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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관련/우리창작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

by 오른발왼발 2021.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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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홀로 서기를 시작하다!

《엄마의 마흔번째 생일》(최나미 글/청년사/2005년/절판)
《엄마의 마흔번째 생일》(최나미 글/사계절/2017년)

 

 

이 책을 보는 내내 나는 나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가족들 사이에서의 나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물론 나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부양해야할 처지도 아니고, 가영이 아빠처럼 자기만 아는 늦동이 외아들 남편을 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남편은 그럭저럭 내 일을 잘 도와주는 편이고, 7살 딸아이는 말썽을 부리기 보다는 엄마 일을 열심히 도와주는 편이다. 그러고 보면 가영이 엄마와 내 처지는 꽤 차이가 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영이 엄마의 모습에 내 모습이 겹쳐진다. 아니, 마치 가영이 엄마의 모습이 마치 내 처지인양 느껴진다. 그건 누구나 조금씩 처지가 다르긴 해도 엄마로서, 여자로서 갖는 공통의 문제의식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내 나이 마흔 하나. 만 나이로 마흔. 가영 엄마와 동갑이라는 연대의식이 있음은 당연하다.

엄마의 반란

이야기는 처음부터 갈등을 안고 시작한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술을 마시고 한바탕 난리가 난다. 큰고모는 할머니가 떼를 쓰면 몰래 술을 사오고, 할머니가 취하면 걱정되어 엄마한테 전화를 하고, 엄마가 일하다 말고 서둘러 돌아오면 슬그머니 도망치곤 한다.
이 혼란이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그런데 의외로 가영이의 입에서 쉽게 대답이 나온다.

“이건 모두 엄마 때문이야. 엄마가 집에 있으면 아무 일도 없잖아.”

이게 어찌된 일일까? 이 모든 일이 엄마 때문이라니!
사정은 이렇다. 엄마는 마흔 번째 생일날 전공을 살려서 화실에 나가 일을 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할머니 병 때문에 아빠랑 심하게 다툰지 한 달쯤 뒤의 일이다.

“정신이 있어? 어머니가 저렇게 아픈데 직장을 나가겠다니…….”

아빠의 반응이다. 가영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할머니 병이 점점 심해지는 이때 무턱대고 직장에 나가겠다는 엄마가 어쩐지 좋아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엄마의 선택은 문제가 있었던 걸까?
엄마는 말한다. 어머니가 편찮으시기 때문에 더욱 일을 하고 싶다고. 이다음에 어머니처럼 마음의 병으로 지난 일들을 원망하며 살고 싶지 않다고. 자신이 집에 있는다고 낫는 병도 아니고, 지금이 아니면 그림을 그릴 기회도 없을 것 같다고. 그리고 엄마는 당번을 정해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고모들이 번갈아 오고, 자신은 저녁에, 남편은 주말에 어머니를 보살피자고 한다.
그럼 이쯤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이제 집안 사정도 대충 짐작이 될 테니 말이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중3과 초등학교 6학년 딸을 둔 엄마는 자신의 일을 가지면 안되는가! 물론 쉽지 않은 결정이다. 엄마 말대로 엄마가 집에 있는다고 해서 할머니 병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고모들도 자식인 이상 어머니를 부양할 의무가 있고, 두 딸은 기본적인 앞가림은 스스로 할 나이가 됐다. 엄마가 결혼 뒤 쭉 집안을 돌보기만 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가족들의 반응을 볼 때 엄마가 엄마의 일을 갖는 건 이번이 처음인 듯 하다. 그렇다면 엄마의 말대로 엄마가 자신의 일을 갖는 건 환영할만한 일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현실의 상황은 결코 녹록치가 않다. 흔한 말로 엄마는 ‘집사람’이다. 엄마는 가족들에게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만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가영이 엄마처럼 새롭게 직장을 갖는 경우가 아니라 처음부터 맞벌이를 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집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은 모두 엄마의 책임으로 떨어지곤 한다. 그러니 이처럼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두고 새로 일을 시작한다고 할 때, 엄마가 집에 있어봤자 달라지는 게 없다 하더라도 일단 그 책임을 엄마에게 돌리고 싶어한다. 그래야 나중에 뭔가 일이 잘못됐다고 여겨지면 핑곗거리라도 생길 테니까. 그리고 그 틈에 다른 가족들은 자기 행동에 대해 정당성을 획득한다. 물론 엄마가 자신들의 할 일을 대신해주고, 그래서 좀더 편해지고 싶은 이기심과 함께 말이다.

엄마라는 존재

가족에게, 특히 아이에게 엄마는 절대적인 존재다. 아이는 태어나서 혼자 설 수 있을 때까지 엄마의 보살핌을 받는다. 하지만 아이가 혼자 서는 시기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게 아니다. 아이는 자라면서 조금씩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내고, 그러면서 마침내 혼자 설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날수록 엄마는 여유를 찾는 게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동화 속의 엄마는 늘 아이에게 얽매어 있다. 아이와 엄마의 사이가 가까운 만큼 자주 등장하는 게 엄마지만, 막상 엄마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엄마의 모습은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그려져 있거나, 아이 공부 때문에 극성을 떨거나, 아이의 원망을 듣지 않기 위해서 노력할 뿐이다. 『빡빡머리 우리 엄마』(박관희, 2005, 낮은산) 정도가 또 다른 엄마의 모습을 보여줬다 할까? 그러나 아쉽게도 이 책은 엄마의 선택 보다는 엄마의 부재로 인한 아이들의 궁핍함 쪽에 무게 중심이 가 있고, 아이들은 엄마의 선택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채 빡빡 깎은 엄마의 머리를 보는 아이의 감성을 자극하는데서 끝나고 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이들이 책을 통해 엄마의 모습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가능성은 별로 없다. 기껏해야 겉으로 드러난 엄마의 모습과 비슷한 모습을 찾으며 엄마의 모습을 고정시켜버리거나, 이상화된 엄마의 모습과 현실의 엄마 모습 사이의 간극 때문에 엄마에 대한 불만만 커질 뿐이다. 하나의 전형처럼 그려진 엄마는 하나의 인격체로 개성도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그저 엄마는 아이의 부속물처럼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엄마의 마흔번째 생일』은 다르다. 일인칭 화자인 주인공 ‘가영’이 엄마를 보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해 자연스럽게 엄마의 현실적인 고민과 가영이 자신의 고민이 서로 교차하며 하나로 이어져 나간다. 엄마의 삶은 결코 엄마만의 삶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때문에 엄마의 문제는  가영이의 문제이고, 동시에 가족의 문제이고, 젠더의 문제로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건다.

가영 - 엄마 - 할머니

이 책은 일인칭 화자인 열세 살 가영이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처음엔 그저 엄마를 원망만 하던 가영이가 결국은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데, 그 엄마에 대한 이해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큰 밑천이 된다는 사실이다. 또 엄마는 할머니한테 머리채를 잡히는 수난과 잔소리를 듣는 과정에서 할머니를 이해하게 되고 결국은 엄마 자신의 삶을 찾아나서게까지 된다. 서로  다른 세대를 살아가는 인물이지만 결국 공통의 문제를 안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소통의 과정은 가영이가 생리를 시작하면서 일어난다. 가영이는 생리 때문에 수영도 못 가고 대신 엄마 심부름으로 엄마가 잊고 온 물건을 갖고 화실 가까이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 간다. 외할머니는 친할머니와는 여러 모로 다르다. 무엇보다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면 양로원에 가려고 혼자 준비를 한다는 점에서 자식에게 기대고 사는 할머니하고는 다르다. 엄마도 외할머니 집에서는 며느리가 아닌 딸로써 또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서 가영이는 엄마의 할머니에 대한 생각과 엄마가 일을 찾게 된 이유를 알게 된다. 어려서는 동생들 뒷바라지만 하다, 시집 와서는 딸만 낳았다고 모진 구박을 받고, 마흔이 다 되어서야 아들을 낳고 조금 허리를 펴기는 했지만 평생을 자신을 위해서 산 시간이 없었기에 그게 평생의 원망과 불평이 되고만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엄마는 누구를 위해 뭘 참거나 희생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방문한 엄마의 화실에서 집에서와는 달리 생기가 넘치는 엄마의 모습을 발견한다. 엄마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할머니를 이해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엄마만의 소중한 삶을 찾은 것이다.
가영이가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건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축구를 못할 수도 있는 위기를 맞게 되면서다. 이번 시합에는 남자 애들만 나가기로 해서 가영이는 시합에 못 나간다는 것이다. 결국 가영이는 호석이와 몸싸움을 하게 되고, 가영이가 축구 시합에 나가는 문제는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의 대결 양상을 띄고 만다. 그런데 선생님은 무조건 화해를 하라고만 하며 가영이한테 말한다. 너만 생각하지 말고 양보하면 우리 반 전체가 다 좋다고. 게다가 가영이가 그렇게 좋아했던 아빠마저 가영이에게 말한다. 아빠가 원하는 건 씩씩한 딸이지 드센 딸이 아니라고. 양보 잘 하는 아이니까 너 때문에 시합을 할 수 없다면 당연히 알아서 빠져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한다.
선생님과 아빠가 가영이에게 한 말은 축구 문제라는 점만 빼면 아빠랑 가족들이 엄마에게 했던 말과 똑같았다. 가영이 역시 엄마가 그랬듯이 변명도 못했다. 이제야 비로소 가영이는 엄마의 처지를 이해한다. 엄마가 곁에 없기 때문에 할머니가 치매에 걸린 게 아닌데도 아빠는 엄마한테 무조건 다른 여자들처럼 살라고 했듯이, 가영이에게도 무조건 축구를 하지말라고 한다. 무조건.

엄마의 자화상

가영이는 처음으로 아빠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종례 시간에 축구 시합 건으로 임시 학급 회의가 열린다. 전날과는 달리 여자애들은 준비한 것처럼 번갈아 자기 의견을 내놓기 시작한다. 결국 시합에 여자들도 함께 나가서 우승보다는 즐겁고 재미있는 추억거리를 만들어보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가영이 입장에서는 그저 억울해서 버틴 것이지만, 다른 여자아이들에겐 희망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의 관계는 쉽게 해결이 안 났다. 몇 번인가 고모들은 엄마한테 전시회를 포기하라 말했고, 아빠는 엄마의 전시회 팸플릿을 본 날 팸플릿을 박박 찢으며 말했다.

“여기가 당신 혼자 사는 집이야? 함께 살려면 규칙과 임무를 당연히 지켜야 한는 거 아냐? 당신처럼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은 여기서 살 자격이 없어.”

그 날 이후 엄마는 집에 들어오지 못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영안실을 찾았다가 아빠에게 봉변을 당하기까지 했다. 결국 엄마 아빠는 당분간 떨어져 지내기로 한다. 아무리 가영이가 엄마 아빠를 이해하고 있다 해도 결코 받아들이기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가영이는 경험을 통해 자신이 살아가야 할 시간이 따로 있음을 배웠기 때문에 무조건 불행하다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엄마 그림 속의 자화상은 화려한 배경에 세 명의 여자가 그려져 있었다. 세 사람은 과거의 엄마, 현재의 엄마, 그리고 미래의 엄마 모습이다. 화려한 배경은 이러한 변화를 만든 시간의 모습이다. 비록 엄마는 가영이처럼 원만한 해결 방법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나’를 찾았기 때문에 ‘미래의 나’에 대해서도 희망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빠와의 원만한 해결까지는 아무래도 시간이 적잖케 걸릴 듯 싶다. 아빠는 할머니가 딸만 다섯을 낳은 뒤 마흔 살이 다 되어서 얻은 귀한 아들이기 때문이다. 아빠 입장에서 볼 때 세상은 늘 아빠를 중심으로 움직여왔을 테고, 이에 반기를 드는 엄마의 모습은 이해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엄마 아빠가 다시 합칠 수 있을지, 아니면 갈라설지 그건 알 수 없다. 또 합치거나 혹은 갈라섰을 때 어느 쪽이 더 행복할 수 있을지 그것 역시 알 수 없다. 그건 이 책의 장점이기도 하다. 괜히 결말을 내지 않고 독자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결말을 열어놨기 때문이다.

 

- 이 글은 월간 《어린이와 문학》 2005년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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