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권장도서는 꼭 읽어야 할까요?
지난 해 아이 학교에서 ‘책읽어주는엄마’ 모임이 있었다. 1-2학년 엄마들이 토요일 수업 시간 전에 돌아가며 책을 읽어줬다. 책읽어주는엄마 모임은 도서명예교사를 겸하고 있어서 할 일이 무척이나 많았다. 일이 많다보니 자주 만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친해지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학년 말이 되자 다들 지쳐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1년 동안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 무엇이었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다들 책을 고르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책 읽어주는 일은 한 사람이 일 년에 서너 번밖에 차례가 안 돌아가기 때문에 책 고르는 일이 어려울 거라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는데 다소 의외였다. 물론 그 책 고르는 일이 자기 아이에게만 보여줄 책이 아니라 반 아이 전체에게 보여줘야 하는 책이기에 고르기가 더 어려웠던 건 분명하다.
권장도서는 무조건 읽는다?
이처럼 책 고르는 일이 어렵다 보니 책에 관심이 많은 분일수록 권장도서목록을 꼭 챙기는 경우가 많다. 특별한 기관에서 뽑은 권장도서를 신뢰하기도 하지만, 아이가 학교에서 가져오는 권장도서목록을 꼭 챙기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학년 초가 되면 학교 권장도서목록을 들고 서점에 와서 책을 사가는 분들이 계시다. 혹은 주위 엄마들이랑 갖고 있는 책을 확인하고 차례대로 돌아가며 보는 경우도 있다. 적어도 학교에서 나오는 권장도서만큼은 필독서로 다 읽히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여기에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독후 활동을 생각해서 미리미리 챙겨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 또한 있다. 여러 가지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독후활동지 혹은 독서골든벨 같은 활동은 대개는 권장도서목록을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이제 학교에 적응을 하고 있는 1, 2학년 경우는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보다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생각에 목록을 꼼꼼하게 챙기곤 한다.
권장도서목록은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다. 같은 책이라도 권하는 학년이 달라지기도 하고, 목록에 있는 책도 천차만별이다. 나는 이렇게 학교마다 개성 있는 목록을 정하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권장도서목록을 참고하며 책을 고를 수 있는 분들도 있지만 책에 관한 아무런 정보도 없어 어떤 책을 보여줄지 막막한 분들에게 참고가 되기 때문이다.
무작정 권장도서를 믿지 말자
하지만 학교 권장도서목록을 볼 때면 불안해지기도 한다. 간혹 도대체 무슨 책인지 아무리 찾아봐도 알 수 없는 책이 목록에 올라가 있기 때문이다. 또 권장도서목록은 출판사는 밝히지 않은 채 책 제목만 제시되는 경우가 많다. 책 제목만 봐도 어느 출판사 책이라는 걸 알 수 있는 경우는 상관이 없다. 그러나 여러 출판사에서 중복 출판되는 책의 경우, 어느 책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질이 낮은 책을 보게 될 가능성도 있다. 또 1, 2학년 목록에 5,6학년이나 읽을 수 있을만한 책이 올라가 있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목록이 어떻게 나왔을까 의심이 가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권하고 있는 이 책들을 선생님들이 과연 읽어보기는 했을까 싶다. 물론 선생님들 가운데는 아주 열심히 아이들 책을 읽고 골라주는 분들도 계시다. 하지만 많은 목록들이 아이들을 맡고 계신 선생님들의 검증을 거치지 않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괜찮은 책들로 채워진 목록을 볼 때도 반갑지만은 않다. 이런 경우 특정 기관이나 단체에서 나온 권장도서목록을 무 자르듯 잘라 넣은 경우를 봤기 때문이다.
권장도서 = 재미없는 책?
그러나 학교 권장도서목록의 이런 아쉬움과는 별개로 어떤 목록이든 너무 맹신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더구나 학교 권장도서목록은 학교라는 틀 때문에 자칫 마치 교과 공부의 연장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이 높다. 권장도서를 잘 읽어가야 선생님한테 잘 보일 수 있다거나, 수업 시간에도 유리하고, 독서퀴즈대회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과 쉽게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눈에 보이는 효과를 보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제대로 만들어진 권장도서목록도 꼭 필요하겠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목록을 대하는 엄마들의 태도다. 이런 책읽기는 어느새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고 ‘권장도서목록=재미없는 책’으로 낙인찍히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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