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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책/옛날이야기 공부방

단명아 / 삼 정승 딸과 결혼해 단명을 면한 아이

by 오른발왼발 2023.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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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제 명대로 잘 살아가게 하려면

단명아 이야기, 삼 정승 딸과 결혼해 단명을 면한 아이

 

 

 

1. 우리 아이가 제 명대로 살게 해주시오!

 

늦도록 자식이 없다가 아주아주 귀한 아들을 얻었다. 그 귀한 아들을 어떻게 키웠을지는 상상이 간다. ‘쥐면 꺼질까 불면 날아갈까하는 마음으로 키웠을 것이다. 행여나 그 귀한 아들에게 나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고, 불편한 일이 없도록 살피면서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중이 와서 그 아들을 보고 쭛쯧 혀를 찬다. 단명할 팔자라면서.

부모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다. 그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따질 정신 따윈 사라지고 만다. 무작정 그 사람을 붙들고 묻는다.

아이가 단명할 팔자를 면할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중은 말한다.

아이를 집에서 내보내시오.”

부모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다. 단명한 것도 모자라, 집을 나가야 한다니!

부모는 눈물을 머금고 아이를 집에서 내보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식의 명을 늘려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때 집을 나가게 되는 아이의 나이는 적게는 다섯 살, 혹은 10살 정도다. 이렇게 어린아이를 한 번도 본 적 없던 중의 말 한마디에 집에서 나가게 하다니! 옛날이야기니까 망정이지 요즘 현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큰일 날 일이다. 아마도 당장 아동 유기죄로 잡혀들어갈 것이다.

그래서일까? ‘한국구비문학대계에서 찾은 이야기는 대부분 1980년대 초중반에 채록된 이야기다. 아마 그때까지는 이런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뜻일 게다. 하지만 요즘엔 이런 이야기에 공감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는 1980년대 이후로 이런 이야기의 유형이 거의 채록되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들은 지금 우리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을까? 그런데 그냥 무시하고 지나기엔 채록된 이야기가 무척 많다. 또 이야기 구조도 복잡하고 다양했다.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이야기가 전한다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에게 전승된 결과일 것이다.

과연 옛날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이 이야기가 지금 우리 실정에는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꼼꼼히 읽으면 읽을수록 중요한 건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2. 귀한 자식일수록……

 

“이 아들을 집이다가 또 호강시럽게 집이서 귀히 키운다고 보먼은 못당헐 일 당허시닌게,…….”

<삼정승 딸을 얻은 총각>, 한국구비문학대계, 방철수, 전북 정읍, 1985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모두가 무척 귀한 자식이라는 점이다. 물론 부모 입장에서 귀하지 않은 자식이 어디 있겠냐마는, 이야기 속 주인공은 유독 귀한 자식임이 강조된다.

일단 아주 늦은 나이에 어렵게 얻은 자식이거나, 삼대독자 혹은 구대독자일 때도 있다. 또 삼대째 과부인 집안의 삼대독자이기도 하다. 누가 들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두말할 나위 없이 귀한 자식이다.

이렇듯 귀한 자식이니 집안에서 어떻게 대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쥐면 꺼질까, 불면 날아갈까 고이고이 키웠을 것이다. 마치 온실 속 화초처럼 말이다.

보기엔 잘 생겼지만…….”

중이 도령을 보고 혀를 차며 이렇게 말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 귀하게 자라길 바라곤 한다. 귀하게 자란다는 건 부족함이 없이 자라는 것이고, 부족함이 없이 자라면 그만큼 잘 자라 성공할 것이라 믿곤 한다. 또 귀하게 자란 만큼 귀한 사람이 될 것이라 믿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어쩌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요인들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일단, 귀하게 부족함 없이 자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가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는 넘칠 정도로 귀하고 부족함 없이 키우고 있지만 본인은 적당할 정도로 귀하게 키운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 반대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유불급. 뭐든지 지나치면 독이 되는 법이다. 중이 귀한 집 자식을 보고 혀를 찼던 건 이 때문일지 모른다.

이 이야기는 흔히 단명아(短命兒)’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단명이란 내가 타고난 수명인 정명(定命)과는 다른 의미다. 단명이란 명을 재촉하는 것, 제 명을 못 사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건강 관리만 잘하면 80까지는 너끈히 살 수 있을 것을 방탕한 생활로 인해 50세에 죽게 된다면 이는 단명하게 된 것이다. , 명이란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는 단순히 수명에만 한정 지어 적용할 필요는 없을 듯싶다. 사람은 성장하기 위해서 부족함 속에서 도전도 해 보고, 때로는 실패도 하면서 커나가야 한다. 뭐든지 완벽한 조건이 갖춰진 상황에서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이런 환경에서만 자란다면 자신이 실패해도 그 원인을 자신이 아니라 주위 환경 탓으로 돌리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아이가 단명하다는 것은 아이가 제대로 자라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지나칠 정도로 귀한 자식이 잘못될 수 있는 원인을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자식을 위해 무엇이든 다 해주겠다는 마음으로 자식만을 지켜보는 부모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다.

집에서 내보내시오.”

라는 중의 말 역시 아마 이런 뜻이었을 것이다.

 

3. 집을 떠나다

 

아이는 집을 떠난다. 중과 함께 떠나기도 하고, 하인과 함께 떠나기도 하고, 떠나보내길 망설이는 부모에게 스스로 떠나겠다 말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 떠나든 중요한 건 집을 떠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지금껏 아이를 귀하게만 대했던 부모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건 하인 한 명과 길을 떠나는 이야기다. 그 하인의 이름은 골개똥이다. 눈도 하나는 멀고, 한쪽 팔은 못 쓰고, 한쪽 다리도 못 쓴다. 마치 반쪽이의 모습이 연상된다.

골개똥은 동냥을 해서 그 아이를 먹여 살리고, 공부도 시키고, 아이가 과거를 볼 수 있도록 서울에 함께 간다.

골개똥이 나오는 이야기는 꽤 많다. 한국구비문학대계의 단명을 모면한 이운선’, ‘삼정승 딸과 결혼한 총각’, ‘호식 면하고 김정승 사위된 이야기’, ‘죽을 명을 이은 사람등에서 아이는 골개똥과 함께 집을 나온다.

골개똥의 몸이 반편이라는 건 그만큼 아이를 돌봐줄 능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게다가 골개똥과 나가는 이야기에서 아이는 돈도 한 푼 갖고 나가지 못한다. 아이의 모든 것이 골개똥에게 달린 형국이 된 셈이다. 골개똥이 동냥을 해서 아이를 보살피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하필 골개똥이었을까? 혹시 골개똥의 몸이 반편인 것이 지금껏 부모가 아이에게 해 주던 것의 절반 정도만 해줘도 충분하다는 뜻은 아닐까? 지금껏 지나치게 귀하게 자란 아이에게 적절할 정도로 말이다.

 

4. 삼 정승 딸과 결혼해야 하오!

 

과거를 보러 서울에 온 두 사람은 점을 친다. 복채 액수는 이야기마다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가지고 있던 전 재산만큼이 복채다. 타고 온 말밖에 없을 때는 이 말값만큼이다. 이 점괘에 자신의 모든 것이 달려 있는 셈이다.

점괘는 좋지 않다. 삼 정승의 딸과 결혼하지 않으면 죽게 된다고 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아이가 정승 딸과 결혼한다는 것도 불가능한데, 한 명의 정승이 아니라 세 명의 정승 딸과 결혼해야 한다니! 그것도 한꺼번에, 정해진 날짜 안에……. 어차피 이렇게 될 바에는 그동안 뭐하러 집에서 나와 고생을 했나 싶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집을 나와 고생하지 않았으면 이런 기회가 오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점을 보고 난 두 사람은 빈털터리가 된다. 그런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다.

팥죽장사 할머니와 그 딸이다. 이야기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두 사람은 훌륭한 조력자다. ‘팥죽할머니라는 말 때문일까? 팥죽장사 할머니에게서 자꾸 팥죽할머니가 연상된다. 팥죽장사 할머니가 주인공의 액운을 막아주는 수호신으로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팥죽장사 할머니는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아이의 사정을 듣고는 정승 집 몸종으로 있는 딸에게 말해 아이가 정승 집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할머니의 딸은 아이를 적극적으로 돕는다. 치마 속에 감춰서 혹은 여자로 꾸며서 아이가 정승 집 딸을 만날 수 있게 한다. 만약 발각이라도 된다면 몸종 신세인 할머니 딸은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모험을 한다. 아이를 살릴 방법이 있는데, 사람을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5. 정승 딸의 비밀

 

정승 딸이 사는 곳은 심상치가 않다. 열두 대문을 지나고 뭐고 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정승 딸이 지내는 곳은 정승이 자는 방을 지나고, 정승 부인이 자는 방을 지나고, 종들이 지키는 방을 지나야 나오는 후원에 있는 연못 가운데 있는 초당이다. , 정승 딸은 아무도 올 수 없는 곳에 꼭꼭 숨겨져 있다.

그래서 팥죽장사 할머니 딸이 더 대단해 보인다. 이런 곳을 통과해 아이를 정승 딸이 있는 곳까지 데려가기 때문이다. 듣는 사람이 조마조마해 가며 듣게 되는 명장면이다.

하지만 팥죽장사 할머니 딸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이제부터는 다시 아이가 헤쳐나가야 한다.

처음에 아이는 정승 딸의 방문 앞에서 머뭇머뭇한다. 하지만 곧 마음을 먹는다. 어차피 죽을 거 여기서 죽으면 시신이라도 찾을 수 있겠지 하는 심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자신의 사정을 말한다.

정승 딸은 사정 이야기를 듣고는 아이를 벽장 안에 들어가게 한다. 살 방법이 있는 사람을 모르는 척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 여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두 정승 딸이 오자 마치 옛이야기를 해주듯 아이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이럴 때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는다. 두 정승 딸은 살려야 한다 답한다.

이렇게 해서 귀한 집 아들은 삼정승 딸과 하룻밤을 보내고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에 따라 그 뒷이야기가 더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일단 명을 건졌으니 여기까지만 보기로 하자.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범상치 않은 정승 딸의 모습이다. 정승 딸은 문 앞에 인기척을 느꼈을 때 주역과 서전 등 주문을 왼다. 그리고 아이를 보는 순간 자신과 천상배필임을 알아본다. 그래서 아이를 살리기로 마음먹는다. 두 정승 딸을 설득하기 위해서 아이의 존재를 감춘 채, 마치 옛말처럼 꾸며서 그들의 생각을 떠본다.

정승 딸은 결정적인 순간에 주인공의 목숨을 구하는 구원자로서의 면모를 확실히 보인다. 살릴 수 있는 목숨은 죽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는 신념도 확실하게 보여준다.

정승 딸의 이런 힘은 어디서 왔을까? 이는 정승 딸이 사는 곳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듯싶다. 아버지의 방, 어머니의 방, 종들이 지키는 방을 지나 후원에 있는 연못을 건너야 하는 숨겨진, 고립된 공간. 이는 어쩌면 우리를 외적으로 둘러싸고 있는 온갖 것들의 내부에 있는 진정한 자신의 공간일지도 모른다. 이 말은 어쩌면 삼정승의 딸과 만난 그 공간이 실은 주인공이 찾아내야 했던 진정한 자신의 내면일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것은 삼 정승의 딸과 결혼하는 것만큼이나 불편한 일이다. 우리의 내면은 정승 딸의 거처만큼이나 꼭꼭 숨겨져 있고, 우리는 주인공 아이가 정승 딸 방의 문 앞에서 머뭇거리듯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을 머뭇거린다. 누구나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자신을 찾는 건 그만큼 불편하고 힘든 일이다. 그곳은 무의식적 공간이고, 그곳에서 발견한 자신의 모습은 스스로도 받아들이기 힘든 낯선 모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편함을 감내한 만큼 자신에게 감춰진 힘을 발견할 수도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 해도 삼 정승의 딸과 한 번에 결혼한다는,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가 불편한 건 여전하다. 하지만 3이라는 숫자는 균형과 완전함을 상징한다. <단명아>(임석재 전집 1-평북 1)를 보면 주인공이 삼 정승의 딸과 잘 때 주인공을 가운데 두고 삼정승 딸이 각각 좌우와 위에 자리를 잡음으로써 주인공을 겉에서 보이지 않게 만든다. 덕분에 주인공의 목숨을 앗아가려는 존재는 주인공을 찾지 못하고 돌아간다. 덕분에 주인공은 살 수 있었다. 만약 정승의 딸이 둘뿐이었다면 주인공은 발각되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삼 정승의 딸이 필요한 이유다.

그리스 신화 <오디세우스>에서 외눈박이 거인의 동굴에서 탈출하는 장면이 연상되기도 한다. 거인 폴뤼페모스는 외디세우스에게 외눈이 찔려 보지 못하게 되자, 동굴 밖으로 양들을 몰 때 양들을 쓰다듬으며 오디세우스 일행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세 마리 양을 묶어 가운데 양의 배에 매달려 나가 탈출에 성공했다.

 

6. 이야기가 뜻하는 것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평범한 집안이 아니라 그 역시 정승 집인 경우가 대다수다. 가부장적 전통사회에서 귀한 집안에 태어난 아들은 분명 집안을 이어나가기 위해 철저한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그 교육은 여성성은 철저히 없애고 오로지 남성성을 강화하는 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에서 아이가 목숨을 이어나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인물은 하인 골개똥을 제외하면 모두 여성이다. 팥죽장사 할머니와 그 딸, 삼 정승의 딸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골개똥이 잘 보살펴준다 해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일방적인 부모의 보살핌과 가부장적인 교육이 아니었다.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힘을 기르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기 내면의 여성성과 조화를 이뤄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야기를 보며 한편으로 나 자신이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지 자기 점검을 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비록 아들이 아닌 딸을 키우지만, 이야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성별과 아무 관련이 없을 것이다. 중요한 건 아이가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힘을 기르고, 내면의 남성성과 여성성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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