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선생님이 있었으면 좋겠다!
《장건우한테 미안합니다》(이경화 글/바람의아이들/2007년)
“너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어려서 누구나 듣게 되는 질문 가운데 하나다. 아주 어렸을 때는 뭐가 되고 싶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고, 또 꿈이라는 게 자주 바뀌기 마련이라 뭐가 딱히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언제부턴가 확실한 게 하나 있었다. 선생님만은 절대 되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만 아니라면 내가 무엇이 되던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좀 예민한 탓인지는 몰라도 이제 겨우 일곱 살 나이로 들어간 학교에서 선생님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어린 나이에도 부잣집 아이만 좋아하는 모습이 뻔히 들여다 보였다. 2학년이 되어서 만난 선생님은 자기가 필요한 물건을 아이들에게 주문하거나 엄마가 학교에 나올 것을 강요하곤 했다. 그 모습이 너무 싫어 엄마가 학교에 오는 걸 억지로 막기도 했다. 결국엔 선생님이 나를 앞세우고 집에 찾아와 필요한 물건을 받아가기도 했다.
물론 늘 이런 선생님만 있는 건 아니었다. 때론 나한테 잘 해주는 선생님도 있었다. 하지만 1, 2학년 때 선생님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선생님이 나한테 잘 해주는 것도 반갑지 않았다. 나한테 잘 해주는 만큼 다른 누군가는 선생님의 관심을 눈꼽만큼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내린 결론. 선생님은 절대 되지 말자. 누군가를 특별히 잘 대해주지 말자. 그러면 상처받는 사람이 생기니까. 그러니 누구든지 똑같은 만큼의 애정으로 대하자.
이 책을 읽고 새삼 어릴 적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채 몇 장을 넘기기도 전에 선생님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건우의 마음이 어땠을지 충분히 공감이 갔다. 아니, 어느 새 나는 건우가 되어 갔다.
이처럼 금새 건우의 마음에 동화될 수 있었던 건 어릴 적 받았던 상처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 만은 아니다. 이 책은 자신의 상황과 마음을 화자 중심으로 풀어가는 일인칭 시점의 서술 방식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특히 이 책에서는 일인칭 시점과 함께 일기 형식이 등장하는데, 이 일기의 효과가 만만치 않다. 벌어지고 있는 사건에 대한 설명과는 별도로 자신의 심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면서 독자가 화자에게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상승시킨다고나 할까?
선생님의 차별 대우를 받은 건우의 심정도 이 일기를 통해 극대화된다. 건우 이야기는 일기에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것으로 시작해서 자연스럽게 그 일기 내용과 관련된 사건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일기는 사건과 사건을 이어주는 구실을 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일기는 화자의 마음을 보여주는 창구이자 사건을 진행해가는 징검다리 구실을 동시에 하고 있다. 게다가 일기는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일기의 서술 방식이 독자로 하여금 ‘왜? 왜 이렇게 된 거지? 무슨 일이 있는 거야?’ 하며 다음 사건으로 빠져들게 한다. 일기에 기록해 놓은 날씨도 독특하다. 날씨가 보통 일기처럼 ‘그날의 날씨’가 아니라 ‘마음의 날씨’다.
느닷없이 번개, 천둥, 우르르 쾅쾅!
먹구름은 번개를 숨기고 있다.
구름 뒤에는 해님이 있으려나?
건우 일기장 속에 담긴 마음의 날씨다. 사건의 발달이 된 날의 느닷없는 충격과 이후 혼란스러운 건우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느닷없이 뺨을 맞은 것만 해도 억울한데 그걸 게임이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미진이와 소영이. 그리고 분명 잘못을 저지른 미진이나 소영이에겐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대하고 일방으로 이해를 하라는 선생님. 겉으로 보여지는 미진이와 소영이의 가정 환경이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겉으로 보기엔 어려운 아이를 잘 배려해주는 듯 보이지만 지나칠 정도의 일방적인 편들기에 부당한 일까지도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건우에겐 견디기 어렵다. 사람에게는 겉으로 보여지는 것만이 다가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그다지 길지 않은 이 책의 딱 중간쯤 오면 이번엔 ‘소영이 이야기’가 등장한다. 소영이. 선생님이 편애하는 소영이. 쪽팔려 게임을 한다면서 미진이에게 건우 뺨을 때리는 벌칙을 정했다는 바로 그 소영이 이야기 말이다.
소영이 이야기는 앞서 건우 이야기가 건우 입장에서 쓰여진 것처럼 소영이 입장에서 쓰여졌다. 그런데 같은 사건을 이야기하지만 사뭇 다르다. 소영이에게 선생님은 자신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는 아주 특별한 선생님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부자순으로 생각하지 않는 참 공평하신 선생님이다. 미진이가 건우 뺨을 때린 것도 소영이가 정한 벌칙이 아니었다. 건우를 좋아하던 미진이가 장난으로 한 것뿐이었다. 더구나 사과도 했는데 건우가 자꾸 울자 가해자가 된 듯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아이들이 ‘선생님한테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며 쑤근대는 소리에는 당황스러워진다. 급기에 모범생이자 반장이고 누구나 다 좋아하는 아이라고 생각했던 건우로부터 “선생님한테 사랑받는 애들은 모르겠지. 미움받는 사람 마음을.”이라는 말마저 듣고 나서는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그럼 선생님은 왜 누구에게는 편애하는 선생님으로, 또 누구에게는 공평한 선생님이 된 건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선생님의 과거 이야기를 들으면 한편 공감이 간다. 김진숙이란 흔한 이름 탓에 ABC로 불렸던 선생님은 이름이 불리지 않는 아이들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던 거다. 선생님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건 그 아이들 이름만을 불러주다 보니 다른 아이들 이름은 잊고 지냈다는 사실이다.
이야기의 결말은 행복하다. 선생님은 ‘한 이름 불러 주기 놀이’ 때문에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사과를 하고, 다함께 운동장에 나가서 말 걸기 놀이를 한다. 한 반 아이들이 서로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면서 말이다.
나한테도 이런 선생님이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다. 선생님의 편애 때문에 화가 나긴 했어도, 잘못을 깨닫는 순간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줄 아는 선생님이니까.
그런데, 한편 또 다른 걱정이 생긴다.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이 해주는 게 과연 가장 최선의 방법일까? 나는 어릴 적 선생님한테 받은 상처 때문에 ‘누구에게든 똑같은 만큼의 애정으로 대하자’는 신념대로 행동하려고 늘 노력했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행동 때문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도 생겼다.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라면 문제가 덜 생길 듯도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도 않다. 관계 맺음. 이것만큼 힘든 것도 없는 듯하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로 펴내는 《기획회의》 통권 202호(2007년 6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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