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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관련/논픽션

우리 동네 만화방

by 오른발왼발 2023.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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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언 글/강화경 그림/키다리/2014.10. 초판

 

 

내 어린 시절 만화방은 정말 신나는 곳이었다.

책이 넘쳐나지만 책을 별로 읽지 않는 요즘과 달리, 당시는 책을 읽고 싶어도 책이 없던 시기였다. 물론 아이들은 바깥에서 뛰노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읽을거리가 부족하던 당시, 아이들은 가끔은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만화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고 싶었다. 무엇보다 돈이 없어도 맘껏 뛰놀 수 있는 바깥과 달리 만화방은 돈이 있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사실 난 만화방에 간 경험이 많지 않다. 새로운 책이 있으면 다 사주시던 부모님은 동화책은 물론 당시 유명한 어린이잡지도 모두 사주셨다. 어린이잡지엔 달마다 연재되는 많은 만화가 있었다. 물론 만화로만 가득 찬 어린이잡지도 있었다. 잡지가 오면 만화부터 열심히 읽고 또 읽고, 그 다음이 궁금해서 다음 달을 애타게 기다리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의 선망이 될만한 조건인 나에게도 만화방은 기회만 되면 꼭 가고싶은 곳이었다. 만화방에 있는 만화는 어린이잡지의 만화와는 다른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만화방만의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여러 아이들이 모여서 만화를 고르고 열심히 보다가 때로는 군것질을 하기도 했다. 또 어린아이들뿐 아니라 중고등학생은 물론 간혹 어른들도 만화방에서 만날 수 있었다. 만화방은 만화를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안에는 만화방만의 문화가 있었다.

 

이 책은 1974년 어느 산동네 마을의 만화방 이야기다.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워하던 아이는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이야기나라도 함께 떠나버리는 슬픔을 겪는다.

그 무렵 마을에는 만화방이 생긴다. 하지만 가난한 아이는 만화방에 갈 돈이 없다. 그러니 만화방에 대한 선망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이는 적은 돈이라도 생기면 무조건 만화방으로 달려갔다. 만화책 속에 있는 수많은 이야기가 아이를 설레게 했다.

어느 일요일, 아이는 머리를 깎으라며 엄마가 준 돈을 들고 만화방으로 달려간다. 이발소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났을 때는 이미 저녁때였고, 머리를 깎을 돈은 얼마 남지 않았다. 결국 아이는 가진 돈에 맞게 빡빡머리로 깎는다.

그 아이는 커서 작가가 됐다고 한다. 아마도 작가 송언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아닐까 여겨진다.

 

이야기는 만화방에 가고 싶어한 아이의 마음이 잘 드러난다. 아마 만화방이 익숙한 세대, 1970~8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세대라면 추억에 잠겨 기분 좋게 이 책을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쩐지 딱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이야기 별사탕시리즈로 가운데 한 권이다. 뒤표지에는 이 시리즈가 ‘1970~80년대의 생활 모습을 배경으로 나와 가족, 우리 이웃의 삶과 이야기를 담은 부모와 함께 읽고 소통하는 생활문화 그림책임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책에서 보이는 것은 1970~80년대 생활 모습뿐인 듯싶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만화방의 모습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만화방 바깥의 풍경, 만화방 내부의 풍경이 네 장면 등장하긴 하지만 만화방의 분위기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만화방에서 책을 빌려보고, 군것질하며 즐기곤 했다. 만화방을 둘러싸고 아이들의 모습도 가지각색이었다. 그 모습을 좀더 생생하게 보여주면 좋았겠다 싶다. 이 책의 주인공을 만화방을 좋아하던 작가 자신으로 설정하면서 개인적인 이야기에 빠져 이 책의 주제가 되어야 할 만화방에 대한 이야기는 놓치고 만 것이리라.

 

2023년 현재 초등학생이라면 2010년 이후 출생했을 것이다. 부모 세대는 1980년대 이후 출생일 가능성이 높고 말이다. ,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줄 부모 세대 역시 만화방에 대한 추억이 없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는 이 책이 비교적 가까운 시기의 이야기라 해도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의 이야기다. 그러니 추억담이 아니라 역사물로서, 좀더 신중하게 다뤄졌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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