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이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평범한 게 좋은 거야.”
“난 평범하게 살고 싶어.”
이 말의 의미는 사람들 사이에서 튀고 싶지 않다는 뜻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튀었다가는 편하게 지내기 힘들기 때문이죠.
그러니 이렇게 평범한 삶을 선택하는 것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세워놓은 평범함의 기준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한다면 그건 문제가 돼죠.
“좀 평범하게 지내면 안 되겠어?”
“특이한 행동은 하면 안 돼!”
이렇게 말하면서요.
이번에 ‘평범’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 두 권을 읽었습니다.
《모더니타가 묻습니다. 평범이란 뭘까요?》
(모데르나 데 푸에블로 글, 그림/최하늘 옮김/춘희네책방)
《나는 반대합니다 – 행동하는 여성 대법관 긴즈버그 이야기》
(데비 레비 글/엘리자베스 배들리 그림/양진희 옮김/함께자람)
《모더니타가 묻습니다》는 제목부터 주제가 확실히 드러납니다.
무거운 주제이지만 화사한 색깔과 만화풍의 그림 덕분에 주제의 무게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친구에게 생일 초대를 받은 모더니타가 생일 선물을 준비하고, 친구들 집을 방문하면서 겪는 일들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평범한 어느 날이었습니다. 놀이터에서 놀던 모더니타와 친구들은 베가의 생일 파티에 초대를 받습니다. 그런데 다른 친구 부모님들은 모두 함께 가지 못할 사정이 있었고, 모더니타의 아빠가 친구들 집에 들러 함께 데리고 가기로 하지요.
모더니타는 생일 선물을 사러 가고, 베가네 집에 가는 길에 친구들 집을 하나씩 들르게 됩니다. 그리고 ‘평범’이란 말에 대한 의문이 하나씩 생겨나지요.
장난감 가게에서 일하는 아저씨는 선물 고르기를 도와준다면서
“선물 받을 사람이 남자애니, 여자애니?”
하고 묻기만 합니다.
남자애면 파랑, 여자애면 분홍이라면서요. 마치 앵무새처럼 말이에요.
그게 가장 평범한 거라나요? 그리고 여자면서 파란색을 좋아하는 모더니타이가 ‘특이한 것’이라 합니다. 모더니타가 ‘평범’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친구들 집에 들를 때마다 같은 상황이 계속됩니다. 모더니타에게 평범한 것이 친구에게는 그렇지 않고, 친구에게 평범한 것이 모더니타에게는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핑키네는 염색이 평범한 것이었고, 나니아네는 까만 곱슬머리가 평범한 것이었죠. 젠의 집에는 아빠 대신 엄마가 둘이었고, 베가네 생일 파티엔 초콜릿이나 젤리 같은 건 없었습니다.
모더니타가 보기에 친구들의 집은 모두 평범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그 집에선 모더니타가 평범하지 않은 존재였지요. 집집마다 평범함의 기준은 모두 달랐으니까요.
모더니타는 친구들이 평범하지 않고 서로 아주 달라서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똑같다면 세상은 너무너무 지루했을 거라 여기면서요.
무거운 주제를 이렇게 상큼하게 녹여낸 작가의 역량에 감탄이 나옵니다.
하지만 아쉬운 건, 아무래도 그림책의 느낌이 잘 살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마치 이야기에 삽화가 많이 곁들여져 있는 책 같았습니다.
작가의 약력을 살펴봤습니다. 필명으로 레이첼 코콜레스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는 그래픽 노블 작가였습니다.
이번엔 서지 사항을 살펴봤습니다. 어? 각색에 레이첼 코콜리스란 이름이 보입니다. 각색이라니? 아마도 이 책은 원래 원작이 따로 있었고, 그 책을 각색해서 만든 그림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그림책의 느낌이 잘 살지 않는다고 느꼈던 건 바로 이 때문이었나 봅니다.
《나는 반대합니다》는 미국의 유명한 여성 대법관 긴즈버그의 인물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다른 인물이야기와는 조금 다릅니다. 이야기는 긴즈버그의 상징과도 같은 ‘나는 반대합니다’라는 말을 전면에 내세워 진행됩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반대’ ‘항의’ ‘저항’ 등의 단어와 문장이 아주 많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단어와 문장들은 단순히 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림의 한 부분으로도 들어가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그림책으로서의 매력이 넘치는 책입니다.
‘반대’라는 말이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상징처럼 된 건 그가 살아온 시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 세상은 온갖 편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여자아이들은 좋은 남편을 만나는 게 전부라는 편견, 유대인 출입 금지 푯말, 왼손으로 글씨를 쓰면 안 된다는 편견, 여자와 남자의 일은 나뉘어 있다는 편견, 여자는 변호사가 될 수 없다는 편견 같은 것들이죠.
긴즈버그는 이 모든 것에 단호하게 반대했습니다. 편견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건 부당한 일이라 여겼습니다.
특히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싸웠습니다. 이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 평등해지는 일이었습니다. 여성들이 직업의 세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남성들은 가정 생활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니까요.
마침내 긴즈버그는 대법원 대법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이 판결을 내릴 때 많은 경우, 긴즈버그는 그 판결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대개는 여성, 흑인, 이민자, 유색인종들에 대한 불평등한 판결을 내리는 경우였지요.
긴즈버그의 생애와 그가 살았던 시대를 잘 아우르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누구나 이 책을 한 번 보게 된다면 긴즈버그의 강렬한 모습이 그대로 각인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책에서 아주 약간의 아쉬움(혹은 의문일지도)
1.
음악 시간에 루스는 목청껏 노래를 불렀어요.
이번에는 음악 선생님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렸어요. 선생님은 음정을 잘 맞추지 못하는 루스에게 합창할 때 큰 소리로 노래하지 말라고 했어요.
하지만 루스는 노래 부르기를 그만두지 않았어요.
합창할 때는 아무리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라도 목소리가 튀어서는 안 되는 걸로 아는데... 루스는 계속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는 걸까요? 아님 큰 소리로 노래하진 않았지만 노래 부르기를 그만두지 않았다는 뜻일까요?
2.
긴즈버그 대법관은 법률적 견해가 서로 다른 앤터닌 스캘리 대법관과 자주 부딪쳤지만,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고 해요. 그리고 함께 ‘프랑스에서 패러글라이딩하기’와 ‘인도에서 코끼리타기’라는 설명과 함께 사진 그림도 넣었어요. 그런데 이 밖에도 많은 걸 함께 했을 것 같은데, 왜 하필 인도에서 코끼리 타기를 넣었을까요? 관광객을 태우는 코끼리는 동물 학대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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