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속의 개인사, 사회사
《니안짱》(야스모토 스에크 지음/조영경 옮김/허구 그림/산하/2005년/절판)
이 책은 재일교포 소녀인 야스모토 스에코의 일기글이다. 스에코의 부모님은 1927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1953년 1월 22일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의 첫 문장은 “오늘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49일째 되는 날입니다.”로 시작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미 5년 전에 앞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스에코의 나이 열 살 때였다.
이것만으로도 스에코의 처지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비록 스에코 혼자가 아니라 스무 살, 열다섯 살, 열두 살의 언니 오빠가 있긴 했어도 일본 땅에서, 조선인이라는 차별속에서 살아가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사정은 스에코의 두 번째 일기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큰오빠는 3년 전부터 캐낸 석탄을 고르는 작업장에서 석탄 먼지가 덜 날리도록 물을 뿌려주는 일을 하고 있는데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정식 직원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헤아리다 보면 이윤복의 일기 『저 하늘에도 슬픔이』가 떠오른다. 하지만 일기를 하나 하나씩 읽어나가다 보면 스에코의 일기 『니안짱』이 주는 감동이 더욱 크다. 이윤복의 일기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과 이를 헤쳐나가는 꿋꿋한 모습 때문이라면, 스에코의 일기는 자신의 일상뿐 아니라 주위를 바라보는 진실된 눈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스에코가 이윤복보다 특별하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일기를 쓰는 호흡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늘 비슷비슷한 일상이 이어지면서도 빠지는 날이 거의 없이 일기를 쓴 윤복이와 자신의 일상과 주위의 모습을 돌아보며 뭔가 쓸 거리가 있을 때 일기를 쓰는 스에코의 차이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얼마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기 검사가 어린이의 인권 침해라는 의견을 냈던 게 떠오른다. 일기란 개인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누군가에게 검사를 받는다는 건 부당한 일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일기의 필요성을 모르고, 일기 쓰는 법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약간의 지도는 필요하리라 여겨진다. 문제는 일기가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일기를 썼는지, 안 썼는지 확인하는 용도로 전락하는 일이다. 일기에 아이의 진실된 마음이 얼마만큼 담겨 있는가 보다는 정해진 만큼 일기를 썼는지, 또 문제 있는 내용은 없는지만을 확인하는 현실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에 따라서 심한 경우는 자기만 보는 일기장과 선생님한테 검사받는 일기장을 따로 관리한다는 웃지 못할 말까지도 들려오곤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스에코도 선생님에게 일기 검사를 받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검사 때문에 일기를 쓰지는 않는다. 그래서 스에코는 담임 선생님에 대한 불만도 솔직하게 일기장에 털어놓을 수 있었다.
오늘은 학교에 갔지는 공부는 조금도 하지 못했습니다.
……
“너희들의 듣기 평가가 전교에서 가장 나쁘다. 너희들 같은 바보는 공부할 필요가 없으니까 책가방 싸 들고 집에 가!”
하며 대단히 화를 내셨습니다.
“야단맞는 게 싫으면 학교에 안 와도 좋다!”
……
그런데 선생님은 어제부터 왜 기분이 나쁘신 걸까요? 우리는 공부를 하러 왔는데, 왜 가르쳐 주시지 않는 걸까요?(60쪽)
스에코의 일기를 읽다 보면 선생님이 화를 낸 까닭, 그리고 스스로 화를 못 풀고, 그 책임을 아이들에게 전가시키고 있는 선생님의 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비록 스에코 자신은 선생님이 왜 화를 내시는 건지 어리둥절하기만 할 지라도 글 속에 이미 진실은 있는 셈이다. 아마 일기 검사를 한 선생님은 스에코의 일기를 보고 자신의 모습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선생님은 스에코의 일기를 보고도 이 일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다. 대신 스에코의 일기를 보고 감동했다는 것, 하루하루 올바르고 씩씩하게 살아가길 바란다는 글을 보낸다. 완벽한 선생님은 아닐지라도 아이와 일기를 검사의 대상이 아닌,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선생님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일기란 개인의 기록이 담긴 개인사이자 개인을 둘러싼 사회의 소소한 일상까지를 엿볼 수 있는 사회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개인의 삶이 사회와는 떨어져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이 제목인 ‘니안짱’도 마찬가지다. ‘니안짱’은 우리 말로 옮기면 ‘작은오빠’라는 뜻이라고 한다. 하지만 흔히 쓰는 일본어가 아니라 스에코의 집에서만 사용했던 말이라고 한다. 스에코가 작은 오빠를 이름으로 부르니까, 아버지가 ‘니안짱’이라고 부르도록 했다고 한다. 일본에는 형제간도 분명한 질서가 있는 우리와는 다른 문화가 있음을 짐작케 한다. 더불어 우리 말로 ‘작은 오빠’라 부르지도 못하고, 또 이름으로 부르지도 못하고 애매한 호칭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 고단한 재일교포의 한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여기에 자신의 감정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결코 흥분하지 않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스에코의 서술 방식은 당시의 사회 분위기와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스에코 사남매의 삶을 더욱 선명하게 그려낼수 있게 해 준다.
‘동맹파업은 나의 커다란 적’이라고 분명히 선언을 하면서도 현실에 대한 막연한 분노만 터트리지 않는다. 동맹파업을 하면 일을 못해서 돈이 안 나오고, 정식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노조에서 돈을 빌릴 수도 없기 때문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래서 어느 쪽이 맞고 틀리고를 따지기 이전에 상황을 먼저 이해하고, 그 상황에 놓인 스에코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때론 태양이 남긴 흔적에 황홀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빨래가 잘 마르지 않을 것을 생각하며 태양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복합적인 마음을 표현하면서도 현실에서 달아나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된다.
어린 아이의 일기글이지만 어른 작가들의 작품 보다 훨씬 더 진한 뭉클함이 번져온다. 스에코가 살던 때, 살던 곳의 모습, 그리고 사남매의 모습이 겹쳐온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간으로 펴내는 《기획회의》33호(2005년 11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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