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에 관한 책
《문어 뼈는 0개》(앤 리처드슨 글/안드레아 안티노리 그림/봄볕)
제목만으로도 흥미를 끄는 책이에요.
0에서 시작해서 9까지 숫자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정보를 알려 주죠.
0이 다른 숫자의 뒤에 붙어 얼마나 큰 숫자가 되어 가는지도 확인할 수 있지요.
사실 0에서 9까지라는 건 세상의 모든 숫자나 다름없어요.
각각의 숫자와 관련된 정보 가운데는 아주 흥미롭고 신기한 내용도 많아요.
저는 ‘남극의 드라이 밸리라는 곳에는 지난 2백만 년 동안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제일 신기했어요. 너무 궁금해서 당장 찾아볼 만큼이요.
가장 커다란 빗방울은 폭이 8㎜고, 이보다 더 커지면 땅으로 떨어져 쪼개진다는 사실도 재밌었어요.
그림도 참 좋아요.
선명하고 재미있으면서도 책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줘요.
작가는 자신의 두 아이와 세상의 온갖 수를 세고, 재고, 궁금해하기 시작해서 그 답을 알아내 적어 두었던 내용을 정리해서 이 책을 썼다고 해요. 그러면서 독자들에게도 직접 밖으로 나가서 무엇이든 세고 재 봤으면 좋겠다고 말해요.
저도 이 방법 정말 찬성해요.
작가가 두 아이와 함께 세상의 온갖 수를 세고, 재고, 궁금해하며 답을 알아가는 과정이 눈에 보이는 듯해요.
하지만, 그렇게 쓴 책이라서 아쉬움도 남아요.
이 책에는 우리에겐 낯선 내용이 자주 등장하는데,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인 양 설명이 빠져있어 갑자기 벽이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예를 들어 녹색부전나비의 날개는 녹색이지만 녹색 색소의 양이 0이라는 설명이 나올 때, 녹색부전나비가 무언가 길게 늘어진 것을 들고 가는 그림이 있어요. 바로 틸란드시아라는 식물인데 필요한 흙의 양이 0이래요.
그런데 녹색부전나비는 틸란드시아를 왜 들고 갈까요? 과연 나비가 이 식물을 들고 갈 순 있는 걸까요? 하지만 이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어요.
하나의 숫자가 등장할 땐 그 숫자에 관한 내용만 집중하게 되는데, 다른 숫자들이 마구 등장해서 혼란스러워지기도 해요.
예를 들어 6이란 숫자가 등장했을 때였어요. 개미를 비롯한 모든 곤충의 다리가 여섯 개라는 설명에 이어 거미는 다리가 여덟 개고 공벌레는 다리가 열네 개라는 말이 나와요. 거미나 공벌레는 6이란 숫자와도 관련이 없고, 곤충도 아닌데 말이에요.
또 정확한 숫자가 아니라 대충 어림잡은 숫자를 사용하기도 해요.
“미국 워싱턴주의 미국 의회 도서관에는 어린이 책이 50만 권 있어요.”
정말 딱 50만 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숫자는 계속 바뀔 텐데 이렇게 단정하는 건 위험해 보여요.
아마 작가가 아이와 함께 알아갈 때는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됐을 거예요. 하지만 그 과정을 함께 하지 못한 독자는 이런 서술이 당황스럽게 느껴져요. 독자가 책을 보는 시기엔 ‘남아메리카에서 해마다 바나나를 90억 킬로그램을 수출’하지 않을 수도 있고요. 아이와 함께 이 사실을 알아냈을 때 그 아무리 기뻤다 해도 책을 쓸 때는 독자의 시선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과적으로 책의 구성과 아이디어는 돋보였지만, 내용 면에서는 아쉬운 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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