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에 관한 모든 것
혹시 ‘냄새 맡은 값’이란 옛날이야기를 아시나요?
배가 고팠지만 돈이 없던 한 사람이 음식점 앞을 지나다 음식 냄새를 맡고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던 이야기죠. 음식점 주인은 그 사람에게 음식 냄새 맡은 값을 내라고 해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죠?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인지 나중에 그 사람이 냄새 맡은 값을 주겠다며 돈주머니를 흔들어 동전 소리만 들려줄 땐 정말 통쾌했어요.
그런데 제가 언제 어디서 들었는지 혹은 봤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이 이야기처럼 냄새 맡은 값을 내라고 하는 데에 근거가 있다는 주장을 들은(본) 기억이 나요. 음식 냄새도 음식의 일부이니 음식 냄새를 맡으면 음식 일부를 먹은 셈이라고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렇게 따지자면 내가 길을 가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맡게 되는 수많은 음식 냄새는 어떻게 하나 싶어져요. 그 음식값을 다 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일부러 냄새를 맡았을 때만 내야 하는 건지, 혹은 상대방의 의견도 묻지 않고 음식 냄새를 피운 음식점이 잘못인지, 아주 생각이 복잡해져요.
아무튼, 제가 이 이야기가 떠오른 건 이번엔 ‘냄새’에 관한 책들을 봤기 때문이에요.
지금껏 우리는 수많은 냄새 속에서 살아왔지만, 냄새에 관해서는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수많은 냄새 가운데서 아주 일부인, 좋은 냄새(우리가 흔히 향기라고 부르는)에는 관심을 두지만, 그 외의 냄새에 대해서는 애써 무관심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인지 냄새에 관한 책도 별로 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이번에 냄새에 관한 책 세 권을 봤어요.
차례차례 살펴보도록 할게요.
우리 몸에서 나는 냄새, 동물과 식물의 냄새, 냄새에 얽힌 역사와 문화, 향수, 그리고 과연 공기가 없는 우주에서도 냄새가 날지에 대한 궁금증까지를 아주 유쾌하게 보여주는 책이에요.
아무리 깔끔한 척해도 누구나 자신만의 냄새가 있다는 사실에서 시작해, 우리가 냄새를 어떻게 맡게 되는지, 냄새가 갖고 있는 특별한 힘이 있다는 것도 알게 해 주는 책이지요.
무엇보다 냄새를 전달해줄 공기가 없는 우주에도 냄새가 있다는 사실은 정말 흥미로웠지요. 우주에서는 냄새를 전달해주는 공기가 없어 냄새를 맡지 못하지만, 냄새가 우주인들의 옷과 장비 그리고 우주선에 배어 있기 때문에 공기가 있는 곳에서 그 냄새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해요.
이 책은 이처럼 냄새에 대한 진지한(!) 지식뿐 아니라 여러 재미난 사실도 알려주죠. 한 번쯤은 친구들 앞에서 잘난 척하며 이야기할 수 있는 사실들이죠.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에요.
- 하루에 발에서는 2컵 정도의 땀을 흘린다.
- 한 달 동아 뀌는 방귀를 모으면 풍선을 20개나 불 수 있다.
- 4,700년 전 중국에서는 입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어린아이 오줌으로 입을 헹궜다.
어떠세요? 이쯤 되면 실컷 웃으면서 냄새에 관해 지식을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초등 저학년부터 누구라도 볼 수 있는 책이에요.
숲 냄새, 바다 냄새, 비 냄새, 시골 냄새처럼 우리 주변의 여러 냄새에 관심을 갖게 하는 책이에요. 책을 읽다 보면 이들 냄새가 우리가 잊고 있던 기억을 불러오기도 하고, 맛을 느끼게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죠.
이 책은 향기와 악취라는 냄새의 두 가지 측면에 대해서도 말해줘요. 하지만 향기와 악취가 절대적으로 좋고 나쁜 것이란 생각이 들지는 않아요. 아무리 좋은 향기라도 그 향기를 누구나 다 좋아하는 건 아니고, 악취가 나는 음식 속에 놀라운 맛이 숨어 있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니까요.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누구나 깨끗하고 향기로운 냄새를 좋아하죠. 그래서 발달한 게 향수고요. 향은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능력도 있고, 옛 추억을 불러오기도 하고, 소비자를 유혹하기 위해서도 쓰여요. 향기를 만드는 직업인 조향사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그래서인지 이 책은 향수와 조향사의 이야기로 마무리를 하고 있어요.
《내 몸부터 우주까지 냄새가 궁금해!》가 냄새에 대한 여러 가지 사실을 감각적이고 유쾌하게 보여주고 있다면, 이 책은 우리 주위의 여러 냄새를 직접 맡아보며 사색하기를 권하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냄새는 저마다 이렇게 달라. 냄새에 관심을 가져봐. 냄새 때문에 이런 일들도 있었고, 이런 문화를 만들기도 했어. 향기에 관심이 있다면 조향사란 직업도 괜찮지 않을까?”
이렇게 말을 걸면서 말이에요.
다만 ‘향기와 악취의 과학과 문화’란 부제와 달리 냄새의 과학적인 부분은 조금 약하다는 점이 아쉬워요.
제목이 시선을 확 잡아끌었던 책이에요. 게다가 앞선 책들과는 달리 우리나라 작가가 쓴 그림책이라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이 책은 엄밀하게 말해 ‘냄새’에 관한 책이 아니라 ‘향기’에 관한 책이라 할 수 있어요. ‘냄새=후각=향기’로, 뭔가 개념을 잘못 이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 책의 내용 가운데 많은 부분이 향수에 맞춰 있어요. 만약 향수에 관심이 많다면, 이 책이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냄새 박물관’이란 제목만 보고 이 책을 선택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이 책이 ‘인문 그림책’을 타이틀로 달고 있었지만, 그림책으로서의 매력이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어요. 겉모습은 그림책인데, 펼쳐보니 그림책이 아니었다는 느낌이랄까요? 글도 그림도 읽기책에서의 글과 삽화와 차별성이 보이지 않았어요. 이 책의 크기를 좀 줄이고 하드커버만 벗겨낸다면 그대로 그림책이 아닌 읽기책이 될 만큼이요.
‘냄새 박물관’ 같은 거창한 제목을 붙이지 말고, 인문 그림책이란 타이틀을 빼고, 처음부터 이 책을 향기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위한 읽기책으로 만들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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