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몽상, 나를 찾아가는 여행
《피터의 기묘한 몽상》(이언 매큐언 글/앤서니 브라운 그림서애경 옮김/아이세움/2005년)
이 책의 주인공은 피터다. ‘피터’는 아주 흔하고 평범한 이름이다. 피터는 얼굴도 성격도 평범하다. 하얀 얼굴에 주근깨가 덮여 있고, 학교에도 착실히 다니고, 말썽 같은 것도 부리지 않는다.
이렇듯 평범한 피터이기에 ‘기묘한 몽상’과는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표지 그림에는 사람의 몸을 한 고양이 한 마리가 평범한 셔츠에 바지를 입고 소파에 앉아있는데, 그 표정이 참 묘하다. 평범한 피터와 기묘한 제목, 평범한 사람의 몸과 기묘한 표정의 고양이. 평범함과 묘함이 대비되며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어떤 기묘한 일이 벌어질지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리고 기대감은 적중했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피터가 꿈꾸는 몽상의 세계는 혀를 내두룰 만큼 기발하고도 놀라웠다. 작가는 주인공을 피터라는 아주 평범한 아이로 내세움으로써 기묘한 몽상의 세계를 더욱 강조되면서도 독자 자신이 경험했던 기묘한 몽상의 세계를 일깨운다. 피터가 평범한 아이가 아니라 튀는 아이였다면 결코 이런 효과는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피터는 어른들에게 ‘어려운 아이’다. 말이 너무 없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피터의 머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란다. 그렇지만 어른들에게 어렵지 않은 아이가 있을까? 아이라면 누구나 머릿속에서는 늘 뭔가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결국 피터를 어려워하는 어른들이란 몽상의 세계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피터는 다만 생각이 행동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지 않을 뿐이다. 마당 담벼락에 병을 내던지거나, 이마에 빨간 케첩을 묻히고 피를 흘리는 척하거나, 장난감 칼로 할머니 발목을 친 다거나 하는 장난은 어쩌다 머릿속으로만 해 본다. 하지만 피터의 몽상이 반드시 생각에만 갇혀 있는 건 아니다. 자기도 모르게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진짜 행동으로까지는 아니라도 완전히 몽상에 사로잡혀 남들이 볼 때 조금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몽상이 끝나는 순간 피터는 깜짝 놀라고 만다. 현실과 몽상 세계는 헷갈리고 만다.
이처럼 피터의 몽상이 현실과의 경계에서 헤매는 건 피터의 몽상이란 것이 뜬금없는 게 아니라 피터의 내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표지 그림과도 관련 있는 ‘고양이’편을 보자.
화요일. 학교에 가야하지만 날씨는 춥고 재미있는 일도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겨울 아침에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하는 상황이다. 피터의 방과 거대한 바깥 세계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부엌은 무척이나 정신이 없다. 피터의 부모 둘 다 직장에 다니기 때문이다.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피터에게 난방기 위의 선반에 느긋하게 앉아 있는 열여덟살이나 먹은 고양이 윌리엄은 특별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날 오후 피터는 고양이와 몸이 뒤바뀌는 경험을 한다. 피터는 고양이가 되어 윌리엄을 못살게 굴던 검은 고양이를 혼내주기도 한다. 그리고 피터가 몽상에서 깨어나는 순간, 고양이는 죽음을 맞는다. 결국 몽상은 피터가 고양이와 마지막으로 나눈 교감의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고양이와 가장 친했던 피터는 어쩌면 고양이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보다 재미있는 건 피터와 고양이 몸이 뒤바뀌는 과정이다. 지퍼를 열듯이 목구멍부터 꼬리까지 고양이 몸통을 좍 여는 순간 고양이 영혼이 빠져나오고, 그 영혼이 이번엔 피터의 몸을 열어 영혼이 나오게 한다. 몸은 마치 입고 다니는 옷처럼 느껴지고 만다. 누구도 둘이 서로 뒤바뀐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중요한 건 몸이 아니라는 걸까? 고양이는 죽었지만 피터의 마음 속에 고양이 윌리엄은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존재에 대한 문제는 피터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 ‘나는 누구지?’와 바로 연결된다. 피터의 답은 ‘나는 피터야. 열한살 먹었고.’ 라는 간단한 대답으로 끝나지만 이는 결국 자기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하고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몽상은 피터에게 강한 힘을 주기도 한다. 몽상은 기존의 질서를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터는 학교에서 ‘주먹 대장’으로 유명한 배리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한다. 배리는 우리보다 힘이 세지 않은데 우리 스스로 배리가 강하고 힘이 있다고 꿈꾸었던 거라고. 그래서 사과를 내놓으라며 다가온 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너를 믿지 않아. 사실, 넌 아무 것도 아니면서 대단한 척하지. 나는 네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아.”
몽상은 어느새 현실의 목소리로 터져 나오고 만다. 몽상이 아니었으면 하지 못했을 말을 내뱉고 만다. 배리는 곰 인형을 갖고 있고, 엄마의 설거지를 돕는다는 피터의 말 하나만으로 아이들 사이에서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사실은 누구나 다 그렇지만 그건 아이들이 꿈꾸는 주먹대장 배리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모습이 우리의 현실과 많이 닮아 있다. 누구나 조금씩 몽상을 하지만, 그 몽상이 다른 사람에게 뜬금없어 보이거나 놀림감이 될까봐 그렇지 않은 척 하기도 하고, 때론 세상을 자신이 꿈꾸는 대로 보고 싶은 마음에 단정지어 버린다. 결국 작가는 피터의 기묘한 몽상을 통해서 누구나 갖고 있지만 겉으로 표출되는 걸 꺼려서 꽁꽁 감추고 있는 우리 자신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과연 피터는 어른이 되어까지도 이런 몽상을 계속 해나갈 수 있을까? 그 답은 마지막 이야기 ‘어른’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피터는 자신이 열 살이나 더 먹은 어른이 된 몽상을 하게 되고, 몽상에서 깨어난 뒤 어른들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마지막 장면, 아이들을 향해 뛰어가던 피터는 몸이 말을 듣지 않고 무게가 없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날려나 봐.” 그리곤 생각한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날고 있는 것일까?
열한살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열두살까지 이어진다. 열두살은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서 있는 때다. 피터는 몽상을 통해서 자신의 앞날까지도 미리 준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그걸 확실히 알고 있는 피터이기에 분명 어른이 되어서도 몽상은 계속될 거란 예감이 든다. 하긴 몽상이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건 아닐 것이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간으로 펴내는 《기획회의》 통권 172호(2006년 3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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