기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는 두 사람이 한 팀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기 때문일 것이다.
두 사람은 이 책 말고도 여러 권의 책을 함께 작업했고,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다.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는 두 사람의 다른 책들도 함께 보면 좋을 것 같다.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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