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타기 한판
민하 글, 그림/글로연
어, 이거 뭐지?
그림책에는 진짜 줄이 가로질러 있었다. 빨강색 줄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구멍을 통과해 다음 장으로 계속 이어졌다.
와, 이거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겠는데?
줄타기 책에 이렇게 진짜 줄을 넣어 만들다니,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줄이 뒷장으로 계속 연결되면서 줄타기의 과정이 하나로 이어지는 효과가 잘 드러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쪽 면지 부분에는 줄 아래로 입장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줄타기를 하는 동안 줄광대와 서로 재담을 주고 받으며 흥을 돋우는 어릿광대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 그리고 줄광대다.
다음 장에는 자리를 잡고 인사를 하는 모습이 보이고, 그 다음부터는 줄을 타는 줄광대의 아슬아슬 줄 타는 모습과 함께 줄광대와 어릿광대가 서로 주고받는 재담과 각 악기들의 선율이 어우러지는 소리를 악기마다 고유한 색깔의 선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줄타기 한판을 마치고 나면 이들은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 나간다.
그림책의 형식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입장에서 퇴장까지 그 과정이 나름 완벽해 보인다.
2022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선정작
2023 대한민국 그림책상 대상
볼로냐도서전 어메이징북셀프 선정
이 책에 이처럼 화려한 수상 내역이 붙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뭔가 아쉬웠다. 일단 줄타기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입장하는 사람들이 각각 누구인지 알기 어려웠다. 악기의 이름이나 소리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줄타기의 매력또한 잘 느껴지지 않았다. 조마조마하다 신명이 나기도 하고, 가슴이 쿵 내려앉거나 환호성을 지를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했다. 구경꾼이 되어 줄타기에 몰입하려던 독자 입장에서는 맥이 풀렸다.
물론 작가는 구경꾼의 눈으로 줄타기를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일단 책에서 구경꾼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못하면 죽을 판. 잘하면 살판이구나!”를 외치며 줄에서 회전을 하는 장면에서 지붕이 삼면으로 흩어지는 것으로 보아, 이 장면은 줄광대의 시선인 듯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줄광대의 시선으로만 보여주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 장면을 제외한다면 모든 장면이 줄광대와 어릿광대, 그리고 삼현육각의 연주팀으로 이루어진 줄타기 팀 전체를 보는 작가의 시선이라 할 수 있다.
아쉬운 건 그 줄타기 팀에 구경꾼들이 빠졌다는 점이다. 원래 줄타기는 구경꾼들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신명나는 무대 한판이 완성되는 것이다. 줄광대는 단순히 줄만 타는 게 아니라 구경꾼들의 마음을 밀고 당기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기발한 아이디어와 함께 그림책의 형식적인 면에서 깔끔하게 만들어졌지만, 독자와의 공감에는 실패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줄타기 공연에서 관중은 그림책에서의 독자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책에는 줄타기 공연을 들을 수 있는 QR코드가 있다. 그런데, 줄타기라면 영상이 필요한 게 아닐까?
'어린이책 관련 > 논픽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어 뼈는 0개 (0) | 2024.11.02 |
---|---|
인공지능에 관한 책 두 권 (5) | 2024.09.26 |
평범이란 무엇일까요? (1) | 2024.08.05 |
<너는 하늘을 그려, 나는 땅을 그릴게-김정호와 최한기의 지도 이야기>, <문익점과 정천익 - 따뜻한 씨앗을 이 땅에 심다> (0) | 2024.08.01 |
거짓말에 대한 책 (0) | 2024.06.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