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없는 세상을 꿈꾸다
《UFO를 따라간 외계인》(서하원 글/문학동네어린이/2005년/절판)
어렸을 때 열심히 보던 잡지 탓인지, UFO나 외계인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어선지, 제목에 일단 관심이 쏠렸던 책이다. 제목에서 내용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았기에 더욱 그랬다. 게다가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점도 한몫 했고.
하지만 아쉽게도 앞부분에서는 조금 실망스럽다는 느낌을 감추기 어려웠다. 주요 등장인물과 그 성격을 앞부분에서 너무 단선적으로 다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또 ‘나무들도 방학을 맞아 기쁜 우리 마음을 아는 모양이었다’, ‘똑같은 모양의 2층 단독주택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는 이 골목길은 언제 보아도 엄마 품처럼 정겨웠다. 나와 친구들을 키워 준 곳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와 같은 몇몇 문장은 눈에 거슬리기도 했다. 글의 내용과 연관성도 없고 작가의 관념에서 나온 표현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보통 첫부분에서 이런 느낌을 받으면 대개는 뒷부분까지 그 느낌이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책은 이상하게도 읽어가면 갈수록 이야기 속에 빠지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이 책을 이끌어가는 큰 축은 외계인이라 불리는 선생님과 다운증후군에 심장병까지 있는 달맛, 그리고 슬범이다. 달맛이 장애우라는 점에서, 또 슬범이는 달맛 때문에 괴로워하고, 그래서 달맛을 괴롭히지만 결국 달맛을 이해하게 된다는 점에서 장애우에 관한 책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그저 이렇게만 보고 넘어간다면 그건 이 책의 일면만을 바라본 거라 할 수 있다.
물론 달맛과 슬범이의 관계가 이 책의 가장 핵심이라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외계인 같은 선생님을 끌어들이면서 단순한 장애우 문제가 아니라 달맛이든 선생님이든 우리가 낯설게 느끼는, 이른바 ‘외계인’ 같은 사람들과의 교감과 소통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로 확대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매개로 사용하고 있는 건 말할 것도 없이 UFO와 외계인이다. 여기서 문득 문선이의 『내 친구 고슴도치』(푸른숲)가 떠오른다. 『내 친구 고슴도치』에서도 외계를 믿는 두 아이가 나온다. 손가락이 하나 부족해 놀림을 받는 서린이는 외계에는 자신처럼 손가락이 네 개인 외계인들도 살거라 믿고, 술을 마시기만하면 두들겨 패는 아버지를 둔 가영이는 아버지가 술을 마실 때 나쁜 외계인이 들어와 아빠를 조정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상황은 다르지만 두 작품 모두 ‘외계인’이 갖는 이미지는 같다. 우리가 흔히 정상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달맛이나 서린이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장애가 있는 경우는 물론이고 선생님이나 가영이 아빠처럼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스스로 외계를 꿈꾸는 경우 그건 일종의 탈출구다.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서는 외계인이지만 자신이 꿈꾸는 외계에서는 정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이 책의 제목을 ‘UFO를 따라간 외계인’이라 붙인 것도 이런 뜻이 아니었을까 싶어진다. 이런 점에서 UFO는 외계인 취급을 받는 사람 없이 모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소통하면서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세계를 향해 가게 해 주는 통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처음부터 외계인 선생님의 모습과 함께 이 동네에 나타났다는 UFO까지 들먹이며 한바탕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증거라도 대듯이 선생님은 줄리아별에서 살 때 사랑하던 안드라메종이 죽자 그 다리 뼈로 만들었다는 ‘반수리’를 불어보이기도 하고, 밤에 반수리를 불면 UFO가 나타난다고도 하고, 줄리아별에서 자신이 훔친 보석이 무엇인지 알아내라는 문제를 내주기도 한다. 이런 설정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야기의 주요한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여기에 슬범이한테 3년 전부터 이메일로 날아오곤 하는 미하일의 동시 역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3년 전은 달맛이 슬범이 집에 이사를 온 때이기도 하다. 그리고 슬범이와 달맛의 관계를 암시하는 듯한 동시는 미하일이 슬범이 주변의 인물이라는 심증을 갖게 한다. 또한 미하일의 편지와 함께 변해가는 슬범이의 모습을 보며 그 존재를 추리해 나가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이런 점은 이 책이 독자를 잡아 끄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칫 교훈적으로 흐를 수 있는 주제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잡아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히 외계인 선생님이 강조하듯이 전체적으로는 ‘사랑’을 강조하면서도 안드라메종, 줄리아 별의 보석, 슬범이가 달맛에게 다가가는 모습의 변화 등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사랑에 대해서, 또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 여러 관점에서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은 슬범이 일인칭 글이다. 일인칭 글은 화자의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최대의 장점일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일인칭 서술을 통해 슬범이가 달맛에게 다가가는 과정을 일관성과 설득력 있게 잘 보여주고 있다.
슬범이가 처음부터 달맛을 지능도 없고 감정도 없고 느낌도 없는 아이 취급을 하며 때리고 괴롭히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달맛이 슬범이네 옥탑방으로 이사온 순간, 슬범이 발에는 무거운 쇠사슬이 채워진 거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달맛의 엄마 아빠는 다운증후군에 심장병까지 있는 달맛을 집안에 두고 식당으로, 아파트 공사장으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달맛은 늘 슬범이 차지다. 이런 상황에서는 도덕적으로 달맛을 보살펴야한다고 백날 이야기하고 슬범이 그걸 또 인정한다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때문에 “세상 모든 게 자유로운데 나는 발목에 무거운 쇠사슬을 친친 감고 있는 기분이었다. 모든 게 달맛 때문이었다.(35쪽)”는 슬범의 고백은 읽는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어느새 슬범이가 되어 미하일의 동시를 보고 깜짝 놀라고 누가 미하일인지를 찾아나서게 된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슬범이의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다 보니 정작 이 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미하일의 존재에 대해 너무 약하게 다뤄지고 만 것이다. 시조 엄마에 대해 의심을 품어보기도 하고 결국 시조 엄마로 결론이 나기는 하지만 실재로 시조 엄마가 어떻게 미하일이 되었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전혀 없다. 어떤 면에서 뜬금없다고 여겨질만큼 말이다.
그러나 슬범이와 달맛과 선생님을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이 책의 구성, 화자인 슬범이의 내면과 변화 모습, 단순한 주제 의식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한 문제로 승화시켜낸 과정은 이 작품만의 장점이자 매력으로 남을 것이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간으로 펴내는 《기획회의》29호(2005년 9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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