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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책/옛날이야기 공부방

며느리 방귀

by 오른발왼발 2021.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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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쟁이 며느리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

 

 

 

1.

 

뿌부붕붕

부르르르

피용

방귀 소리는 사람마다, 때에 따라 다르다.

방귀 소리마다 느낌도 다르다. 어떤 방귀는 수줍게 비집고 나오는 듯하고, 어떤 방귀는 화살이 날아가듯 하고, 어떤 방귀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우렁차다. 마치 방귀 소리에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숨어 있는 것도 같다.

방귀에는 소리만 있는 게 아니다. 냄새도 있다. 소리는 거의 나지 않고 지독한 냄새만 풍기기도 한다. 이럴 땐 크게 방귀를 뀌었을 때보다 주위 사람들의 눈살이 더 찌푸려진다.

하지만 방귀가 늘 주위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 아니다. 방귀는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소재다. 여러 사람 앞에서 방귀를 뀐 사람은 쥐구멍에라도 숨어들고 싶지만, 그걸 보는 사람들에겐 웃음을 주기도 한다.

방귀는 모든 사람에게 꼭 필요하지만 조금은 비밀스럽고, 예의를 차려야 하고, 하지만 시원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그래서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되곤 한다. 《비밀스럽고 품격 있는 방귀 사전》(노란돼지), 《방귀 대백과》(상상의집)과 같은 책들이 나온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2.

 

옛날이야기에는 방귀 이야기가 여럿 전한다. 그 가운데 ‘며느리 방귀’는 맘껏 방귀를 뀌던 색시가 시집을 오면서 방귀를 못 뀌어서 얼굴이 누렇게 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방귀를 뀐다. 방귀란 우리가 소화를 시키는 과정에서 생긴 가스가 항문을 통과해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스는 우리 대장 속에 있는 세균의 활동으로 생긴다. 발효식품이 발효될 때 뽀글뽀글 가스가 올라오는 것과 비슷하다. 이때 가스가 완전히 새어 나가지 못하게 뚜껑을 꽉 닫아놓으면 ‘펑’하고 터지기도 한다. 방귀도 마찬가지다. 소화 과정에서 생긴 가스가 작은 구멍으로 한꺼번에 배출되면서 항문 주변의 피부가 떨리며 다양한 소리를 낸다. 배출되는 가스의 양이 많고 압력이 높은 경우 소리가 크게 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방귀는 꼭 뀌어야만 한다. 방귀를 못 뀌면 병이 난다. 수술을 하고 난 뒤 방귀를 뀌지 못하면 밥을 먹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듯 사람이라면 누구나 뀔 수밖에 없던 방귀를 뀌지 못했던 건 시집살이가 그만큼 조심스러웠다는 뜻일 거다. 다행히 시아버지가 낯빛이 안 좋아진 며느리를 알아채고 사정을 묻는다. 그리고 방귀를 뀌라고 한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말이 딱 맞아떨어지는 모습이다. 그런데 며느리는 자신의 방귀는 다른 사람의 방귀와는 다르다며 이렇게 말한다.

 

“그럼 뀌겠습니다. 아버님은 문고리를 붙들고 계십시오. 어머님은 솥뚜껑을 붙들고 계시고 신랑은 기둥을 붙들고 계십시오.” - 방귀 못 뀌는 며느리, 《한국구전설화 5-경기》, 342쪽

 

방귀가 다 똑같은 방귀지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냐 싶었지만, 며느리 방귀는 진짜로 보통 방귀와는 달랐다. 솥뚜껑은 솟아오르고, 기둥은 흔들거리고, 마루창은 들썩하고, 집은 반쯤 쓰러지고 만다. 며느리 방귀의 상상치도 못했던 위력에 시댁 식구들은 깜짝 놀라고 만다.

‘이런 며느리를 두었다간 큰일 나겠다’ 싶어 며느리를 친정에 데려다주기로 한다. 즉, 집안을 망칠 며느리라 생각한 것이다. 시아버지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말은 순식간에 어색해지고 만다.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가마에 태워 친정집으로 향한다. 쉬어가는 길에 커다란 배나무에 먹음직스러운 배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걸 보지만 따 먹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시아버지뿐 아니다. 쉬어가던 유기 장사, 비단 장사도 배를 올려다보며 침을 꿀꺽 삼키지만,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 배는 아무도 손을 못 댈 만큼 높이 매달려 있다.

바로 이때 며느리가 앞으로 나선다. 방귀로 배나무 높은 곳에 매달려 있는 배를 따고, 그 대가로 유기 장사와 비단 장사의 물건을 받는다.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다시 볼 수밖에 없다. 집안을 망칠 방귀라고 생각했는데, 집안을 일으켜 세울 방귀로 보이게 된다. 결국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다시 집으로 데리고 간다.

 

3.

 

‘왜 며느리는 노랑병이 걸리도록 방귀를 뀌지 않았을까? 아무리 조심스럽다 해도 화장실에 가서, 혹은 식구들이 없을 때 조금씩 뀔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십여 년 전, 처음 이 이야기를 알게 됐을 때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런 생각은 점차 사라졌다. 이야기에 나오진 않지만 이렇게 조금씩 방귀를 뀌었을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뀌었다고 해도 며느리의 방귀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을 것이다. 며느리의 방귀는 이런 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특별한 방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며느리는 방귀 자체가 대단한 위력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그 방귀를 자기 의지대로 뀔 수 있다. 즉, 며느리는 자신의 능력도 알고 있고, 그 능력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평범한 방귀를 뀌고, 방귀를 제어할 수도 없는 보통 사람의 눈으로 봤을 때 며느리는 위험하거나 괴상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우리는 흔히 평균적인 우리 모습과 다른 존재를 두려워하곤 한다. 때로는 괴물 취급을 하기도 한다.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고, 뭔가 우리가 갖고 있지 못한 능력으로 우리를 해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일 수도 있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맘껏 방귀를 뀌라고 했던 시아버지도 며느리의 방귀 위력을 알고 난 뒤엔 집안을 망하게 할까 두려워 돌려보내려 한다.

시아버지의 태도가 바뀌는 건 며느리 방귀를 생산적인 일에 쓸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다. 며느리는 높은 배나무의 배를 따고, 그 배로 유기 장사와 비단 장사의 짐을 얻어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이야기에 따라서는 집에 있는 유실수의 열매를 따는 일을 일꾼들 없이 며느리가 해낼 것이라 계산을 하기도 한다. 아무튼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집으로 데리고 돌아간다. 며느리가 집안을 크게 살릴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시아버지의 이런 태도는 어쩐지 좀 얄밉기도 하다. 며느리를 쫓아내러 나왔다가, 며느리 덕을 볼 것 같으니 도로 데려가는 게 자기 잇속만 챙기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기한테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취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누구라도 며느리 능력을 확인한 이상 놓치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하다.

그러니 결론은 며느리가 집으로 돌아가자는 시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점에 달렸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따라 시댁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간혹 이를 뿌리치고 혼자서 잘 사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시댁에 들어가든, 혼자서 살아가든, 며느리는 어떤 상황이라도 분명 잘 살 것이다.

 

4.

 

‘방귀깨나 뀐다’는 말이 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 '제 방귀에 놀란다' 같이 보통 방귀에 관한 말들이 부정적 의미를 지닌 반면, ‘방귀깨나 뀐다’는 말은 권세깨나 누리는 사람들을 뜻한다. 하긴 방귀를 언제 어디서고 마음껏 뀔 수 있는 사람들은 남의 눈치를 안 보고도 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또 방귀는 누구나 다 뀌지만, 누구나 다 큰소리로 ‘뻥’하고 방귀를 뀔 수 있는 건 아니다. 먹은 게 없거나 기운이 없는 사람의 방귀는 기운차게 나오지 않는다. 힘차게 방귀를 뀔 수 있다는 것은 몸이 건강한 상태라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아무리 건강하다 해도 먹은 게 없으면 방귀가 기운차게 나올 수가 없다. 따라서 몸이 건강하고 잘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사람은 기본적으로 생산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야기에서 며느리가 대단한 방귀를 뀐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며느리가 방귀로 높은 배나무의 배를 따는 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고 말이다. 배나무의 배가 사람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높은’ 곳에 있었다는 것도 생각해 볼 점이다. 며느리의 방귀는 상승하는 기운을 담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떤 판본에서는 며느리가 방귀를 뀌자 시아버지가 공중으로 날아가 솔개가 되거나,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날아가 3년 뒤에야 집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솔개가 된 시아버지는 더이상 집안에 관여를 못할 테고, 3년 만에 거지꼴이 되어 돌아온 시아버지는 집안에서 힘을 발휘하게 어려울 거다. 그렇다면 이때 며느리의 방귀는 집안에서 며느리의 영향력(생산력)이 시아버지를 넘어섰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5.

 

이야기의 주인공 방귀쟁이 며느리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내내 시아버지의 관점에서 서술되기 때문에 며느리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만 같았다. 며느리 입장에서 이야기를 다시 쓰면 좋겠다 싶었다.

내가 쓴 《여자답게? 나답게!》에도 <며느리 방귀>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쓸 때까지만 해도 이런 생각은 못하고 있었다. 나 역시도 ‘옛날, 어느 집에 며느리가 들어왔네’로 시작하고 있었다. 만일 앞으로 이 이야기를 다시 쓸 기회가 생긴다면, 며느리가 아닌 방귀를 잘 뀌던 한 여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다시 써 보고 싶다.

 

문득 그림책에서는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한 처자가 있는디 참 고와.

아주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지.

근디 이 처자가 말여, 방귀를 참말로 잘 뀌어.

 

《방귀쟁이 며느리》(신세정 글, 그림/사계절/2008)는 이렇게 시작한다. 여자의 입장에서 서술되고 있었다. 반가웠다. 중간에 잠깐 시아버지 시점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여자 입장에서 서술이 되고 있었다.

 

옛날 어느 집에 새로 며느리가 들어왔어.

며느리는 얼굴이 둥글둥글

복스러운 데다 바지런하기까지 해서

시부모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지.

 

반면 《며느리 방귀 복방귀》(조호상 글/오승민 그림/국민서관/2009)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아버지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옛날 아주 먼 옛날이야.

산골 어느 마을의 김 첨지가 며느리를 맞아들이게 되었어.

며느리는 활짝 핀 모란꽃처럼

얼굴이 환하고 몽실몽실 탐스러웠어.

신랑은 말할 것도 없고,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누이, 시동생은

며느리가 마음에 꼭 들었지.

며느리는 바느질 솜씨는 물론 요리 솜씨 또한 좋았어.

이웃 사람들은 복덩이가 들어왔다며 부러워했어.

 

《며느리 방귀》(이상교 글/나현정 그림/시공주니어/2009)는 한 발 더 나간다. 마치 며느리는 시댁 식구 맞춤형인 듯이 보인다.

 

그런데 《노랑각시 방귀 소동》(김순이 글/윤정주 그림/길벗어린이/2013)은 많이 달랐다.

 

1.

아무도 몰래 사랑을 나누던 갑돌이와 갑순이가

진달래 개나리가 활짝 핀 봄날 결혼을 했어.

 

2-1.

두 사람은 행복했어. 아주아주 많이.

한데 갑순이는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어.

 

2-2.

갑순이에게는 갑돌이도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었거든.

 

3.

사실 갑순이는 대단한 방귀쟁이였어.

한데 방귀 좀 뀌려고 뒤란에 가면 시동생이 따라오고

건너방에 들어가면 갑돌이가 따라 들어오고

부엌에 가면 시어머니가 따라 들어오니

도무지 방귀를 뀔 틈이 있어야지.

 

4.

하루는 돼지들에게 밥을 주던 갑순이가 방귀를 뽀옹! 뀌었어.

참고 참았던 방귀가 저도 모르게 나온 거야.

근데 이게 웬일이야?

돼지들이 모두 갑순이 방귀 냄새에 기절해 버렸지 뭐야.

그 뒤로도 돼지들은 사흘이나 밥을 먹지 않았단다.

 

5.

또 하루는 갑순이가 닭장에 들어갔을 때야.

구석에 낳아 놓은 달걀을 집어 들려고 허리를 살짝 굽혔는데 방귀가 뽀옹! 나오지 않겠니?

닭들도 돼지들처럼 기절을 했고,

그 뒤 열흘 동안 식구들은 달걀을 먹을 수가 없었어.

방귀 냄새에 놀란 닭들이 알을 낳지 않았거든.

 

6.

갑순이는 점점 시무룩해지고 얼굴도 노래졌어.

동네 사람들은 그런 갑순이를 노랑각시라고 불렀지.

갑순이 때문에 갑돌이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

꽃을 꺾어다 줘도 본 척 만 척,

맛있는 걸 사다 줘도 본 척 만 척,

이러니 갑돌이는 안달안달 애가 달았지.

결국 갑돌이 걱정에 갑순이도 비밀을 털어놓을 수밖에.

 

갑순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처음부터 끝까지 갑순이 입장에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내가 처음 이 이야기를 알게 됐을 때 궁금했던 부분(며느리가 방귀를 어떤 방식으로라도 뀔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도 여기서는 다 풀어주고 있었다. 시댁에는 며느리가 맘껏 방귀를 뀔 수 있는 공간이 어디에도 없었다!

창작이 많이 들어간 셈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해지던 시대엔 ‘아’하면 ‘응’하고 받을 만큼 굳이 말을 안 해도 공감할 수 있던 내용이, 세월이 흐르고 구전의 전통이 사라지면서 그 공감이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럴 땐 적절한 창작이 이를 보완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하긴, 옛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는 과정에서도 늘 누군가의 창작은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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