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것저것/내가 쓴 책

빨간 부채 파란 부채

by 오른발왼발 2022. 10. 25.
728x90

빨간 부채 파란 부채

오진원 글/송연우 그림/애플비/2022. 6. 10.초판

 

 

이 책은 빨간 부채를 부치면 코가 늘어나고, 파란 부채를 부치면 코가 줄어드는 신기한 부채에 관한 옛이야기 그림책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교과서에 실렸던 까닭에 누구나 알고 있을 만큼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죠.

 

제가 빨간 부채 파란 부채그림책 원고를 청탁받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이 이야기의 판본들을 찾는 것이었어요.

옛이야기는 같은 이야기라도 다양한 판본들이 있지요. 그리고 그 판본들마다 조금씩 이야기가 달라요. 그런데 그 조금의 차이가 이야기의 흐름을 바꿔놓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옛이야기를 쓸 때면 여러 판본을 견주어 보면서 그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판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쓰곤 했어요.

 

워낙 유명한 이야기인 만큼 빨간 부채 파란 부채도 많은 판본이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이미 그림책으로도 많이 나와 있었고, 그림책마다 이야기가 조금씩 다른 걸 보면 판본도 다양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요.

 

하지만 임석재의 한국구전설화 1-12(평민사)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옛이야기를 집대성해 놓은 한국구비문학대계에도 빨간 부채 파란 부채이야기는 없었어요. 최근까지도 꾸준히 채록된 이야기를 업데이트하고 있는 한국구비문학대계에도 없다는 사실은 조금 충격이었지요.

도대체 채록된 자료도 없는 이 이야기가 왜 이렇게 유명한 이야기가 된 걸까?’

정말 궁금했습니다. 물론 교과서에 실렸던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요,

 

하지만 교과서에 실을 때 판본도 없는 이야기가 실리진 않았을 테니 분명 판본이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다른 자료들을 뒤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마침내 자료를 찾았습니다. 옛이야기꾸러미 2(최인학 엮음/집문당)1969년 이훈종 님이 구술한 빨간 부채 파란 부채의 채록본이 있었어요. 다른 판본이 더 있을지는 몰라도, 이건 제가 아는 한 한 편밖에 없는 귀한 채록본이었어요.

 

저는 이 채록본을 토대로 그림책 형식에 맞춰 장면을 나누고 원고를 썼어요.

 

아쉽게도 제가 참고로 한 옛이야기꾸러미 2는 더이상 출판이 되지 않아서 구해 볼 수가 없어요. 채록본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여기에 이야기를 옮겨볼게요.

그리고, 혹시 제가 쓴 빨간 부채 파란 부채를 보신다면, 아래의 이야기와 견주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빨간 부채 파란 부채 - 《옛이야기꾸러미2》 중에서

 

어떤 사람이 살림이 간구하여 이에서 신물이 날 지경인데, 하루는 길을 가다가 이상한 물건을 하나 주웠다. 비단 주머니에 놓은 수가 필연코 귀중한 물건인 모양인데 꺼내 보니 빨간 부채와 파란 부채가 하나씩 들어 있을 뿐이다. 그래 빨간 부채로 얼굴을 부치며 얼마를 가다가 얼굴을 더듬어 보니 이런 변이 있나? 코가 두어 치 높이나 된다. 질겁을 해서 나무 밑을 찾아가 앉아 ‘부채 때문에 그런가?’ 하고 다시 부쳐 보았더니 정말로 부채로 부칠 적마다 코가 조금씩 자란다. ‘이거 큰일 났구나!’ 하고 파란 부채를 꺼내서 부쳐 보았더니 조금씩 졸아든다. 얼마쯤 부치니까 정상적인 코가 된다. 부채 주머니를 품에 넣고 돌아오며 곰곰이 생각한다.

‘확실히 신기한 부채다. 이걸 가지고 심령이 좀 필 방도는 없을까?’ 그러는데 문득 의견이 떠오른다. ‘옳다! 그렇다.’ 그 길로 건너 마을 김 부잣집을 찾아갔다. 주인을 만나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한참 주고받으며 낌새 보아 가며 빨간 부채질을 해 주는데 주인은 알 턱이 없다. 어지간히 두어치 높이나 된 것을 보고는 점심 먹고 가라는 것도 사양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이 되자 아니나 다를까. 소문이 전해 오는데 김부자가 앓아누웠다는 것이다. 어디 별로 아픈 것은 아니나 갑자기 코가 길다랗게 두어 치나 늘어져 창피해 누굴 만날 수도 없고 그냥 심심해 앓는다는 거다. 속으로 ‘그럼 그렇지!’ 하면서도 며칠을 기다리려니까 다시 소문이 들려오는데 이 병만 고쳐 주면 자기 재산의 반을 갈라 주겠다는 거다. 그래 의원이다, 무당이다, 판수다 들이 드나드는 모양이지만 제 놈들이 고칠 턱이 있나? 또 사날 있다가 파란 부채를 넣고 찾아갔다. 그래 정말 반 갈라 줄 것인가를 확인한 뒤, 무얼로 만들었는지도 모를 약을 주어 먹게 하고 두어 군데 뜸을 뜨고는 눈치 안 채게 부채질을 몇 번 해 주고 돌아왔다.

이튿날 아침이 되니까 나귀하고 하인을 보내 모셔 간다. 당장 효험을 봤는데 안 그럴 수가 있나? 김부자 코는 날마다 두어 푼씩 졸아들어 근 보름이나 걸려서 평코가 되었다. 김부자는 좋아 어쩔 줄을 몰라하며 잔치를 벌여 치하하고 약속대로 재산 반을 갈라 주었다. 그래 우선 날아가는 듯하게 집을 하나 잘 짓고 노복을 사들여 농사를 시키고 지내니 저의 할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하루는 심심한 김에 어떻게 되나 보리라고 후원 정자에 번듯이 드러누워서 빨간 부채로 무한정 부친다. 코가 점점 자라더니 더욱 속도를 빨리해 천장에 닿는다. 그래도 계속 부치니까 치받이를 뚫고 기와를 헤치고 올라가는데 팔이 아프거나 말거나 계속 부친다. 코끝이 척척하고 써늘한 수가 구름을 헤치고 올라가는 모양이다. 그러고 얼마 더 올라가더니 껄쭉껄쭉한 데를 뚫는다. 이건 코가 자라다 자라다 하늘나라 옥황상제의 부엌에 쌓은 나무더미를 쑤시는 것이다. 마침 옥황상제의 마나님이 영감님 점심을 차리노라 부엌에 있는데 나무 가리에서 버석거린다. 쥐가 그러나 하고 부지깽이를 가지고 푹 찔렀더니 공교롭게도 코끝을 가로질러 꿰어 버렸다. 코끝이 따끔하다고 느꼈는데 이제는 더 올라가지를 않는지 중간서부터 휘우둠해진다.

‘이제 그만 올라가려나 보다’고 이젠 파란 부채를 꺼내 부치는데 얼마 안 부쳐 꾸부러졌던 코가 팽팽해진다. 그러더니 삥삥하게 켕긴다. 이어 몸이 땅에서 뜨는데 어째 무시무시하다. 그렇거나 말거나 계속 부치니까 몸이 계속 달려서 올라가는데 정자 지붕을 부수고 하늘까지 매달려 올라간다. 그러는데 상제 마나님이 아궁이에서 불은 번져 나오고 부지깽이를 찾다 생각하니 ‘이런 내 정신이 있나? 아까 여기 꽂은 것을’ 하고 쑥 잡아 뽑았다. 매달렸던 부지깽이가 빠졌으니 사람이야 어찌 되었겠나? 몇 번 뒹굴며 땅을 향해 떨어진다. “야앗, 사람 살류웃.” 외마다 소리를 치는데 어둠 속에서도 마누라의 들여다보는 얼굴이 보인다. “가위 눌리셨소? 웬 소릴 그렇게 지르셔?” 하는데 손을 들어 만져 보니 모기가 물었는지 코끝이 그저 따끔거리고 전신이 식은땀에 푹 젖어 있었다. (이훈종, 1969)

 

 

728x90
반응형

'이것저것 > 내가 쓴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군이 세운 나라, 고조선  (0) 2022.10.31
미운 아기 오리  (1) 2022.10.31
어린이가 안전할 권리  (0) 2022.02.17
신기한 이야기 반점  (0) 2021.08.22
하나뿐인 생명의 가치 있는 삶과 죽음  (0) 2021.05.1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