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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관련/우리창작

내 친구 고슴도치

by 오른발왼발 2021.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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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를 꿈꾸는 아이

《내 친구 고슴도치》(문선이 글/푸른숲/2004년/절판)

 

 

고슴도치가 등에 가시를 세우고 몸을 둥글게 마는 건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다. 고슴도치가 가시를 세우는 건 상대를 공격하려는 게 아니다. 그저 위기의 순간, 상대가 자신을 건들이지 못하게 방어를 할뿐이다.
이 책의 주인공 서린이는 바로 이런 아이다. 서린이는 아버지에게 맞아서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엄마도 아버지에게 매를 너무 맞는 바람에 집을 나갔다고 한다. 그 뒤로 아버지는 서린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서린이를 때리는 건 술을 마셨을 때뿐이다.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 아버지는 너무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서린이는 이런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는다. 대신 이 모든 원인을 나쁜 외계인 탓이라 말한다. 나쁜 외계인이 술을 만들어 취하게 하고서 아버지 행세를 하는 거라고, 그래서 아버지가 술이 깨고 나면 외계인도 나가버려서 아버지는 하나도 기억을 하지 못 한다고 한다. 엄마도 나쁜 외계인한테 끌려갔단다. 엄마가 아버지를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게 하려고 돈 벌러 갔기 때문이란다.
서린이 처지가 이렇다 보니 서린이는 늘 외톨이다. 가끔 얼굴에 멍도 있고,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하고, 준비물도 챙겨오지 못한다. 급식을 탈 때면 친구들이 급식을 다 타고 난 뒤에야 나가서 남아있는 밥을 여유 있게 담아 가지고 와서 먹는다. 서린이의 사정을 모른 채 이런 겉모습만을 바라보는 아이들에게 이런 모습은 낯설고 어색하다. 서린이 또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가시를 세워 말한다. 유치원 때부터 친구였다던 종혁이, 귀대하고도 멀어진다. 특히 귀대하고는 형편이 달라지자 생각하는 것부터 모든 게 달라져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종혁이는 서린이를 위해서 신고를 하고 보호를 받을 것을 권하지만 서린이는 그것조차 받아들이기 어렵다. 예전에 엄마가 죽도록 맞고 아버지가 경찰서에 갔을 때도 아버지는 바로 나왔고, 엄마는 더 맞았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가영이는 이런 서린이와 친구가 된다. 가영이는 이 책의 화자다. 가영이는 서린이네 아래층에 산다. 가영이가 서린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아래층 위층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가영이네가 새로 이사한 집의 위층에서는 밤이면 싸우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에 고함 소리, 때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가영이는 엄마 미장원에서 동네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통해 위층에서 맞고 사는 아이가 서린이란 걸 알게 된다.
하지만 이것만이었으면 둘은 친구가 못 되었을지도 모른다. 둘 사이에는 정말 중요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두 아이 모두 외계를 믿는다는 점이다. 서린이는 아빠가 술을 마실 때마다 나쁜 외계인이 들어오는 거라고 믿고 있고, 가영이는 남들보다 손가락 하나가 부족해 괴물이라는 놀림을 받기 때문에 외계를 꿈꾼다. 우주는 넓어서 다르게 생긴 외계인이 모여 살고, 우주에는 손가락이 네 개인 외계인들만 모여 사는 별도 틀림없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서로의 공통점을 알기 이전엔 두 아이 역시 서로를 경계할 뿐이었다. 가영이가 친구들의 괴롭힘에 도망쳐간 성당에서 두 아이는 만난다. 가영이는 서린이를 아는 척 하는 마음에
“있지, 너 우리 아파트에….”
하고 말을 꺼내지만 서린이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면서 이렇게 말한다.
“난 혼자서도 잘 지내.”
순간 가영이 가슴은 자기를 놀리던 말이 후비고 지나간다.
‘손가락 병신이 까불고 있어…….’
가영이는 자신을 구해준 서린이에게 아는 척을 하고 싶었던 거지만 서린이 입장에서는 감추고 싶은 자신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보호하듯 내뱉은 말이 가영이에겐 서린이 역시 손가락 병신인 자신과는 아는 척하지 않겠다는 뜻 정도로 느껴졌을 테고 말이다.
하지만 서린이 사정을 알게 된 가영이는 서린이를 훔쳐보듯 관찰하게 되고 서린이가 또다시 아빠한테 매맞고 도망쳐 나온 날 서린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가 된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한편으론 하나의 공통점으로 모아지는 외계에 대해서 확인하는 것도 이때다. 두 아이에게 외계란 현실의 고통을 회피할 수 있는 안식처와 같은 것이다.
불안정한  현실을 나쁜 외계인 때문이라 여기고 온갖 상상을 펼치는 서린에게 가영이는 나중에 다른 별에 갈 때 자신도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나도 정말 가고 싶은데. 너 없어지면 난 또……  그럼 또 혼자잖아…….”
이렇게 해서 가영이는 늘 가시를 세운 듯이 날이 서있는 서린이를 이해하고, 서린이는 지금까지 엄마 아빠 외에는 아무도 잡아주지 않던 손을 잡아주면서 우정을 쌓아간다.

그러나 가영이의 손가락은 가영이가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서린이의 상황은 누군가 어른의 도움이 꼭 필요한 것이다. 그 도움은 아버지가 알콜중독을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 과정이 ‘신고’라는 형태를 띄게 되고, 이미 부조리를 경험한 서린이는 이를 한사코 거부한다. 그리고 서린이는 보건 선생님이 신고를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이렇게 외친다.
“아버지 없이 저 혼자서 어떻게 살아요? 이젠 엄마도 없는데 어떻게 살라는 거냐구요?”
“너, 너무 무섭단 말이에요. 이젠 엄마도 없는데 나 혼자 어떡해요?”
서린이가 진심으로 무서워했던 게 무엇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제 겨우 4학년이 된 서린이에게 혼자 남겨진다는 건 매 맞고 사는 것보다 훨씬 큰 공포였던 것이다.
결국 서린이 아버지는 알콜중독 치료를 받으러 가고, 서린이는 한 달간 보호시설로 들어간다. 이제야 서린이를 이해하게 된 아이들은 서린이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어찌 보면 가장 현실적인 결말이고, 해피앤딩이다. 가영이도 자신감을 되찾아서 아이들의 놀림에도 끄덕하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럽다. 앞서 나쁜 외계인과 싸우느라 늘 지쳐있던 서린이의 세계를 함께 느끼고 분노를 하던 감정을 추스리기도 전에 모든 게 상황 종료가 된 느낌이다.
작가 문선이는 그 동안 사회에서 이슈가 되는 문제들을 소재로 많은 책을 써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꼼꼼한 취재를 통해 아이들의 세계를 그려냈다. 아쉬웠던 점은 결말이 늘 너무 현실적이라는 것이었다. 취재를 통해 확인한 현실의 결말은 이렇겠지만 너무 이 결말을 단정해버린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결말을 너무 단순화해서 보여주고 마는 건 아닐까 싶다.
하지만 현실의 문제에 진지하게 다가가려는 모습, 그리고 아이들의 세계를 그들의 눈높이에서 보여주는 작가의 역량은 정말 높이 평가하고 싶다. 다음엔 어떤 주제로 어떻게 찾아올 것인지 궁금하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간으로 펴내는 《기획회의》23호(2005년 6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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