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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관련/논픽션

똑똑똑, 평화 있어요?

by 오른발왼발 2023.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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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라는 것이 가능한가?

똑똑똑, 평화 있어요》(데비 로빈스 글/빅터 로버트 그림/검둥소/2012.)

 

 

1.

 

평화.

전쟁이나 갈등이 없이 평온함.

 

사전을 찾아보니 평화를 이렇게 풀어 놓았다.

 

그럼 지금 세계는 평화로울까? 지금도 세계 어느 곳에선가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니 세계는 평화롭지 못하다.

그럼 우리나라는 평화로울까? 북한과는 휴전 상태로 60년째다. 휴전이란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니 우린 지금 전시 상황이다. 즉 평화롭지 못하다는 뜻이다. 물론 60년이란 오랜 기간은 가끔 우리가 전시 상황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도 가끔씩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이 있는 걸 보면 분명 평화 상태는 아니다.

게다가 무력 전쟁은 아니지만 우리는 수없이 많은 전쟁이 시달리고 있다. 입시 전쟁, 취업 전쟁, 출근 전쟁……. 극심한 경쟁에 내몰린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전쟁에 늘 시달리고 있다. 민족, 계층, 종교, 집단, 단체, 회사, 정당……. 어느 곳이든 갈등이 없는 곳은 없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이 세상이 걱정스럽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 책의 첫 문장에 적극 동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암담하고 불안한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세상의 평화란 나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다. 나 하나의 힘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세상의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어 보인다.

세상의 범위를 좁혀 내 주위로만 한정시켜 봐도 상황은 비슷해 보인다. 늘 크고 작은 갈등이 끊이질 않는다. 남편하고도 다투고, 아이와도 다투고, 친구와도 다툰다. 다투고 나면 후회가 밀려 들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보여 주지 않으면 무시당한다는 생각에 괜히 더 다투는 경우마저 있다. 평화란 아주 작은 범위에서도 지켜내기가 어렵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때로는 평화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평화란 하나의 이상일 뿐 현실에서 실현이 된다는 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똑똑똑, 평화 있어요?란 제목 그대로, 나 역시 질문을 던지고 싶어진다.

저는 평화를 간절히 원해요. 그런데 진짜로 평화라는 게 있기는 한가요?

 

2.

 

작가는 화자인 를 유리 감옥 속에 갇혀 있는 평화를 구할 수 있는 세 가지 열쇠를 찾는 모험에 끌어들인다. 평화가 유리 감옥에 갇혀 있다?

참 기분이 묘했다. 평화가 감옥에 갇혀 있어서 세상에 못 나오고 있고, 그래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평화를 발견할 수 없다고만 해도 공감이 갈 것 같은데, 하필 그 감옥이 유리 감옥이라니!

투명한 유리의 속성은 얼핏 보면 자치 안과 밖이 헷갈릴 수도 있다. 그런 유리 감옥에 갇힌 평화라면 갇혀 있는 게 아니고, 그저 무기력하게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막힌 설정이다. 화자가 그 엄청난 임무를 맡아 모험을 떠나게 되는 과정 또한 아주 흥미롭다. 평화를 구하러 가자며 화자를 데리러 온 건 갈색 곰 루서였다. 루서의 뜬금없는 방문에 화자는 묻는다.

 

“그런데 왜 나예요?”

“당신은 평화를 걱정하고 있어요. 그렇죠?”

(17쪽)

 

평화를 걱정하고 있는 사람만이 평화를 구할 수 있다는 뜻일 게다. 화자는 루서를 따라 길을 나선다. 그리고 각각의 장소에서 누군가를 만나서 또 새로운 곳으로 길을 떠난다.

 

첫 번째로 간 시시비비의 도시는 말 그대로 서로가 자신만이 옳다고 시시비비 가리기에만 골몰하고 있는 곳이다. 여기서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조금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의 적대감이 가득 차오를 때면 적대감의 주사위가 나타나 그들을 삼켜버리고, 적대감은 점점 더 커지게 된다. 생각만으로도 무시무시해지는 곳이다. 그런데 뭔가 찜찜하다. 내 의견과 다른 것은 절대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시비비의 도시 모습이야말로 우리의 모습이다. 그곳에서 나이 든 샴 고양이 붓다는 수용이라는 약을 권한다. 그 약은 마시기만 하면 나와 다른 것을 비난하고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신통한 약이다.

 

두 번째로 붓다는 수용을 마신 동물들이 식사하러 오는 곳인 여유로운 차 정원으로 안내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흰 담비 마흐마는 심술궂게 자신을 괴롭히던 쥐 잭을 이해하고 사랑으로 대했던 경험을 이야기해 준다.

 

세 번째로 마흐마의 안내로 간 용서의 바다에서는 우랑우탄 모와 크리스를 만난다. 화자는 세 가지 열쇠를 찾아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용서의 바다에서 화자가 먼저 본 것은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괴롭히던 모습 뒤로 그들의 사연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들을 이해하고 용서하게 된다. 결국 열쇠는 구하지 못했다. 화자는 용서의 바다에서 열쇠를 본 것 같았지만 결국 손에 쥐지는 못한 채 잠이 들고 말았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인 아하를 만난다.

 

아하는 세 가지 열쇠를, 성지를 찾아 나섰던 사람들에 비유해 말해 줬다. 성지는 그들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곳이 아니라, 그들이 마음을 여는 바로 그곳이었다고.

평화를 구하기 위한 열쇠를 찾는 모험이 풀어야 수수께끼처럼 되었다. 읽는 독자도 자연스레 열쇠의 비밀이 궁금해진다. 과연 열쇠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게 된다.

 

3.

 

화자는 다시 만난 루서와 함께 평화가 갇혀 있는 유리 감옥으로 간다. 유리 감옥을 열 시간인 것이다. 그런데 유리 감옥엔 열쇠 구멍 같은 건 없다. 이 말은 처음부터 유리 감옥을 열 수 있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세 가지 열쇠 같은 건 없다는 뜻이다.

유리 감옥에 열쇠 구멍이 없듯이, 유리 감옥의 열쇠는 화자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아하처럼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되어야 했다. 성지는 그들의 마음을 여는 바로 그곳에 있다는 말처럼 말이다.

화자는 열쇠의 비밀을 알아챈다. 샴 고양이 붓다와 흰 담비 마흐마, 우랑우탄 모와 크리스를 통해 알게 된 수용과 사랑, 용서야말로 유리 감옥을 여는 열쇠였다. , 수용과 사랑, 용서를 머리로 아는 건 소용없다. 내가 상처받고 화났던 기억들 속에서 나에게 상처를 줬던 사람들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용서를 해야 가능한 것이었다.

이제 평화가 갇혀 있던 유리 감옥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결국 평화를 유리 감옥에 가둔 건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 평화는 밖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 마음에서 오는 것이었다.

 

작가는 평화라는 주제에 갈색 곰, 샴 고양이, 흰 담비, 우랑우탄 등 동물들을 등장시켜 지독한 우화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이 동물들은 아주 특별한 사람들의 분신이었다. 갈색 곰은 마틴 루서 킹 목사를, 샴 고양이는 부처님을, 흰 담비는 마하트마 간디를, 우랑우탄은 예수 그리스도와 모세를, 영적인 존재 아하는 마호메트를 상징한다.

난 아쉽게도 뒤에 나오는 인물 소개가 아니었다면 동물들의 상징을 모르고 넘어갈 뻔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지만 동물들의 상징을 알고 다시 보면 책은 더욱 풍부하고 재미있어진다. 이야기로 한 번 읽고, 인물에 대해 알고 난 뒤 또 한 번 읽다 보면 책을 읽는 색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다.

 

4.

 

여기까지 오고 보니 처음에 평화에 대해 가졌던 질문이 창피해진다. 평화라는 것이 이상일 뿐 현실에서 실현되는 게 가능한 것인지, 또 평화라는 게 과연 있기는 한 건지에 대한 질문 말이다. 결국 평화의 문제는 수용과 사랑, 용서의 마음을 갖지 못한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었다.

설혹 평화가 실현 불가능한 이상이어도 상관없는 일이다. 중요한 건 평화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나가는 과정이다.

 

평화에 대해 다시 일깨워 주고, 더불어 혹독한 실천 과제를 준, 고맙고도 원망스러운 책이다.

 

이 글은 《우리 교육 2012. 겨울》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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