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아라!
《플루토 비밀 결사대》(한정기 글/비룡소/2005년)
“어디다 숨겨 놨노?”
어라? 첫 시작 문장이 어째 심상치 않다. 사투리 냄새가 난다. 아, 이렇게 사투리가 나오는 작품이 있었나? 생각해 보니 지난 해 나온 『강마을에 한번 와 볼라요?』(고재은 글/문학동네어린이)가 그랬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전라도 사투리로 쓰여 있었다. ‘성실 어매’가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으로 강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 책이다. 그래서 사투리가 좀 생소하긴 해도 마치 옆에서 이야기를 듣는 듯한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이 책 역시 첫 문장부터 사투리다. 하지만 좀 다르다. 일단은 이번엔 전라도 사투리가 아니라 경상도 사투리고, 사투리는 대화 글에서만 나온다. 『강마을에 한번 와 볼라요?』와는 다른 3인칭 서술 방식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그 동안 천편일률적으로 표준말로만 쓰여진 글들은 정말 비현실적이었다. 등장인물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이 어느 곳이건 상관없이 완벽한 표준말을 구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린이 책은 아니지만 사투리 맛이 잘 살아있다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도 양반들은 사투리에서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똑같다. 경기도 이천에서 전학을 온 금숙이만 표준말을 쓸 뿐, 이 책의 배경인 기장에서 태어나고 자란 모든 인물들은 그곳의 말을 사용한다.
이 책은 경상남도 기장을 배경으로 다섯 명의 아이들이 살인 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이른바 추리소설이다. 에드가 앨런 포의 추리소설 『검은 고양이』에 나오는 고양이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제목 『플루토 비밀 결사대』에서부터 비밀스러움이 묻어난다.
플루토 비밀 결사대원은 단짝 친구 동영이와 우진이, 그리고 금숙이다. 금숙이는 새로 전학온 여자아이지만 동영이 생일잔치를 계기로 동영이, 우진이의 비밀 아지트까지 가게 되고, 플루토 비밀 결사대를 만들고 살인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인물이다. 그리고 여기에 우진이 동생 서진이와 한빛이가 결합한다. 한빛이는 우진이와 같은 학년이지만 눈이 너무 나쁜 탓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집에서 망원경으로 동네를 관찰하거나 밤에 별자리를 관찰하는 걸 즐긴다. 플루토 비밀 결사대원이 아닌 서진이와 한빛이가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건 살인 사건이 일어난 날 한빛이가 망원경으로 사건이 일어난 컨테이너에서 나온 사람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진이는 우진이의 동생이자 한빛이의 특별한 친구로써 함께 한다.
다섯 명이 결합해 나가는 과정은 대체로 자연스럽다. 하지만 동영이와 우진이가 단짝 친구인데 반해 사건을 주도해 나가는 금숙이의 경우는 조금 과장되어 보이기도 한다. 전학 온지 얼마 되지 않아 동영이 생일 잔치에 왔다가 동영이와 우진이 둘만의 비밀 아지트에 가게 되고, 또 비밀 아지트에 다녀오자마자 ‘플루토 비밀 결사대’를 만들어 두 아이를 리드해 나간다. 또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 아침부터 화장실 소변기를 한빛이 혼자서 청소를 하고 있는 설정도 어색하다. 하지만 사건이 터지기 전에 이 다섯 명의 인물이 하나씩 결합해 가는 과정에서 각각의 인물은 그 성격이 아주 분명하게 부각되고 있다. 덕분에 다섯 명은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플루토 비밀 결사대원’으로 집단적 이미지와 함께 각각이 개성이 넘치는 인물로 살아있다.
사건은 부산 울산 간 고속도로 공사 현장인 기장읍에서 옛 가마터가 발견되면서 시작한다. 이 가마터에서는 국보급 도자기가 대량으로 출토되었는데, 고속도로 현장에서 굴착기사로 일하다 이 가마터를 발견한 도삼식이 컨테이너에서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한빛이가 망원경으로 목격한 내용이 결정적 단서다. 한빛이는 그 동안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던 컨테이너에 한 사람이 자루를 들고 들락거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저씨가 우랑우탄같이 생긴 사람과 함께 컨테이너에 들어간 뒤 그 아저씨는 나오지 않고 우랑우탄같이 생긴 사람만 밖으로 나오는 걸 확인한다. 당시는 그게 무얼 뜻하는지 몰랐지만 다음 날인 멸치 축제 전야제 때 플로투 비밀 결사대 이야기를 통해 바로 그 날 컨테이너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늘 컨테이너에 드나들던 사람이 바로 도삼식이라는 걸 알게 된다.
여기에 단서 하나가 더해진다. 우랑우탄같이 생긴 사람이 바로 유물을 조사하러 온 현장 주임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이 사건이 도자기 유물과 관련이 있고, 범인이 현장 주임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경찰에 알리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일단 증거 확보에 나선다.
이때부터 아이들은 진짜 탐정처럼 행동한다. 현장 주임이 묵고 있는 궁전호텔에 몰래 잠입해 의문의 메모지를 사진기로 찍어 나오는 담대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그 메모지의 비밀을 풀기에 몰두하기도 한다. 또 현장 주임의 뒤를 미행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모두 다 제 몫을 해낸다. 심지어 한빛이가 키우는 이구아나 반니까지도. 아이들은 현장 주임을 미행해 산성에 올라가는데, 중간에 우진이는 혼자 남아 짐을 지키다 현장 주임에게 들켜 감나무에 올라간다. 이때 반니는 감나무에 따라 올라와 우진이를 잡으려는 현장 주임의 얼굴에 달라붙고 덕분에 현장 주임은 나무에서 떨어지고 만 것이다.
이 책은 우리 어린이 책에서 흔치 않은 추리소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용의자가 단 한 명뿐이고, 별다른 반전이 없어 좀 단순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논리적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작품이다. 추리소설하면 흔히 괴도 루팡이나 셜록 홈즈가 떠오르가나 혹은 추리소설에 빠져 있는 금숙이가 읽었다는 애거서 크리스티,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이 떠오르기 쉽상이다. 하지만 이 책은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아이들이 스스로 추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가슴을 졸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나름대로 추리를 해나가기도 하며 읽게 만든다. 여기에 다섯 명의 아이들의 생활과 심리가 가미되면서 이야기는 더욱 현실감 있게 느껴진다. 게다가 첫머리에 말한 것처럼 이 지역의 사투리와 멸치 축제 장면은 작품을 더욱 맛깔스럽게 만들었고 말이다.
* <플루토 비밀결사대>는 이후 5권까지 나와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간으로 펴내는 《기획회의》25호(2005년 7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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