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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관련/외국 동화

바람을 닮은 아이

by 오른발왼발 2021.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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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과 소통하고 공존하기

《바람을 닮은 아이》(오카 슈조 글/웅진주니어)

 

 

책을 읽다보면 단 한 편의 작품만으로 작가의 이름을 되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그 작가의 다음 작품을 애타게 기다리게 된다.
오카 슈조. 내가 오카 슈조 이름을 기억하게 된 건 2002년 가을, 『우리 누나』를 읽고 나서였다. 오카 슈조의 『우리 누나』는 지금까지 보아왔던 장애인을 다룬 다른 작품들과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장애인에 대해 측은한 마음을 갖는다거나 혹은 장애인을 돌보는 사람과 괴롭히는 사람간의 대립 구도……, 이런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대신 장애인과 주위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오카 슈조의 두 번째 작품은 2004년 가을에 나온 《나는 입으로 걷는다》였다. 입으로 걷다니? 호기심을 자아내는 제목이다. 이 책의 주인공 다치바다는 걷지도 못하고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한다. 그런 다치바다가 혼자서 친구 집에 간다. 특별히 만든 침대차에 누워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밀어달라 부탁을 해서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은 결코 움직이기 위해 도움을 받는 과정만이 아니었다. 다치바다가 세상 사람들과 만나는 통로이기도 했다. 이런 저런 사람들과 만나면서 세상을 배우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상대에게 위안을 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올해 초 오카 슈조의 세 번째 작품인 『바람을 닮은 아이』를 만났다. 이 책은 『우리 누나』 이후에 쓴 작품 가운데 골라 엮은 것이라고 한다.
이 책에는 모두 다섯 편의 작품이 들어있다.

「가족」은 가장 기본단위라 할 수 있는 가족 속에서 장애를 지닌 아이의 현실을 보여준다. 특수학교 중등부에 다니는, 지능이 좀 떨어지는 지로가 사라진다. 처음엔 단순한 행방불명이라 여겼지만 지로의 세 가지 보물인 오래된 앨범과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진 수건, 곰 인형이 함께 사라지자 가출한 게 아닐까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치로 형과 화자인 '나'가 지로를 어떻게 학대해 왔는가를 고백한다. 형은 공부 때문에 마음이 불안해지면 언제나 지로를 때렸고, '나' 역시 형인 지로와 한 방을 쓰면서 지로에게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회사가 바쁘다는 이유로 집에서 함께 하지 못하는 아빠, 뭐든지 책임을 지로에게 떠넘기는데 익숙한 형 이치로, 지로를 형처럼 여기지 않는 '나'. 지로의 가출을 계기로 가족간의 문제는 도드라져 나타난다. 지로가 발견된 건 이미 5-6년 전 살았던 먼 옛날 집이다. 그곳에서 지로는 앨범을 펼쳐놓고, 곰을 안고, 옛날 가족들이랑 즐겁게 놀던 때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장애를 지닌 지로가 힘들었던 건 장애 그 자체보다는 가족간의 소통이 단절되어 가는 현실인 셈이다. 그리고 이 점은 지로뿐 아니라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달빛 아래서」는 몸집은 크지만 말을 못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는 이와의 이야기다. 이와는 날품을 팔아 먹고사는데, 사람들은 일을 많이 시키고도 품삯은 절반도 주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모리야마 아저씨가 나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리야마 아저씨가 전쟁 때 소련군에 포로로 붙잡힌 뒤 빨갱이가 되어 돌아왔다며 전염병에 걸린 사람 마냥 취급하곤 한다. 특정한 사람에 대한 편견이 집단에게 어떻게 희생당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바람을 닮은 아이」의 주인공 다다시는 초록 바람이 불 때면 무작정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집이며 학교에서 난리가 나는 건 알지 못한다. 그저 바람 같은 아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하느님, 있습니까?" 다다시가 문득 문득 내뱉는 말이다. 어머니가 날마다 감실에서 다다시가 좋아지게 하느님께 기도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난 뒤부터 다다시는 감실을 들여다보며 이 말을 입버릇처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마 다다시에게 하느님이 있다는 믿음은 절박함 속에서 희망을 찾는 일이었을 거다. 용수로에 머리를 부딪쳐 정신을 잃은 다다시를 집에 데려온 건 말도 못 하고 글자도 모르는 다케였다. 다다시는 어쩐지 지금까지 만난 사람과는 다른 다케를 보고 말한다. "하느님?" "하느님 나라?" 다다시는 다케에게 하느님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다. 말은 안 해도 손과 얼굴 표정만으로도 둘은 말하고자 하는 걸 모두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안해 뎃짱」은 덩치는 크지만 어리숙한 뎃짱을 장난 삼아 놀리고 괴롭히는 아이들 이야기다. 어찌 보면 우리 주위에서도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 아이들은 장애아를 괴롭히긴 하지만 의도적으로 그러는 건 아니다. 그러기에 서로 화해할 여지는 늘 남아있다. 아이들은 뎃짱을 데리고 장난 삼아 강가에 가는데, 그만 불상처럼 꼼짝 않고 앉아만 있는 뎃짱을 잊고 그냥 돌아온다. 뎃짱은 꼼짝없이 앉아 있다가 파리매에게 물려 살갗이 부풀어오른다.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은 뎃짱에게 사과를 하는데, 뎃짱의 재미있었다는 말 한 마디에 이들은 친구가 된다.

「휠체어와 빨간 자동차」는 허름한 연립주택에 이사온 장애인인 다치바나를 둘러싼 어른들의 허위의식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처음엔 장애인이 이사온 거에 대해 꺼림칙하게 여기는 이웃 사람들에게도 화를 내던 엄마도 다치바다에게 빨간 자동차가 생기고 나서는 태도가 달라진다. 자동차 갖는 걸 희망하던 아빠는 더더욱 그렇다. 자기 보다 못한 사람이고 그래서 친절하게 보살펴줘야 할 대상이라고 여기고 있을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막상 다치바다가 자신들은 갖지 못한 자동차를 갖게 되자 태도가 바뀌고 만다.
다치바다에게 한결같이 친절한 건 사람들이 무시하고 따돌리는 '밤의 여자'와 '나'뿐이다. 그러고 보니 이 책에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장애인에게 열린 마음을 갖고 진정으로 소통하며 함께 관계를 맺어나가는 사람들은 대개는 비슷한 이유로 사람들의 편견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다. 「달빛 아래서」에서는 빨갱이로 낙인찍힌 모리야마 아저씨고, 「바람을 닮은 아이」에서는 말도 못하고 글씨도 모르는 다케였고, 「휠체어와 빨간 자동차」에서는 이름도 모른 채 '밤의 여자'로 불리는 사람이다. 이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소통하며 함께 살아가기 어렵지만, 그렇기에 보통 사람들과 소통을 못하고 사는 장애인들과 오히려 쉽게 소통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결코 장애인 이야기만은 아니다. 오히려 장애인 주인공을 통해 우리에게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 이 글은 2005년 2월 20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펴내는 격주간지《기획회의》 15호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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