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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관련/외국 동화

<렝켄의 비밀>, <마법의 수프>

by 오른발왼발 2021.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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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엔데의 단편을 읽는 재미

《렝켄의 비밀》,《마법의 수프》(미하엘 엔데 글/유혜자 옮김그림/보물창고)

 

 

미하엘 엔데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작가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인기투표라도 한다면 상위권에 충분히 이름을 올릴 만큼 말이다. 그건 미하엘 엔데를 좋아하는 계층이 어린이는 물론 청소년과 어른까지 골고루 퍼져 있기 때문이다. 미하엘 엔데의  대표작 『모모』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이기는 하지만 우리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철학적 힘과 환상성으로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의 마음까지 휘어잡았다. 물론 이 작품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린 계기는 1978년 전일방송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김만준의 노래 '모모' 덕분이었다.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바늘이다
모모는 방랑자 모모는 외로운 그림자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듯이 날개짓하며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이 꿈꾸는
모모는 환상가
그런데 왜 모모 앞에 있는 생은 행복한가
인간은 사랑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모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난 뒤 그 느낌이 노랫말로 만들어진 경우는 흔치 않다. 아마도 『모모』는 이 노랫말을 직접 쓴 김만준에게 깊은 감동을 줬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김만준이 받은 감동은 노래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자신도 모르게 모모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노래 때문에 책을 보게 되었고, 정신없이 살아갈 때마다 문득문득 모모의 모습이 떠오른다는 사람들도 있다. 고백컨대 나 자신도 '모모'를 따라 부르며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난 뒤에야 『모모』를 읽어봤다. 그리고 『모모』를 읽고 난 뒤에 김만준의 노래 '모모'는 다시 내 입가를 맴돌게 되었다.

요 몇 년간 미하엘 엔데의 작품은 참 많이 번역되었다. 2004년도 예외가 아니었다. 1월에 『미하엘 엔데의 마법학교』가 나오더니, 8월엔 미하엘 엔데 동화전집으로 『렝켄의 비밀』과 『마법의 수프』가 출간되었다. 그리고 12월엔 『기관차 대여행』으로 널리 알려진 그의 등단작품이 『짐 크노프와 기관사 루카스』란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오면서 그 후편인 『짐 크노프와 13인의 해적』도 함께 출간되었다.
모두가 반가운 작품이지만 이 가운데서도 눈길을 끄는 건 『렝켄의 비밀』과 『마법의 수프』다. 여기에는 이미 출간된 여러 작품들이 중복 수록되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느낌으로 미하일 엔데의 작품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중복 수록된 작품은 두 권에 실린 19편의 작품 가운데 「마법학교」, 「조그만 광대 인형」, 「렝켄의 비밀」, 「벌거벗은 코뿔소」, 「마법의 수프」, 「내 곰인형이 되어줄래?」, 「헤르만의 비밀 여행」, 「꿈을 먹는 요정」,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 이렇게 아홉 편이나 된다. 이 가운데 두 편은 번역자마저 같다.
하지만 주로 그림책이나 저학년 동화로 나왔던 이들 작품을 '미하엘 엔데 동화 전집'으로 다시 읽는 맛은 또 다르다. 그건 그림을 뺀, 글로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에도 삽화는 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삽화일 뿐이어서 글을 읽으며 맘껏 상상을 하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미하엘 엔데 작품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현실과 환상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가운데 우리 내면의 세계에 귀를 기울이게끔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이 점을 생각한다면 그림의 영향을 받지 않고 글을 읽으면서 그 속에 빠져들 수 있다는 건 굉장한 매력이다. 미하엘 엔데와 좀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다. 마치 사람들이 모모에게 이야기를 털어놓듯이, 책을 통해 작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고 할까?
그러고 보니 이상하다. 분명 예전에 저학년 동화로 나왔던 이들 미하엘 엔데의 작품을 읽을 땐 진짜 '어린이 책'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같은 작품을 읽는데 이 책으로 보면 경우에 따라 어른들을 위한 책이 되기도 한다. 왜일까? 같은 작품이라도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이유는.
「마법 학교」는 3-4학년 아이들에게는 마치 『해리 포터』의 축소판처럼 느껴지는 작품이다. 하지만 『해리 포터』와는 다른, 한차원 더 높은 마법의 비밀을 알려준다. 여기서 알려주는 마법의 비밀이란 자신의 진정한 소원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언지 모르고 살아가고 그래서 소원을 이룰 수 없는 거란다. 이쯤되면 아이들은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일지 자신의 미래를 꿈꾸며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어른들은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자기 자신을 성찰하게 된다.
「헤르만의 비밀여행」도 마찬가지다. 헤르만은 아이들에게 대리 만족을 주는 존재다. 학교에 가는 길에 온갖 상상을 하느라 학교도 빼먹고 엉뚱한 곳에 다녀오는 헤르만의 모습이야말로 아이들이 한번쯤 꿈꾸던 모습이기 때문이다. 반면 어른들에게는 지나간 어린 시절의 모습을 기억나게 해준다. "그래, 나도 산타 크루즈로 간 적이 있었거든." 집에 돌아온 헤르만을 따뜻하게 맞아준 아버지의 말이다. 어린 시절의 모습을 이해하는 어른들만이 아이들을 이해해줄 수 있는 법이다. 미하엘 엔데의 팬이 어린이로부터 청소년,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고루 퍼져있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우화는 동화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벌거벗은 코뿔소」, 「주름투성이 필레몬」 등이 대표적이다. 동화에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면서 아이들이 하고 싶은 말, 바라는 것들에 대한 욕망을 채워주면서도 은근하게 가야할 바를 알려주었다면 우화에서는 동물들의 입과 행동을 통해서 좀더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그런데 보통 우화에서 말하는 교훈이나 풍자가 지나치게 개인의 도덕이나 처세에 중심이 맞춰져 있는 것과는 달리 미하엘 엔데의 우화는 삶의 기본 태도에 대한 이야기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읽고 나서 다른 우화를 읽고 났을 때처럼 구체적인 행동 하나하나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며 반성을 하게 되는 게 아니라 삶을, 세상을 깊이 생각하게 해 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재미 가운데 하나는 머리말을 대신해서 썼다는 「분명히 밝혀 두자면」이라는 글이다. 머리말 대신이라고는 하지만 이것 자체가 하나의 동화라 할 수 있는데(이렇게 따지자면 두 권의 책에는 모두 20편의 동화가 실린 셈이다) 식구들이 책을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일어나는 갖가지 실수들이 과장스럽게 펼쳐진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실수지만 '얼마나 책이 재미있으면 이랬을까?' 싶다. 이렇게 책에 푹 빠져서 읽는 행복, 이 책을 읽으며 누려보면 어떨까?

 

- 얼마전(2005.4.13) 게시판에 조윤주 님께서 제가 김만준의 노래 '모모'에 대해 잘못 알고 있던 부분에 대한 지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쓴 것처럼 미하엘 엔데의 《모모》가 아니라 에밀 아자르의 책인 《자기 앞의 생》이라고 합니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책 소개글만 봐도 조윤주 님의 지적이 정확하다는 걸 알겠네요. 빨리 책을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번 조윤주 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당연하다고 믿는 것들에 대해서도 늘 다시 한번 생각하고 확인하는 자세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 이 글은 2004년 12월 20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펴내는 격주간지《기획회의》 11호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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